[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국민투표로 확정된 신 헌법을 공포하고 드디어 한 숨을 돌리고 있던 1962년 12월 말, 어떤 출입 기자가 물었다. “화폐 개혁의 성패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성공했다면 관련자들에게 상을 주고 실패했다면 책임자를 처벌할 용의가 있으십니까?”당돌하게 내게 도발을 하고 나섰다. 지난 6월 9일 화폐 개혁을 선포한 뒤 한 달여 만에(7월 13일), 동결시켰던 은행 봉쇄 예금 계정을 전면적으로 해제하는 ‘긴급 금융 조치법에 의한 봉쇄 예금에 대한 특별조치법’을 발령해야만 했었다. 기업은 기업대로, 일반 국민은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내년 1963년 1월부터 정치를 자유화하고, 여름에 정권을 민정으로 이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헌법 제정이 필요하다. 벌써 7월로 들어서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헌법 제정 작업에 착수해야만 한다. 이 석제 법사위원장을 불러서 빠른 시일 내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토록 지시하였다. 7월 10일자로 내각 수반에 김 현철, 경제기획원장관 김 유택, 상공부 장관 유 창순을 임명하였다. 지난 번에 발효한 화폐개혁 조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송 요찬 수반과 천 병규 재무부 장관이 사표를 낸 이래 내가 맡아 오던 내각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적격 판정에 대한 최종 결과 발표에 즈음하여 간단하게 담화문을 냈다(1962.5.30.). “… 여기에 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반성하여 이후에 있어서는 일층 적극적으로 혁명 대업에 참여할 것이며, 또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은 이제라도 적극 국가에 봉사하여 다시 적격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할 것입니다. 특히 적격 판정 불신청자에 대하여는 양심적이거나 또한 앞으로 국가재건에 기여 공헌하는 사람들을 다시 검토하여 적격 판정을 내리도록 할 것입니다…”정치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현 단계에서 정치를 정화하는 첫 단추는 부적절한 기존 정치인을 가려내 격리 또는 도태시키는 일이다. 이런 정치인들이 우리 정치계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한 희망이 없다. 지난 해방 후 16년간 이런 무능력하고 구태 의연한 정치인들은 언필칭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서 뒤로는 자기 일신상의 영달과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였다. 정쟁에만 몰두하면서 온갖 불법과 부정을 자행하여 왔다. 이들은 민주라는 이름 하에 중립주의나 사회주의에 영합함으로서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만들었고, 국가의 기강과 사회의 질서를 파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시시각각 다가오는 정권의 민정 이양을 생각하면 할수록 골치가 아파온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넘겨주어야 하나?지금 현재 활약하고 있는 혁명 정부 요원들이 물러난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혁명 정부 눈치만 보면서, 교묘하게 민정 이양을 논하며 조용한 국민들을 충동질하는 몇몇 신문 기자들과 기존 민주당, 자유당 시절의 정치인들. 엉거주춤 국가 원수인 대통령직에 머물고 있는 윤 보선도 마찬가지다. 틈만 나면 내게 메시지를 전해온다. 5.16. 혁명 당일, 군사혁명위원회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 정부 조직법과 공무원법을 개정하여 조직 체계를 정비하고 관료제를 일할 수 있는 형태로 선진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던 조직과 법규를 정비함으로서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행정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최고위와 내각의 모든 구성원들이 성안된 경제 개발 계획에 따라 본격적으로 업무 추진에 돌입하였다. 새벽부터 출근하여 밤 늦은 시각까지 업무에 열중하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이제는 될 것 같은’ 희망을 본다. 비서가 타다 준 커피의 맛이 제법 입안에 감돈다.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군인 정신의 최고봉은 뭐니뭐니 해도 필승(victory)이다. 전장에 나서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기지 못하는 군대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전투에서 이등은 없다. 이등은 곧 죽음이요 파멸이다. 나는 공무원 관료들을 군인 정신으로 무장시킬 것이다. 전투에 임하는 필승의 정신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구슬땀 흘려 일하도록 만들 것이다. 경제 개발의 최일선에서 목표를 향해 달리도록 만들 것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발전의 영광스런 책임, 사명감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27일 오후에, 최고위 종합경제재건기획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에 대한 심의가 있다기에 참석하려고 일어서다가, 문득 탁자 위에 놓인 신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북평방송(北平放送)은 26일, 한국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방미 방일(訪美訪日)을 반대 비난하는 민중대회를 평양에서 개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동 방송은 ‘박 의장이 미일 반동분자(美日 反動分子)들과 공모하기 위해 여행하였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1961.11.27.)”피식 웃음이 나온다. ‘같잖은 녀석들. 조금 잘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여 정신을 차린 뒤, 윤 보선 대통령을 찾아 뵈었다. 11월 27일 오전. 케네디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신정부 지지 및 한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 약속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일본 방문에 대해서도 희망적으로 얘기했다. 기분 좋게 커피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작업을 점검할 시점이 되었다. 그동안 경제기획원 중심으로 일을 맡겨 두었는데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만 한다. 비서실 보고에 의하면 오늘 내각에서는 신년도 예산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11월 17일. 워싱턴을 출발해서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에 내렸다. 로버트 와그너 시장과 이 수영 유엔주재 대사가 트랩까지 와서 나를 영접했다. 곧바로 오찬 장소인 세인트 로지스 호텔로 이동했다. 빡빡한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엄청 피곤하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장거리 비행을 하고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빈틈없는 일정을 소화 중이다. 국가 원수로서의 위신과 강인한 체력, 군인 정신으로 버티고 있는데 만만치 않다. 뉴욕 시장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저절로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본인은 이번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오랜 기간 머무를 수는 없었다. 10시부터 러스크 국무장관을 예방하고 회담을 갖기로 되어 있다. 차가 국무성 건물 앞에 서니, 러스크 장관은 현관 앞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케네디 대통령과의 오찬과 회담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사실 실무적인 일은 러스크 장관이 책임지고 있다. 러스크 장관의 대 한국 지원 의사가 얼마나 확고한 가가 중요하다. 국무장관은 지난 월 초에 내 공관을 방문하여 만나서 구면이다. 당시에는 케네디 대통령 초청 친서를 받고, 미국 방문 일정에 대해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11월 14일. 화요일 아침. 이번 순방길에서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이다. 드디어 세계 일등국 미국의 최고 지도자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는 날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일본에 마주 서고, 그 이틀 뒤에 또 다시 미국과 마주선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새벽 5시.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 일정표를 본다. 비서가 챙겨준 연설문과 회담 시 유의 사항,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안건들을 차분하게 점검한다.‘그런데, 공식 회담이나 연설은 통역의 도움을 받으면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잠을 자는 둥 마는 둥 6시에 눈을 떴다. 벌써 창밖이 훤하다. 이틀간 일본 방문 일정을 소화하느라고 긴장을 했고, 쉬지도 못한 채 앵커리지, 시애틀을 거쳐서 시카고 오헤어 공항까지 비행기로 날아왔다. 전용기가 없는 가난한 나라이기에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빌려 타는 수밖에 없었다.시애틀에서는 전쟁 고아들로 구성된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나를 반겨주었다.아이들이 정겹고 더없이 고마웠다. 12일(날자 변경) 오전 11시 40분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달려서 오후 5시 50분에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 11월 4일. 윤보선 대통령과 송요찬 내각 수반이 최고회의 위원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양 어깨에 빛나는 별 네 개를 달아주었다. 일본과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이케다 수상이나 케네디 대통령과 격을 맞추기 위함이다. 최고회의와 내각, 특히 외무부에서 적극적으로 안을 냈고 서둘러 진급식을 가졌다. 물론 최고회의 의장으로서 군 통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이긴 했다. 민간인 대통령이라면 군 경력과 상관없이 대장급 장군들을 통수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나는 현직 중장이기 때문에 하급자로서 상급자를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이 석제 법제사법위원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조금은 흥분된 듯 문을 열고 들어섰다.“각하, 이것 좀 보십시요. 민법이니, 상법이니, 형법이 온통 일제시대 것입니다. 아직도 일본어로 되어 있는 법조문을 참조하여 행정을 하고 있습니다.”“그게 뭔 말이요? 해방되고 건국한 지가 벌써 몇 년인데.”“그러게 말입니다. 1912년에 일제가 우리를 강점하면서 시작한 철도법, 공증인법, 공장저당법이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승만 정권 때 우편법, 항공법, 공탁법 등 일부를 개정하기는 했습니다만, 이건 좀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군정의 민정이양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이 그리 만만치 않다. 군사 혁명의 근본적인 원인 문제가 해소되고, 향후 지속적인 국가 발전이 보장되어야 만 민정 이양을 할 수 있다. 2년 만에 이런 전제 조건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인가?- 신 헌법 제정: 당장 헌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반드시 개정해야만 할 내용은 내각 책임제 정부 형태와 국회의 양원제 규정이다. 지난 민주당 국회는 4.19를 계기로 기존 헌법의 핵심 골격을 대폭 바꿔버렸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가 아닌 내각 책임제를 선택함으로써 형식적으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최고회의 의장으로 취임한 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동안 장 도영 의장에게로 향했던 관심사가 한꺼번에 내게로 쏠리고 있다.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일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인데 이제는 대외적 업무까지 보태 졌다.의장 비서실장을 통해 대외 업무를 최소한으로 하여, 적절히 관리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몸과 마음이 제대로 견뎌내 줄 지 걱정이 된다. 이제부터는 내가 반드시 챙겨야만 할 핵심 안건 몇몇을 제외하고는 책임자에게 적극적으로 위임해야만 하겠다. 실무 책임자를 믿지 못하고 혼자 모든 일을 챙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정문 수위에게 ‘행정대학원이 어디냐?’고 물어서 원장 부속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사무원에게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고 원장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 사무원이 문을 열고 들어갔나 싶더니 금방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원장이 나왔다.“아이고. 어서 오십시요. 원장 이 용희 교수입니다.”“안녕하십니까? 갑자기 찾아 뵙고자 들렸습니다.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아닙니다. 바쁘신 분이 예까지 찾아 주시니 영광입니다. 얼른 들어 오십시요.”원장실로 들어서니 젊은 교수 두 명이 인사를 해 온다.“의장님 아니십니까? 저는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이 장군,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 얘기를 아시죠?” “당연하죠. 쑥과 마늘을 먹으며 21일을 잘 버틴 곰은 여자가 되었지만 성질 급한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 잖아요. 곰 토템족이 호랑이 토템족을 이겼다는, 뭐 그런 애기 아닌가요?”“맞습니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게 해석하고 싶어요.”「삼국유사」에 단군 조선에 대한 신화가 나온다.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들의 도시인 신시(神市)를 열었다, 환웅천왕은 장군으로 풍백(風伯), 우사(雨師
[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7월 3일. 오후에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열렸다. 의장 겸 내각 수반 장 도영 중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새롭게 내가 의장이 되었다. 이어서 내각 수반에는 송 요찬 예비역 중장을 임명하고, 그리고 상임위원장을 의장이 겸하는 것으로 개정하였다. 애초부터 장 도영 의장 때문에 불필요하게 들어 있던 항목이었다. 또 체포 구금된 육군 준장 송 찬호, 육군 대령 박 치옥, 육군 대령 문 재준, 육군 중령 김 제민 등의 최고위원 사표를 수리하였다. 송 찬호가 맡았던 문교사회분과위원장으로는 손 창규 육군 대령을 임명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