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형주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가 서서의 활약으로 적장 조인을 물리치고 번성으로 들어갔을 때, 현령 유필과 그의 생질 구봉이 함께 그를 맞아주었다. 그때 유비는 헌헌장부 구봉을 양자로 맞이하고 이름을 유봉으로 바꾸게 했다. 관우는 나중에 유비의 친자가 태어나면 골치 아픈 후사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반대했지만.


유봉(劉封)은 용모가 훤칠한 무골풍의 호인이다. 일기당천의 선봉장급은 아니지만 유비가 서촉을 칠 때 함께 출진하여 공을 세우고 용맹을 떨친 인물이다. 맹달(孟達)은 익주태수 유장의 장수였으나 유비가 서촉으로 들어갔을 때 법정과 함께 유비를 도왔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현실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유봉과 맹달은 촉과 위의 국경지대에 있는 상용을 지키고 있다가 위급에 처한 형주의 관우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장수들이다. 그 당시의 상황과 이들의 처신, 그 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오군사령관 여몽이 병으로 물러나고 후임으로 젊은 육손이 임명되자, 오 쪽에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병력을 빼서 위의 번성을 공략했다. 이를 노리고 있던 여몽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판단, 군사를 이끌고 형주에 상륙하여 형주성을 빼앗았다.

여몽에게 허를 찔린 관우는 패퇴를 거듭하다 맥성으로 쫓겨 갔고, 거기서 부장 요화를 가까운 상용으로 보내 지원군 파견을 요청했다. 그러나 상용을 지키고 있던 유봉과 맹달은 이곳이 새로운 점령지이고 최전방이어서 함부로 병력을 빼낼 수 없다며 거절했다.

요화는 '그러면 관공은 돌아가시고 만다.'며 이마로 땅을 짓찧으며 위급을 호소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관우는 맥성에서 빠져나오다 오군의 반장과 그의 부장 마충에게 사로잡혀 아들 관평과 함께 참수되고 만다.


관우가 죽고 난 후, 유비에게로 간 요화는 엎드려 울면서 '관공 부자가 죽임을 당한 것은 유봉과 맹달이 지원군을 보내지 않은 탓입니다. 오를 치기 전에 그 두 놈부터 잡아 죽여 관공의 한을 풀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했다.


유비는 유봉의 벼슬을 높여 면죽으로 발령을 냈다. 상용을 지키는 맹달과 떼어놓기 위해서였다. 눈치 빠른 맹달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표문을 보내왔다. 유비는 발끈하며 유봉에게 맹달을 치라는 군령을 내렸다. 유봉은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듯 군사를 이끌고 맹달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맹달은 인근지역을 모두 아울러서 위(魏)에 투항해버렸고, 그 때문에 촉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위주 조비는 맹달의 항복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맹달은 '제가 가서 유봉도 함께 데려오겠다.'고 제의했고, 그때서야 조비는 맹달에게 신성태수의 벼슬을 내리며 유봉과 대치하고 있는 양양으로 보냈다.


유봉은 맹달로부터 '당신은 곧 유비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니 속히 위에 항복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유봉은 발끈하며 '이놈이 전에는 숙질간의 의를 저버리게 하더니 이제는 우리 부자의 의마저 끊으려 하는구나.'하면서 맹달이 보낸 사자의 목을 베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유봉은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던 중 도망치는 맹달을 뒤쫓다가 뜻하지 않게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쫓겨서 성도로 들어왔다. 그러나 양아버지인 유비는 관우의 죽음으로 거의 이성을 잃은 탓에 '무슨 낯으로 나를 보러 왔느냐?'면서 유봉을 참수하니 유봉은 거기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유비는 나중에 유봉이 관우의 곤경을 외면한 죄를 씻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하며 노력한 것을 알게 되어 가슴을 치며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한편, 위의 신성태수 맹달은 위주 조비가 살아있을 적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대우를 받았지만, 그의 아들 조예가 즉위한 이후에는 위의 조정에 자신을 시기하고 헐뜯는 무리가 많아져서 푸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 때문에 제갈량이 북벌을 시작할 때, 맹달은 다시 촉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자신은 금성 신성 상용의 군마를 일으켜 낙양을 공격할 테니 제갈량에게는 장안을 공격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제갈량은 그 편지를 받고 몹시 기뻤지만, 위주 조예가 다시 명장 사마의를 총사령관으로 발탁했으므로 걱정이 되었다.


제갈량은 맹달에게 편지를 보내 '사마의가 알면 바로 그리로 군사를 이끌고 갈 것이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러나 맹달은 '사마의가 위주에게 표문을 올리고 여기에 오려면 한 달 정도 걸리니 걱정 마시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 답장을 본 제갈량은 맹달이 사마의의 손에 죽을 것이라며 크게 낙담했다.


한편, 맹달이 모반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마의는 '나는 폐하께 알리지 않고 이놈을 때려잡아 제갈량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겠다.'며 맹장 서황을 앞세우고 군사를 몰아갔다.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있던 맹달은 불과 열흘 만에 선봉장 서황의 군사가 당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맹달의 군사들은 활을 쏘아 서황을 맞춰 죽이는 등 잠시 기세를 올렸으나 곧이어 사마의가 이끄는 대군이 들이닥쳤다.


맹달은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기로 했으나, 함께 거사하기로 한 신탐 신의 형제가 군사를 이끌고 오자, 자신을 도우러 온 줄 알고 성문을 열었다. 그러나 맹달은 이미 저쪽으로 마음이 돌아선 신탐의 한 창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맹달이 죽자 그의 군사들은 모두 사마의에게 항복했다.


처음에 유장을 섬기던 맹달, 촉의 유비에게로 갔다가 다시 위의 조비에게로 갔다. 거기서 푸대접을 받자, 다시 유비에게로 돌아오려다가 사마의에게 덜미를 잡혀 죽은 것이다. 세 번 주인을 바꾸고, 네 번째 다시 주인을 바꾸려다가.


상황에 따라 계속 주인을 바꾸려다가 죽은 맹달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한번 실수는 있었지만 유봉의 죽음은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장수 하나가 아쉬운 촉에서 앞으로 있을 북벌에의 쓰임새도 그렇지만, 우매한 촉주 유선의 대안으로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하지 않았겠는가.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015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