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짧은 시간 동안 중국 하남(河南)성의 낙양(洛陽)을 다녀왔습니다. 낙양은 중국 왕조 중 9(또는 13)왕조나 도읍으로 삼았던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중국 서예(書藝)인 대회에 일본, 대만과 함께 대한민국 참관단 자격의 일원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로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관계가 소원한 영향 탓인지 비행기 좌석은 빈 곳이 많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을 대하는 중국 문화인들의 태도는 매우 다정스럽고 따뜻해 보였습니다. 서예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예로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중의 하나이기에 서예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지내는 시간은 매우 유익하고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중국 낙양을 처음 방문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바로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묘 1기가 최근 확인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자왕의 무덤은 노래에도 나오는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들이 있는 곳, 지금의 중국 허난(河南, 하남)성 뤄양(洛陽, 낙양)시 베이망산(北邙山, 북망산)에 있습니다.(추정) 의자왕은 백제가 멸망한 뒤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 의해 1만 2000명의 백제인들과 함께 끌려갔다가 죽어서 북망산에 묻힌 것으로 역사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의자왕과 함께 끌려갔던 태자 융의 지석(지문을 새겨 무덤 앞에 묻는 돌)은 북망산에서 발견되어 현재 하남성 정저우(鄭州)에 있는 하남성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의자왕의 무덤도 북망산에 있을 것이라는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의자왕은 우리나라 최초로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자왕이 당연히 삼천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뛰어 들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묘의 크기는 높이 7미터 정도의 봉토분(封土墳,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만든 무덤)이며,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토양 채취 결과 층위가 의자왕이 서거한 시기(660년)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멸망한 백제 유민들이 당나라에 끌려간 경로를 추정하는 백제 유민 흔적 찾기 사업의 결실을 정리하여 발간한 ‘의자왕과 백제유민의 낙양 행로’ 라는 보고서에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백제의 화려했던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과연 백제에 대하여 얼마나 바로 알고 있나 자문해 봅니다. 삼천궁녀(삼천궁녀가 집단으로 몸을 던져 투신했다는 부여 낙화암을 가본 사람은 그 바위가 위에 몇 명 서있지 못할 정도로 작다는 사실에 실소를 많이 합니다.)와 함께 향락을 즐기다가 나라를 말아 먹은 임금으로 흔히들 기억되고 있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식민사관의 영향이기도 하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패자인 백제 의자왕은 좋지 않게 기록될 수밖에 없기에 사치와 패덕으로 백제를 슬픈 망국으로 종지부를 찍게 한 왕으로 오명이 남은 의자왕이지만 태자시절에는 ‘해동증자’로 불리며 효성과 우애로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의 저항이 새롭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백제 멸망 후 1350년이 흐른 지난 2008년 중국에서 발견된 하나의 비석이었는데, 그 비석의 주인은 배신의 대가로 중국에서 관직까지 받고 평생을 호사스럽게 살다간 ‘예식진’이라는 장수입니다. 대당 좌위위 대장군이라는 당나라 벼슬이 쓰인 예식진의 묘지명은 그에 대한 당 황제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方承休寵, 恩光屢洽(방승휴총, 은광루흡―바야흐로 아름다운 황제의 총애를 입고, 천자의 은혜로운 빛이 흡족히 내려지고…)’ 예식진은 의자왕을 포로로 잡아 당나라에 바치고 항복한 공로로 당 황제로부터 벼슬을 얻었던 것입니다. 배신자의 비석으로 인하여 의자왕의 실체가 조금이라도 바로 알려졌다 하니 의자왕은 배신자의 비석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생각해 봅니다. (역사 공부는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백제 의자왕에 대해서 주로 좋지 않은 내용으로만 알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가 반문해 봅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바로 알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단순히 과거의 일에 대한 호사가의 취미나 재미로 치부될 일이 아니라 오늘의 존재 근거, 실존의 의미를 깊이 고찰해 볼 수 있게 하는 거울이며 미래를 예측하고 예견하고 계획하며,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가늠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과 같이 하나의 국가 또는 하나의 체제의 존망이 절박한 관심사로 떠오르는 위기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됩니다.

내외뉴스통신/내외경제TV 상임고문 임정혁

- 현, 법무법인 산우 대표 변호사
- 법무연수원장

- 대검찰청 차장검사, 공안부장

- 서울고등검찰청 고등검사장, 형사부장

- 중앙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합격,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 황조․홍조․근정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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