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 첩보전선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평양방송을 통해 철지난 난수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단됐던 난수방송이 지난 해 6월 재개된 이래 올해 4월까지 총 32 차례 방송됐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일성 생일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4일 평양방송 아나운서는 “지금부터 탐사대원들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정보기술 기초 복습과제를 알려드리겠다”며 “823페이지 69번, 467페이지 92번...” 등 10분 가량 숫자를 읽어 내려갔다.

난수방송처럼 무선을 통한 비밀정보 교환방식은 20세기 유행했던 비밀활동 방식이다. 이탈리아의 과학자 마르코니가 무전을 발명하여 1901년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선통신에 성공한 후 무선통신을 다루는 기술이 스파이 세계의 핵심기술이 됐다. 무선을 날리고 가로채는데 모든 정보활동이 집중됐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2005년 일제시대 만주지역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남긴 문서를 모아 「동북지역 조선인 항일역사 사료집」을 발간했다. 이 사료집 10권에는 김일성이 남긴 보고서가 있다. 1941년 초 소련령으로 도주한 김일성은 그해 여름 동만주로 잠깐 넘어와 정찰활동을 벌이고 돌아갔다. 소련령으로 되돌아가 1941년 9월 30일 상관에게 보고한 김일성의 정찰결과 보고서에도 ‘공작원들간 연락을 위해 무선기지를 만주에 세울 것’을 건의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개인 컴퓨터와 인터넷, 모바일 기기 등 정보를 저장하고 송수신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정보활동이 우리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스파이의 필수품이었던 무선 통신기기가 민간분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무수한 사람들이 정보를 생산하고 전파한다. 빅 데이터 시대이다.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유통속도도 실시간 수준으로 빨라졌다. 그에 따라 비밀정보의 공간도 대폭 줄어들었다.

요사이 북한의 난수방송에 의문이 드는 점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역행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북한 지배층이 남한에 밀파한 공작원들에게 비밀지령을 내려 보내는 방법에는 많은 통신기술이 널려있다. 북한이 그동안 저지른 사이버 공격행태를 보면 남한의 전산망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수준이면 남한의 대공 수사기관을 속이며 대남 공작원들과 얼마든지 비밀리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공연히 공중파 방송에다 음험한 분위기의 난수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남한의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북한의 난수방송을 대남 심리전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도 이러한 점에 있을 것이다. 냉전시대 성행했던 프로파간다 수법의 하나로 남한에 북한 간첩들이 많이 있는 양 과시하려는 수작으로 본다. 무선방식보다 수백 배, 수천 배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첨단 통신기기를 제쳐두고 구태의연한 방법을 고집하는 점에서 심리전으로 보는 시각도 설득력이 있다. 허위정보, 역정보, 기만정보를 적대세력에게 퍼뜨려 적진을 교란시키는 수법은 인류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애용되어온 전술이다.

북한의 난수방송이 실제로 대남 공작원과의 교신용인지 아니면 심리전용인지를 판별하기는 매우 어렵다. 남한에서 암약하는 간첩을 체포해서 그 경위를 확인하는 방법이 제일 좋으나 간첩을 잡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한 가지 이색적인 제안을 드리고 싶다. 지금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첨단 통신 기술을 총동원해서 북한의 난수방송을 한번 공개적으로 풀어보자는 것이다.


난수방송의 전문을 놓고 머리가 비상한 수학자와 과학자, 컴퓨터, 인공지능 등을 최대한 동원하면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기 때문에 이러한 제안을 던져본다.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처럼 첨단방법을 총동원하여 난수방송을 풀어봤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북한의 음모를 분쇄하는 일에 정부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벤트도 자유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통일연구회 정책위원 정주진







- 연세대 연구교수
- 21세기 전략연구원 기획실장
- 안보통일연구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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