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금속 활자본은 어느 나라 것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대한민국이라고 답할 수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현재까지 공인된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은 흔히 ‘직지’라고 줄여 부르는 인쇄본인데 원래의 책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줄여서 '직지심체요절'이라는 인쇄본입니다.

그 책 내용은 승려인 백운화상이 부처와 자신보다 먼저 산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의 내용을 수록해 놓은 책입니다. 청주에 소재했던 흥덕사라는 절에서 1377년 금속 활자로 찍어낸 책인데 상·하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청주 흥덕사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찍어낸 인쇄 문화사적으로 의의가 매우 큰 사찰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데 청주 고인쇄 박물관이 건립되어 인쇄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직지'는 1877년 평소 고서와 각종 문화재를 수집하던 프랑스 초대 공사가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돈을 주고 구매하여 프랑스로 가져간 후로 도서 수집가의 손을 거쳐 현재까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책의 해’를 기념하는 전시회에 ‘직지’가 출품되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으로 공인받게 된 것입니다.

이 금속 활자본은 문헌상으로 알려졌던 것이 실제로 나타난 유일본으로 우리 조상이 이 지구상에서 최초로 금속 활자를 창안, 발전시킨 슬기로운 문화 민족임을 세게 만방에 실증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허나 그 책을 찍어낼 때 사용한 금속 활자인 소위 흥덕사자(興德寺字)는 아직까지도 발견된 바 없습니다. (직지보다 143년 앞선 1234년 고려 인종 때 최윤의가 지은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자가 금속 활자로 찍었다는 기록이 ‘동국이상국집’에 나와 있으나 ‘상정고금예문’은 저술 기록만 있을 뿐 인쇄본이나 활자가 현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로 공인받고 있는 ‘직지’보다 무려 138년 이른 시기에 불교 서적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약칭 증도가―책자가 현존하며 보물 758호로 지정되어 있음)’를 인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 활자인 증도가자(證道歌字)가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인 ‘직지’보다 앞선 것으로 공인받을 경우 세계 인쇄 역사를 바꿀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최근 문화재청은 이 ‘증도가자’의 보물 지정을 보류하였습니다.

금속 활자가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은 사실로 확인되지만 인쇄본과의 연관성이 부족하고 활자의 소장 경위 또한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증도가자의 보물지정을 신청했던 박물관 측은 ‘지금까지 소장자와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보물지정을 부결한 전례가 없으며, 박물관 측이 소장자와 출처를 밝혔다’며 보물지정 보류 결정에 대해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행정심판과 소송을 준비 중에 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직지’는 인쇄본은 있으나 국내가 아닌 프랑스 박물관에 있으며 그것을 인쇄한 금속 활자는 발견되지 않았고, ‘증도가자’는 금속 활자(위조 논란이 계속되어 왔으나 위조는 아닌 것으로 공인 받음)는 있으나 인쇄본과의 연관성을 공인 받지 못한 상황에서 박물관 측은 금속 활자 만이라도 보물로 공인받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 가고 있습니다.


활자, 특히 금속 활자가 도대체 뭐기에 논란이 되는가 생각해 봅니다. 금속 활자는 단순한 골동품으로써의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언어나 문자는 인간의 역사, 지식, 지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것인데, 단순한 필사물은 개인 대 개인 사이에만 가능합니다.

반면 활자는 문헌의 대량 전달이 가능하게 되어 인류에 혁명을 가져다 준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인쇄의 발달은 정보의 독점에서 정보의 공유로, 지식의 대량화·대중화로, 대중이 똑똑해지면서 종교 개혁, 르네상스, 나아가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인터넷, SNS의 발달로 전문 지식의 공유가 일반화되면서 문화 혁명, 나아가 의식 혁명에까지 이르게 된 것에 버금가는 정보화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440년경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금속 활자를 발명하여 인쇄술 부문에서 혁명을 일으켰고 1455년 라틴어판 '구텐베르크 성경'이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출판되었는데 학문의 발전은 물론 그동안 성직자만 소장하던 성경이 일반인에게도 대중화되어 보급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나아가 종교개혁의 단초가 되었다고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금속활자의 발명은 위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서 금속 활자본인 ‘직지’가 인쇄되었다는 사실에 조상의 지혜와 슬기가 뛰어났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며, 그 ‘직지’보다 앞선 금속 활자가 공인을 앞두게 된 점 또한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외뉴스통신/내외경제TV 상임고문 임정혁

- 현, 법무법인 산우 대표 변호사
- 법무연수원장

- 대검찰청 차장검사, 공안부장

- 서울고등검찰청 고등검사장, 형사부장

- 중앙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합격,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 황조․홍조․근정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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