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이순신 장군의 탄신기념일로 1967년부터 공식적으로 지정한 국가기념일로 각종 달력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기념일 중에 특정인이 탄생한 날이 지정되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성탄절), 석가모니(부처님 오신 날)말고는 유일합니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화폐 중에 현재 사용 중인 100원짜리 동전과 예전에 통용되던 500원짜리나 50원짜리 지폐에도 이순신 장군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폐와 동전에 동시에 새겨진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흔히 위인들의 어린 시절은 가난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대부분인데 비해 이순신 장군은 생애 초기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으며 오히려 처갓집 덕을 본 소위 금수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수저의 출세를 백안시하는 세태에 한 번쯤 되짚어 봄직 합니다. 이순신 장군을 소위 키워준 분으로 영의정 유성룡이 있는데 이웃 마을에 살았던 것으로 보아 지연(地緣)의 덕도 본 것으로 짐작됩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 장군의 어린 시절을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은 어린 시절 영특하고 활달했다.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 때면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했다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눈을 쏘려고 해 어른들도 그를 꺼려 감히 군문(軍門) 앞을 지나려고 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활을 잘 쏘았으며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가려고 했다. 말타고 활쏘기를 잘 했으며 글씨를 잘 썼다.”
―《징비록》

이순신 장군은 1545년 3월 8일(양력 4월 28일) 자시에 당시의 한성부(지금의 서울) 건천동(乾川洞)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가계는 주로 문관 벼슬을 이어온 양반 계급의 집안이었으나, 그의 할아버지인 백록은 정치적 혼란기에 벼슬을 사양하고 조광조 등 소장파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여 기묘사화의 참변을 겪게 됩니다. 그 후 아버지 정(貞)도 관직의 뜻을 버리고 평민으로 지냈습니다.


이순신은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인 방씨(方氏)는 전라도 보성군수 진(震)의 딸인데 이순신 장군이 결혼 후 살았던 아산의 집은 장인이 물려준 집이라고 합니다. 한편,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역적 및 가난한 시절을 보낸 줄거리는 허구로 알려져 있으며 어머니 변씨(卞氏)의 문기(文記, 땅이나 집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에는 이순신이 형인 요신(堯臣)과 함께 어머니로부터 외거노비 6~8명씩을 증여 받았으며, 충청도 은진(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지방의 가옥과 토지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조 22년에 아내인 상주 방씨(온양 방씨)가 4형제에게 준 분재(재산을 나누어 줌) 기록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이백록은 사놓은 현충사 경내 고택을 이순신에게 주기도 하였습니다.


20세에 방씨와 혼인하고 장인의 후원으로 병학을 배우면서 무과를 준비하다가 28세이던 1572년 훈련원 별과에 응시했으나 시험을 보던 중 말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로 부목을 대고 시험을 계속하였지만 결국 낙방합니다. 4년 뒤인 1576년 32살에 식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지만 합격 성적이 중위권에 불과하여 권지훈련원봉사(훈련원 봉사 실습생으로 정식 직책이 아님)로 처음 관직에 나섭니다.


조선시대 무과 합격자 분석에 의하면 32세 나이가 현대인의 상식과 달리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에 관직에 오른 유명인들의 과거 합격 연령을 보면, 이이는 13세, 황희는 14세, 이황은 27세, 류성룡은 23세, 원균은 28세, 정약용은 22세 등으로 상대적으로 늦은 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 초반기를 보면 요새 유행어로 말하자면 흙수저는 아니고 금수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안한다는 처가살이를 엄연히 하였고 부모로부터 집 등 재산을 많이 물려받았습니다. 장인은 부인이 1명이고 외동딸 밖에 없었으나 이순신 장군은 정실부인 외에 첩이 2명이나 있었고 첩들로부터도 자식이 있었으니 요즘의 잣대로 말하자면 간통과 축첩을 한 셈입니다.


보통 영웅들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야 멋질 터인데 비해 이순신 장군의 생애 초반기는 분명 금수저로서 자랑할 만한 것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 후보들마다 자신이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임을 내세우는 것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임시직 경비원의 아들도, 까막눈 엄마를 둔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흙수저도 영웅이 될 수 있고 금수저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야 말로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충무공 탄신일(4월 28일)에 성웅 이순신 장군님의 생애 초반기(소싯적)를 살펴보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내외뉴스통신/내외경제TV 상임고문 임정혁

- 현, 법무법인 산우 대표 변호사
- 법무연수원장

- 대검찰청 차장검사, 공안부장

- 서울고등검찰청 고등검사장, 형사부장

- 중앙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합격,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 황조․홍조․근정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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