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연재] 삼국지의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두 축이 유비와 조조라면,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두 축은 제갈량과 사마의이다. 하늘이 내린 재사 제갈량과, 그와 함께 중원을 다툰 필생의 호적수 사마의가 전장에서 마주친 상황을 통하여 두 사람의 면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제갈량과 사마의, 둘 다 백년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한 비상한 재주를 지닌 인물이다. 제갈량이 촉 황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활약을 하는데 반해 사마의는 줄곧 위 황제들의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조조가 사마의에게 반골의 상이 있으니 병권을 맡기지 말라고 했던 바, 그의 아들 조비는 그 말을 충실히 따랐다. 조비가 죽고 그의 아들 조예가 즉위하자, 사마의가 서량을 지키겠다고 자원했고, 조예가 이를 허락하니 드디어 사마의가 변방의 군권(軍權)을 쥐게 되었다.
그러나 출사표를 바치고 위 정벌을 계획하고 있던 촉의 제갈량이 ‘사마의가 서량에서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퍼뜨린 유언비어 때문에 조예의 의심을 받은 사마의는 다시 군권을 뺏기고 만다.
제갈량이 위를 공격하자 위에서는 하후무와 조진을 차례로 내보냈지만 모두 패퇴했다. 이에 위 황제는 낙향한 사마의를 복권하여 다시 전선에 투입함으로써, 필생의 호적수가 드디어 전장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제갈량 때문에 잃은 군권을 제갈량 덕분에 다시 찾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전에서 사마의는 촉장 마속이 지키는 가정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사마의에게 패한 제갈량이 군율을 어긴 마속을 목 베고 퇴각작전을 진행하던 중, 불과 2천5백 명의 수비병만 있는 서성(西城)에 사마의가 인솔하는 15만 대군이 밀려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고 물을 뿌려 깨끗이 청소하라. 적이 가까이 오더라도 각자의 깃발 밑을 떠나지 마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그는 머리에 윤건을 쓴 뒤 흰 학창의로 갈아입고 두 아이를 데리고 성루로 올라가 향불을 피우고 앉아 거문고를 뜯었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본 사마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 오싹하는 전율을 느꼈다.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엄습해왔다. 그는 제갈량이 자신에게 유인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여 ‘퇴각하라!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물러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라고 명을 내린다.
이 공성계(空城計)는 제갈량이 거문고 하나로 사마의의 15만 대군을 물리치는 유명한 일화이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한 번도 위험을 무릅쓴 모험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성문을 열어놓은 것을 보고 주위에 복병을 숨겨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 점을 역이용한 제갈량의 멋진 한판승.
이때 사마의가 퇴각한 것은 공성(空城)인 줄 알면서도 제갈량이 살아남아서 위에 위협이 되어야만 자신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물러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진의는 사마의만이 알 것이다.
적은 군사로 대군과 맞서 싸우는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적을 유인하여 쳐부수는 방법을 즐겨 쓸 수밖에 없었다. 소규모 전투에서 몇 번 이긴 제갈량이 한번은 사마의 부자를 호로곡으로 유인하여 거의 불에 태워 죽일 뻔 했으나, 때마침 쏟아진 소나기 때문에 실패한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더니….
여러 번 제갈량에게 당한 사마의는 나가서 싸우기를 포기하고 수비에 진력하기로 전략을 바꾼다. 촉군이 아무리 도발을 하고 앞에 가서 욕을 퍼부어도 위군이 꼼짝을 하지 않자, 제갈량은 상자 하나를 사마의에게 보냈다. 사마의가 상자를 열어보니 예쁜 머리띠와 여자옷 한 벌이 들어있었다. 서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대는 새색시인가? 그만한 대군을 가지고도 어찌 싸우려 하지 않는가. 그대가 남자라면 싸워서 무문(武門)의 이름을 드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남자답게 싸울 생각이 없으면 여자 옷이나 입어라는 뜻이니 모욕적인 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마의는 내심과는 달리 호탕하게 웃으며 ‘선물 고맙다고 전해 주시오.’하면서 사자(使者)에게 제갈량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상벌은 친히 재결하느냐? 식사량은 어떤가? 잠은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느냐?”
사자가 아는 대로 대답을 하자, ‘그렇게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용케 잘 버티는 군.’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돌아온 사자가 사마의가 묻던 것을 얘기하자, 제갈량은 탄식했다.
“사마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는 내 수명까지도 헤아리고 있구나.”
사마의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공격해 오도록 하는 계책이었으나, 이를 역이용하여 제갈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사마의, 역시 녹녹치 않은 인물이었다.
여기서, 사마의가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장기전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촉군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제갈량이 자신에게 완전히 패퇴하면 정적이 많은 자신도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가급적 전쟁을 오래 끌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사마의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가 내다본 대로 제갈량은 얼마 안 있어 피를 토하며 몸져누워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결국 질질 끌던 전쟁은 제갈량이 과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천문을 보고 제갈량이 죽은 것을 안 사마의는 물러가는 촉군을 맹추격한다. 그러다가 제갈량이 남긴 계책대로 촉군이 사륜거에 실은 제갈량의 목상(木像)을 앞세우고 기습을 하자, 사마의는 제갈량이 아직 살아있는 줄 알고 기겁을 하며 도망친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아나던 사마의, 뒤따라온 장수에게 ‘내 머리가 아직도 붙어 있느냐?’하고 물었다고 한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死孔明走生仲達].’는 속담과 함께 우스갯소리로 남아있는 일화이다. 그가 제갈량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어쨌거나, 살아남은 사마의는 제갈량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공로로 위의 원훈(元勳)이 되어 실권자의 지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들과 손자가 그가 품었던 원대한 꿈을 착착 이루어가는 것이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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