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이문열의 소설 '금시조(金翅鳥)'는 '한평생 미적 충동에 이끌리며 살아온 고죽이라는 예술가가 임종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생애를 회고해 보는 방식으로 씌어진 소설'(평론가 홍정선의 해설)입니다. 반세기 가깝게 명성을 누려왔으나 국전 심사위원도 거부하며 고집스럽게 자신을 지켜온 서화가의 삶과 방황, 고뇌를 통해 이문열은 미적 성취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예술가소설입니다.


주인공 고죽은 죽음이 임박하자 화방에 나도는 자신의 작품을 한사코 사들여 모조리 불태우게 하고 숨을 거둡니다. 평생 그토록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금시조, 그러니까 찬란한 금빛 날개의 새가 힘찬 비상을 하는 모습을 고죽은 그 불길 속에서 비로소 보고 갔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서예가든 화가든 소설가든 자신의 작품에 100% 만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작품을 불태워 세상에 남기지 않으려 하는 자기부정의 치열한 예술혼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불구덩이에 들어간 작품을 창작자의 아내나 친구가 불타 없어지기 직전에 수습함으로써 세상에 전해지게 된 경우도 많습니다.


10여 년 전에 작고한 한국화가의 작품을 그의 아들이 화랑가를 돌며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을 최근 들었을 때 이문열의 '금시조'가 생각났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아버지 작품에 대해 매겨진 시세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 작품이 고작 이 정도 평가를 받나?' 하는 생각인데, 이것이 순수한 예술적 차원의 섭섭함인지 미술품 매매과정에 대한 사업적 불만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문외한인 나도 그분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평가 받는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 생겼을까. 작품이 갑자기 많이 쏟아져 나와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원인까지 알 수야 없지만.


어쨌든 예술품을 구득(求得 또는 購得)했거나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원작자가 분신같이 아끼던 그 작품을 원작자처럼 아끼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이나 민간의 경우와 달리 정부나 공공기관의 미술품 관리는 부실하고 체계적이지 못합니다. 심지어 작품이 어디 갔는지 모르는 사례도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전시회를 개최한 서예가가 있습니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그 전시를 위해 제자들과, 제자의 제자들이 여러 소장자와 소장기관을 대상으로 작품을 빌려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서예가가 스스로 필생의 대작으로 꼽으며 아끼는 작품의 소장처에서는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10여 년 전 그곳에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싸움판이 벌어져 호스로 물을 뿌리고 치고받고 싸우는 과정에서 작품이 망가져 아직도 창고에 처박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기관은 부속 기구도 아주 많은데 미술품 전체를 총괄 관리하는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고 건물별로 관리자가 다 다릅니다. 그나마 관리자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누구의 무슨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게 돼 있습니다. 일부 돈 주고 사들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기증받은 작품이다 보니 미술품이 귀한 줄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귀한 걸 아는 사람은 슬쩍 개인적으로 빼돌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그 서예가의 작품을 12점이나 소장하고 있는 어느 지방대학의 경우는 처음엔 빌려줄 것처럼 하더니 "실은 몇 년 전 건물에 불이 났을 때 다 타버렸다"고 실토하더랍니다. 한두 점도 아니고 그동안 작품을 어떻게 관리해왔는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10여 년 전, 어느 회사의 경우는 창사 기념일에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휘호 작품이 인사동 경매시장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회사 간부 중 누군가가 빼돌려 팔아먹은 것인데, 그 회사 건물의 창고와 같은 공간에는 저명 화가들의 작품과 조각품이 먼지와 거미줄에 휩싸인 채 오래 방치돼 있었습니다. 미술품을 거래 대상이나 치부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판에 왜 그런 생각마저 하지 못하는지 정말 의아할 정도로 관리가 엉망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경우 미술품 일제 점검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장품 현황, 소장하게 된 경위와 그동안의 관리 등을 스스로 잘 챙겨봐야 합니다. 스스로 하지 못하면 상급 기관이나 감독기구가 나서서 전수 조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와 미술품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미술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문화를 개선하는 의미도 있는 일입니다. 잘못된 미술품 관리를 바로잡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積弊) 청산의 한 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378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