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새(玉璽)는 옥으로 만든 임금의 인장으로, 군주의 신분과 권위의 상징물(status symbol)이다. 제국이나 왕조의 역사는 옥새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옥새가 만들어진 기원과 삼국지에서의 유전과정(流轉過程)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 어떤 사람이 형산의 한 바위에 봉황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하여 바위를 깨뜨려보았더니 그 안에서 옥 덩어리가 나왔다. 그 사람은 옥을 초나라 문왕께 바쳤고, 초나라를 멸망시킨 진시황이 그 옥을 가지게 되었다. 진시황은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인장을 만들게 하고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여덟 글자를 새기게 했다.

受命於天(수명어천) 명을 하늘로부터 받았으니
旣壽永昌(기수영창) 영원토록 크게 번창하리라


그로부터 2년 뒤, 진시황이 동정호를 순행하는 중에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려 했는데, 옥새를 물에 던졌더니 곧 풍랑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 후 10년 동안이나 동정호 물속에 잠겨있던 옥새는 한 어부에 의해 발견되어 다시 진시황에게로 돌아왔다.

진시황이 죽은 후 다시 천하를 통일하게 된 한고조 유방은 진시황의 아들로부터 옥새를 물려받았다. 그 후 황제에게서 황제에게로 계속 이어져온 옥새는 전한 2백년이 끝날 무렵, 외척인 왕망의 손에 잠시 들어간 적이 있었으나, 후한의 창시자 광무제 유수가 다시 탈환하여 후한말까지 대대로 이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후한 말, 환관들에 의해 대장군 하진이 피살되는 십상시(十常侍)의 난이 일어나 400년 이상 이어져 온 전국(傳國)의 옥새가 분실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옥새 없는 황제, 후한은 이때부터 이미 망조(亡兆)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옥새는 어디로 갔을까? 당시 조정에서는 서량의 군벌 동탁이 대권을 잡고 마음대로 황제를 폐위하고 새 황제를 세우는 등 포악한 독재정치를 하고 있었다. 이에 원소 손견 조조 등 각지의 제후들이 ‘타도 동탁’을 외치며 연합군을 편성하여 도성으로 쳐들어왔다. 동탁은 낙양을 불태우고 수도를 장안으로 옮겼다.

이때 연합군의 선봉으로 낙양에 입성한 강동의 호랑이 손견은 궁궐의 한 우물에서 오색찬란한 서기(瑞氣)가 뻗어 나오는 것을 보고, 우물을 수색하였더니 십상시의 난 때 잃어버린 옥새가 나왔다.

옥새를 주웠다면 조정에 반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당시는 군웅들이 활개를 치는 난세였으니, 그래봤자 야심만만한 동탁이 차지할 것이 뻔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옥새를 얻은 손견은 하늘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슴 속에 원대한 야심을 품게 되었다.

다음날, 그는 군사를 이끌고 그의 근거지인 강동으로 향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연합군의 맹주(盟主) 원소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황실의 친족인 형주의 유표에게 ‘남하하는 손견을 저지하여 옥새를 뺏어라.’는 밀서를 보냈다.

손견과 유표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손견은 아깝게도 전사한다. 너무 성급하게 야망을 쫓으려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만 것이다. 옥새는 그의 맏아들인 손책이 물려받았다.

남양의 군벌 원술 아래에서 객장 노릇을 하고 있던 손책은 차츰 나이가 들자, 선친 손견의 야망을 이어 받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는 옥새를 담보로 맡기면서 원술에게 군사를 빌려달라고 했다. 옥새에 탐이 난 원술은 군사 3000명과 말 500필을 내주었다. 빌린 군사를 이끌고 선친을 보좌한 장수들과 함께 강동으로 향하는 손책.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손책은 강동의 여러 지역을 평정, 당당한 실력자로 부상한다. 손책은 원술에게 사자를 보내 빌린 군마를 갚아줄 테니 옥새를 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제위(帝位)를 꿈꾸어온 원술이 옥새를 내어줄 리 없었다. 원술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끝내 옥새를 돌려주지 않는다.

드디어 원술은 근간에 이룬 성공에 도취, 옥새를 가진 것을 기화로 스스로 제위에 오른다. 실권은 없지만 엄연히 한의 황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된 원술은 주지육림 속에 묻혀 살면서 주위의 군웅들을 모두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를 토벌하려는 조조 유비 여포 손책의 연합군과 맞붙었다가 참패한 원술은 옥새를 종형인 원소에게 넘겨주려고 가다가 어느 산골에서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 역시 옥새를 가진 것에 흥분하여 조급하게 뜻을 이루려다가 패망하고 만 것이다. 이것은 손견과 원술 모두 옥새의 진정한 임자가 아니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원술이 가지고 있던 옥새는 드디어 조정의 실권자 조조에게 돌아와 한의 황제에게로 되돌아간다. 군웅들의 손에서 손으로 유전하던 옥새, 한의 황제를 받들고 있는 조조에 의해 마침내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조조가 죽자, 그의 아들 조비는 허수아비 한 황제에게서 제위를 찬탈, 위 황제로 즉위한다. 옥새는 이제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로 넘어간다. 이에 의분을 느낀 촉의 유비, 오의 손권도 각각 옥새를 새겨 황제로 즉위하니 한 사람만 있어야할 천자(天子)가 세 사람이나 되었다. 바야흐로 삼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의 황제로부터 제위를 찬탈한 조비는 재위 7년 만에 죽고, 그의 아들 조예에 이어 손자 대에 이르자, 또다시 위 황제는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 모든 실권은 명장 사마의의 아들인 진왕(晋王) 사마소가 가지게 되고…. 사마소는 유비의 아들 유선이 통치하는 촉을 평정하여 옥새를 셋에서 둘로 줄인다.

사마소가 죽자 그의 아들 사마염이 진왕이 되고, 위 황제 조환에게서 옥새를 빼앗아 진 황제가 된다. 45년 전에 조비가 행한 짓을 그의 손자가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당하게 되는 것이다. 진 황제 사마염이 오를 쳐서 평정하여 드디어 삼국을 통일하니, 마침내 옥새는 하나가 된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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