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락이 있고 연후에 천리마가 있다'

이백 두보 백거이와 함께 당(唐)의 4대 시인이요,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兪)의 ‘잡설(雜說)’에 나오는 말이다. 말(馬)을 잘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천리마가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의 재지(才智)를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리라.

백락(伯樂)은 원래 천마(天馬)를 다스리는 별의 이름이다. 옛날 손양(孫陽)이라는 사람이 말을 신통하게 잘 감정했으므로 그를 백락이라 불렀는데, 그때부터 말을 잘 감정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옛날 전쟁터에서는 자신의 생사가 말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장의 무사에게 있어서 말은 곧 그 자신의 생명이었다.

소설 삼국지에는 수없이 많은 군웅들이 등장하고 또 그만큼 많은 말들이 등장하는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千里馬)도 나온다. 천리라면 400km, 즉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이다. 이 거리를 능히 하루 만에 달리고, 산을 오르거나 물을 건너기를 평지 달리듯 한다는 천리마.

삼국지에 등장하는 말 중에서 천리마로는 서량자사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면서 타고 온 적토마(赤兎馬)와, 조자룡이 장무에게서 빼앗아 유비에게 준 적로(馰盧)를 들 수 있다. 우선 적로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 한 고을의 성(城)과도 바꿀 수 없다는 희대의 명마인 적토마의 유전(流轉) 과정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유비가 형주의 유표에게 의지하고 있을 때, 장무와 진생이라는 토호가 형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유비는 자청하여 반란군 토벌에 나섰고 마침내 반란군을 평정, 적장 장무가 타던 준마(駿馬)를 손에 넣었다.

기름지고 준수한 자태, 날렵한 몸매, 이마에 박힌 흰 점, 누가 봐도 명마임이 틀림없었다. 유표가 그 말을 탐내자, 유비는 스스럼없이 그 말을 유표에게 주었다. 괴월이라는 사람이 그 말을 찬찬히 훑어보고 유표에게 말했다.

“저의 형은 마상(馬相)을 볼 줄 아는데 그 때문에 저도 배운 바가 있습니다. 네 다리가 하얀 사백(四白)과 이 말처럼 이마에 흰 점이 박혀 있는 적로는 흉마입니다. 이런 말을 타면 주인이 화를 입는다고 합니다. 장무도 이 말을 타고 죽었으니 주공께서는 이 말을 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아진 유표, 다시 유비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유비가 그 말을 타려고 했을 때, 참모 이적이 괴월이 하던 얘기를 들려주며 그 말을 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비는 ‘사람의 생사는 명(命)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는 법, 한 필의 말에 달려 있지는 않을 것이오. 어찌 말이 주인을 해치겠소.’하며 개의치 않았다.

그 후, 유비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유표의 처남 채모가 유비를 초대해놓고 군사를 풀어 유비를 죽이려했다. 채모는 물살이 험한 단계(檀溪)가 가로막고 있는 서쪽을 제외한 동쪽 남쪽 북쪽에 물샐틈없이 군사를 배치했다. 이를 눈치 챈 유비는 서쪽으로 말을 몰았다. 추격병이 쫓아왔다. 단계의 급류 앞까지 달려온 유비, 적로에게 채찍을 내리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적로야, 너는 나를 해치려 하느냐, 구하려 하느냐!”

순간, 적로는 휙~ 솟구쳐 오르더니 3장(三丈, 약 9m)이나 되는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저쪽 기슭에 내려섰다. 채모 일당이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주인을 해친다는 적로, 오히려 주인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명마는 반드시 주인이 있고, 주인을 만난 명마는 반드시 이름값을 한다. 적로도 이제 주인을 만났기 때문에 명마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다음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말 중에서 가장 완벽한 명마로 추앙받고 있는 적토마의 생애를 더듬어 보자.

적토마,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1장(약 3m)이고, 굽에서 목까지의 높이가 8척(약 1.8m)인, 온몸에 한 올의 잡털도 없는 준마. 활활 타오르는 붉은 빛을 띠고 있어 바람을 뚫고 달릴 때는 그 용자(勇姿)가 마치 화염이 흐르는듯하다는 천리마.

첫 주인은 동탁이었다. 삼국지 최고의 무용을 자랑하는 여포, 적토마를 주겠다는 동탁의 제안에 눈이 뒤집혀 의부(義父)인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휘하에 들어간다. 이 적토마가 두 번째 주인인 여포를 만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맹장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적진 속을 무인지경으로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유비 관우 장비 3형제와의 저 유명한 호뢰관의 3전(三戰)도, 조조진영의 여섯 장수의 분전도 모두 여포와 적토마를 한껏 빛나게 했을 뿐, 이들 콤비 앞에는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적토마도 주인인 여포가 처첩의 치맛자락에 싸여 방천화극을 놓고 있는 사이, 그의 부하에 의해 세 번째 주인인 조조에게 넘겨진다. 천하무적이었던 여포가 조조의 손에 목이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 후 관우가 조조에게 조건부 항복을 하자, 그의 무용을 흠모한 조조는 관우의 마음을 얻어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적토마를 준다. 동탁, 여포를 거쳐 조조의 손에 넘어왔던 적토마, 이제야 진정한 주인, 마지막 주인을 만난다.

이때부터 관우와 적토마는 생사를 같이 한다. 관우가 원소 진영의 두 맹장 안량과 문추를 단칼에 베는 데 적토마는 유감없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 또 관우가 오관을 돌파하면서 조조진영의 여섯 장수를 무찌르는 영웅적인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적토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결국 관우는 침략한 오군에게 쫓겨 들어간 맥성에서 나오다가 사로잡혀 참수형을 당하고 마는데, 그날부터 적토마는 풀을 먹지 않았다. 향기로운 사료를 주어도, 물가로 데려가 물을 먹이려 해도 목을 흔들며 맥성 쪽을 향해 슬픈 듯이 울부짖기만 할 뿐.

적토마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날이 슬피 울기만 하더니 어느 날 그 울음소리마저 내지 않았다. 굶어죽은 것이다. 탐욕과 이기심,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주인을 따라 죽은 희대의 명마 적토마를 생각해 본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235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