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행정조직망인 연통제(聯通制)와 통신기관인 교통국(交通局)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에 대한 선전· 독립운동 자금 조달·민심 동향 및 적(敵) 실정 수집·인물 소개 등의 국내 정보활동을 해오던 임시정부가 조직과 체계를 갖추면서 전문 정보기관인 지방선전부(地方宣傳部)와 선전대(宣傳隊)를 설치하게 된다.


내무총장과 노동총판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가정보활동을 총괄한 안창호(安昌浩)의 ‘도산일기(島山日記)’에 관련 내용들이 전해지고 있다. ‘내부 선전기관을 속히 조직하자 하야 가결되고 선전위원장으로 여(余)가 피선되다’(1920. 1. 19), ‘최근우(崔謹愚, 3‧1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된 동경 2‧8 독립선언 11인 대표 중 한 사람) 군을 청하야 선전기관의 내용을 설명하고 참가하기를 권함에 명일(明) 혹은 재명일(再明日)로 답하겠노라 하다’ (1920. 1. 23), ‘개인이 직접으로 위원장의 명령을 수(受)하야 진행함이 기밀(機密)하겠고, 대원(隊員)간에 면지(面知)는 불가하다’(1920. 2. 6)


선전대원은 도산이 각 개인별로 접촉하여 선전대원으로 활동할 것을 권유하였고, 당사자가 이에 응낙하는 식으로 선발하였다. 이렇게 선발한 대원의 숫자가 일기에 기록된 것만도 53명에 이르고, 대원들 상호간에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게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1920년 3월 10일 공포된 ‘지방선전부 규정’, ‘선전대 설치규정’, ‘선전대 복무규정’은 보다 구체적이다. ‘지방선전부는 내외에 있는 국민에 대한 선전 (宣傳)사무를 강구집행(講究執行)하는 비밀기관으로 한다’, ‘총판(總辦)을 최고 책임자로 하며, 총판은 국무총리에 예속한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정신으로 직무에 복응(服膺)하고 결사의 정신과 용기를 확립하여야 한다‘. ’상관의 지휘명령이 있을 때에는 경우의 험(險)과 수행의 난(難)을 물론(勿論) 하고 용감 충실히 직무를 집행하여야 한다‘, ’오로지 상관의 명령만을 수행 하며 결코 천겁(擅劫)의 행동을 하지 않음을 요한다‘, ’누구에게도 자기와 동료의 신분을 노출해서는 안된다‘, ’단체 또는 개인의 장단(長短)을 논평 하거나 직무상 견문한 사항을 신문 잡지 등에 게재할 수 없다‘. 본속(本屬) 장관의 허가 없이 직무지를 떠나거나 사단체(私團體)에 취직할 수 없다’


거의 100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가정보기관의 이러한 정신은 오늘의 ‘국가정보원법’ ‘국가정보원 직원법’ ‘국가정보원 직원 복무규정’ 등에 면면 (綿綿)히 이어져 오고 있다. 서훈 국정원 원장이 지난 주 인사청문회에서 한 ‘정권은 유한하고 국가정보기관은 대한민국과 함께 영원하다’는 말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일 것이다. 국정원은 그동안 보수든 진보든 새로운 정권이 들어 설 때 마다 외부 개혁의 칼바람 속에서 5년 내내 극심한 내홍(內訌)을 겪어 왔다. 이번에 새로운 진용을 갖춘 간부들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국정원 출신들이다.


‘동료(同僚)간에는 항상 융화친애(融和親愛)하여 범사(凡事)를 협동(協同) 보익(輔翼)하여야 한다’는 선전대 복무규정 제12조와, 1920년 1월 22일자 도산일기에서 특수임무를 띠고 국내로 잠입하는 정보요원에게 ‘국내의 유력한 동지들에게 말하되 안전하기 위하여 과도한 근신주의(謹愼主義)로 활동 없는 지위에 입(立)하지 말고, 모험적(冒險的) 처사(處事)를 힘쓰라‘는 도산의 말을 권한다. 권하긴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 본 기고는 2016년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으로 연세대 국가관리 연구원에서 수행되고 있는 ‘한국적 국가정보이론 수립을 위한 국가정보 활동 사료 수집정리’ 사업의 일환입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통일연구회 연구기획실장 장석광

-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연구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21세기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안보통일연구회 연구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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