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을 제패한 조조가 중원을 통일하기 위해 백만 대군을 이끌고 장강 가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적은 유비와 손권뿐이다. 조조는 술 한 잔 마시고 감회에 젖어 시 한수를 읊었다. 그가 읊은 '단가행(短歌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月明星稀(월명성희) 달은 밝고 별은 희미한데

烏鵲南飛(오작남비) 까막까치는 남으로 날아가네

여기서 달은 조조 자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달빛에 가리어 희미해진 별은 점차 사라져가는 군웅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조조에게 쫓겨서 남쪽으로 도망가는 유비와 손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조는 오의 손권에게 먼저 격문을 보냈다.


"나는 강북을 평정하고 이제 사나운 군사 백만을 이끌고 장강 가에 와 있소. 우리, 힘을 합쳐 유비를 무찌르고 함께 사냥이나 즐기지 않으려오?"


겉으로 보기에는 점잖은 문구지만 내용은 거의 협박조가 아닌가. 오의 조정은 화친이냐 항전이냐로 연일 격론이 벌어져 좀처럼 국론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오주 손권은 주유에게 의견을 물어 의사를 최종 결정할 생각이었다.


이때, 쫓기던 유비는 조조와의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 제갈량을 오에 파견했다. 제갈량은 먼저 오의 중신들을 만난 다음, 마지막으로 주유를 만났다. 제갈량은 두 사람을 배에 실어 보내면 조조의 백만 대군이 저절로 물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솔깃해진 주유가 두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 제갈량은 대답에 앞서 조조의 근황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필생의 적수인 원소를 평정한 조조가 장하 강가에서 쉬고 있을 때, 문득 한 곳에서 휘황찬란한 금빛 기운이 뻗쳐올랐다. 그곳을 파보니 구리로 된 참새[銅雀] 한 마리가 나왔다. 조조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거대한 누각을 짓고 동작대(銅雀臺)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부터 조조는 '내게 두 가지의 소원이 있는데, 하나는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동에서 이교(二喬)를 데려와 동작대에서 함께 만년을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교를 보내면 틀림없이 조조는 물러갈 것이오"


이교라 함은 절세가인으로 이름난 대교와 소교 자매를 일컫는 말이다. 대교는 손책의 부인으로 이미 과부가 되었고, 소교는 주유의 부인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제갈량은 일부러 모르는 체 하면서 주유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다. 주유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떠도는 말을 어찌 믿겠소. 조조가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가 있소? 있으면 대보시오"


주유가 반문하자, 제갈량은 다시 설명을 했다. 조조는 동작대 준공기념으로 셋째아들 조식에게 동작대부(銅雀臺賦)를 짓게 했는데, 그 시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주유는 그 시를 들려달라고 했다. 제갈량이 동작대부를 낭랑하게 읊기 시작했다.

명후(明后)를 따라 노닐음이여

높은 대(臺)에 오르니 정취 더욱 즐겁구나

태부(太府) 넓게 열려있음이여

성덕(聖德)이 황송함을 본다

높이 세운 문 불쑥 솟아있고

두 대궐 푸른 하늘에 뜬 듯하다

중천(中天)에 서서 황홀하게 바라보니

서쪽에서부터 공중누각이 잇대었구나

강물의 긴 흐름을 끼고 돌며

먼 동산의 과일 영그는 것을 바라보노라

두 대(臺)를 좌우에 벌려 세우니

하나는 옥룡(玉龍)이요, 하나는 금봉(金鳳)이다

이교(二喬)를 동남(東南)에서 데려와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라

제갈량이 거기까지 읊었을 때였다. 갑자기 쨍그렁~ 하는 소리가 났다. 주유가 술잔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주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이윽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조 이 늙은 역적이 나를 욕보이는구나! 내 기어코 이놈을 잡아 응징해야겠소"


그런데 원래 조식이 지은 동작대부는 '두 다리[二橋]를 동서로 이어서[連二橋於東西兮]'인데, 제갈량이 '이교(二喬)를 동남에서 데려와서[攬二喬於東南兮]'로 슬쩍 바꾸고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라'라는 구절까지 슬그머니 집어넣은 것이었다. 제갈량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시치미를 떼고 왜 화를 내는지 물었다.


"대교는 돌아가신 손책의 부인이시고, 소교는 바로 저의 안사람이외다"


주유가 대답하자, 제갈량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말을 함부로 했노라고 사죄했다. 주유는 '그대는 아무 잘못이 없소'하며, 다시 한 번 조조가 있는 북쪽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내 맹세코 조조 그 늙은 역적과는 같은 하늘을 이지 않으리라!"


결국, 오나라는 주유의 결단에 따라 조조와 싸우기로 국론을 정했고, 결국 유비와 함께 5만 연합군으로 적벽에서 조조의 백만대군을 화공으로 괴멸시키게 되는 것이다. 조조는 이교의 손목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피눈물을 씹으며 패주하지 않는가.


그런데 제갈량이 이교의 일로 주유를 격동시킨 일은 정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연의의 저자가 재미있게 각색한 이야기이리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오의 최고사령관인 주유가 제갈량의 말 몇 마디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으로 국가 대사를 결정했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연의에 나오는 그 내용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시문까지 변조해가며 두뇌전략을 구사하는 두 재사의 현란한 지모 싸움은 소설 삼국지를 한껏 재미있게 해주는 빛나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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