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임정혁의 수요편지㊶] 6·10독립만세운동 바로 알기
[에세이/임정혁의 수요편지㊶] 6·10독립만세운동 바로 알기
  • 편집국
  • 승인 2017.06.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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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은 1926년 6·10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의 3·1운동이 일어난 날은 공휴일인 3·1절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고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11월 3일은 법정기념일인 학생독립운동기념일(학생의 날)로 지정되어 있음에 비해 1926년 6·10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은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6·10독립만세운동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6·10독립만세운동이 자세히 비중 있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6 ·10 독립만세운동 선창터,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2번 출구에서 약 50m에 위치
1919년 3·1운동 이후 해외 각지에서 움텄던 독립운동도 미국이나 서구열강의 지원 저조로 소강상태에 있었고 국내에서 1920년부터 활발히 전개된 실력양성운동에 의해 민립대학설립운동이나 물산장려운동 등이 추진되었지만 일제의 문화정치라는 허울 아래 교묘한 술책과 탄압에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예상보다는 큰 진전이 없었고, 만주의 무장독립투쟁도 1920년 청산리 대첩으로 절정을 이룬 뒤 1922년을 고비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국내외 기성세대들의 민족운동이 침체되어가는 상황 속에 1920년대 이전 분산적이고 비조직적인 동맹 휴학의 성격에서 벗어나 학생층 전체를 망라한 계획적이며 조직적인 항일학생운동으로 발현되었던 것이 6·10독립만세운동이었습니다.

▲6·10운동을 탄압하는 일제 경찰

재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자조와 실의 속에 살다가 1926년 4월 26일 승하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전 국민의 애도는 국가 없는 민족의 설움을 대변하며 반일 감정의 결정적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일제는 3·1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철저한 경계 태세를 갖추어 육해군 7000여 명을 경성에 집결시키고 부산과 인천에 함대를 정박시켜 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만세운동은 대체로 세 갈래로 추진되었는데, 첫째 계열은 노동계로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추진되다가 중국지폐위조사건 등으로 사전에 발각되어 연루자가 붙잡힘으로써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둘째 계열은 전문학생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이들의 거사계획은 일제의 감시가 기성 독립 운동가들에게 쏠리는 틈을 타 이뤄졌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어갔고, “2000만 동포의 원수를 구축(驅逐)하라! 피의 대가는 자유이다. 대한독립만세!”라는 1만여 매의 격문을 작성하여 각자의 학교 학생들에게 배포하였습니다. 셋째 계열은 중등학교 학생 중심으로 중앙고보와 중동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2000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라는 격문 5000매를 등사하여 나누어 가진 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장례일)에 참가한 2만 4000여 명의 학생들은 순종의 상여가 종로 3가 단성사 앞을 지날 때, 중앙고보생 30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감행한 것을 시작으로 중앙고보생, 중동학교생 등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살포하는 등 학생들의 항일독립만세 시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에 군중들도 합세하여 제2의 3·1운동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으나 군대까지 동원한 일제의 탄압에 저지당하고 말았습니다. 6·10만세운동으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힌 인원은 서울에서 210명이었고,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中


6·10독립만세운동은 처음에는 서울에 국한되어 일어났으나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통해 일제에 항거하였는데, 고창·순창·청주·울산·군산·평양·홍성·공주 등지뿐만 아니라 당진·강경·전주·하동·이원까지 파급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6·10독립만세운동은 학생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계획, 추진된 운동으로 3·1운동 이후 꾸준히 다져온 학생들의 결사·동맹휴학·계몽활동 등의 학생운동이 결집된 소산으로 나타난 항일운동이었으며, 침체된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안겨주고 3·1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교량적 구실을 담당하여 꺼지지 않는 민족 독립운동사의 하나의 큰 횃불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6·10독립만세운동 기념식과 관련 행사는 운동의 주축이 된 필자의 모교인 중앙고등학교에서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역사와 학생운동사에 큰 의미가 있는 6·10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져 기념행사 또한 더 큰 규모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교인 중앙고등학교에서 기념사를 하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

내외뉴스통신/내외경제TV 상임고문 임정혁

- 현, 법무법인 산우 대표 변호사
- 법무연수원장

- 대검찰청 차장검사, 공안부장

- 서울고등검찰청 고등검사장, 형사부장

- 중앙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합격,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 황조․홍조․근정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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