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를 물리치고 강북을 제패한 조조는 그 여세를 몰아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향했다. 이때 새로 형주의 주인이 된 유표의 둘째아들 유종은 조조의 군세에 놀라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말았다. 형주가 조조의 수중에 떨어지자, 기댈 곳이 없어진 유비는 조조의 대군에 밀려 남쪽으로 쫓겨 갔다.


새로 병합한 형주의 군사까지 합쳐서 백만대군을 이끌고 장강까지 남하한 조조, 이제 강남의 손권을 평정하여 천하 제패의 대업을 완수하느냐, 아니면 손권과 천하를 나누어 가지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조조는 손권에게 ‘항복과 결전’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유비는 제갈량을 손권에게 보내 함께 연합하여 조조의 남하를 막자고 제안했다. 오의 중신들은 화전(和戰) 양론으로 맞서 팽팽하게 대립했고, 손권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손권은 전방에 나가있는 주유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손권의 형 손책이 죽을 때 유언하기를, '외환(外患)이 있을 때는 주유에게 의견을 물어라'고 했던 것이다.


오나라 최고의 명장 주유의 결전의지를 확인한 손권은 제갈량과 오의 중신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보검으로 탁자를 내리쳐 둘로 쪼개면서 소리쳤다.


"결전이다! 이제부터 나에게 항복을 권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렇게 되리라!"


손권은 주유에게 대도독의 인수를 주며, 오군을 총괄하게 했다. 드디어 삼국지 최고의 분수령인 적벽대전의 막이 오른 것이다.


조조는 적벽 앞에 진을 치고 취약한 수군을 중점적으로 조련했다. 북쪽에서 온 조조군은 수전에 익숙지 않아 배 멀미 환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주유는 재사 방통을 보내 조조군의 배들을 쇠사슬로 서로 묶게 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육지처럼 만들어서 조조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적벽을 거슬러 올라가 대안(對岸)에 진을 친 주유가 화공(火攻)으로 조조의 선단을 깨뜨리기로 전략을 세우고 구체적인 방안을 짜느라 고심하고 있을 때, 마침 원로장수 황개가 찾아와 '나는 3대에 걸쳐 오의 국은을 입은 몸, 나라를 위해 늙은 몸을 바치겠다'며 고육계(苦肉計)를 자청했다.


다음날, 황개는 주유가 내리는 군령이 부당하다며 정면으로 맞서다가 초주검이 되도록 태장을 맞은 뒤 거짓 항서(降書)를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오군에 심어놓은 간첩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 황개의 투항을 믿게 되었다.


이제 바람이 문제였다. 동남풍이 불어야만 북쪽에 진을 치고 있는 조조의 선단에 화공을 가할 수가 있는데, 겨울이라 계속 북풍만 불고 있었다. 이때 제갈량이 제단을 차려놓고 지성으로 기도하자, 드디어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다.


황개는 배 20척에다 불에 타기 쉬운 건초, 유지(油脂) 등을 가득 싣고 조조의 진채를 향해 출발했다. 조조의 군영에서는 이를 보고 황개의 항선(降船)이 오는 줄 알고 기뻐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조조의 선단에 가까이 이르자, 20척의 배는 모두 건초더미에 불을 붙이고 일제히 돌진했다.


세차게 불어오는 동남풍으로 인해 불길은 거침없이 조조의 군선으로 옮겨 붙어 서로 연결된 조조의 선단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조조의 군사들은 대부분 불에 타 죽거나 아니면 불길을 피해 강물로 뛰어들어 익사했다.


이때 강에서는 주유의 수군이, 육지에서는 유비의 육군이 돌진해왔다. 우왕좌왕하고 있던 조조의 군사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도망치기에 바빴다. 강성함을 자랑하던 조조의 백만대군이 손권과 유비의 5만 연합군에게 여지없이 참패한 것이다.


조조는 패잔병을 이끌고 북으로 패주했다. 제갈량은 조조가 가는 길목마다 복병을 배치하여 끝까지 조조를 괴롭혔다. 패주하던 조조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봉효가 있었더라면 내가 이토록 처참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봉효란 얼마 전에 병사(病死)한, 조조진영의 일급모사인 곽가를 이르는 것이다.


이 적벽대전은 욱일승천하던 조조에게 쓰디쓴 좌절을 맛보게 한, 삼국지 최고의 분수령이 된 전투이다. 이미 여포 원술 원소 등을 평정하여 이제 손권과 유비만 제거하면 바야흐로 중원을 제패하게 되는 조조가 이 적벽에서의 패배로 그 꿈이 무참히 좌절되는 것이다.


당시 연합군에는 제갈량 주유 노숙 방통 등 당대의 일급모사들이 총동원되어 지모를 펼쳤으나, 조조 진영의 모사는 고작 정욱과 순유뿐이었다. 그 때문에 월등한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모의 싸움에서 이긴 연합군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적벽대전에 동원된 계책은 마치 지략의 종합세트 같다. 황개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 상대가 믿도록 한 것은 고육계, 거짓항복을 한 것은 사항계(詐降計), 적진에 심어둔 간첩을 통해 조조로 하여금 수군도독을 의심케 하여 처형토록 한 것은 반간계(反間計), 방통을 보내 조조의 선단을 서로 묶게 한 것은 문자 그대로 연환계(連環計), 불로 공격한 것은 화공계(火攻計).


여기서, 정사를 참조하여 적벽대전의 몇 가지 요소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첫째, 양측의 군세이다. 연합군의 군세는 5만 명이 맞다. 그러나 백만대군이라는 조조의 군세는 실제로는 20만 명(15~25만 명) 정도였다. 그것도 원소와 유표의 항병(降兵)을 합친 숫자였다.


둘째, 두 진영에서 펼친 현란한 계책들이다. 황개의 사항계는 정사에도 나와 있으며, 배끼리 서로 쇠사슬로 묶은 것은 배 멀미를 줄이기 위해 조조군 자체에서 짜낸 아이디어이다. 나머지 여러 계책들은 연의 저자의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셋째, 동남풍 문제이다. 제갈량이 제단을 차려놓고 동남풍을 빈 것은 쇼맨십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오랫동안 이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언제쯤 동남풍이 부는지 알고 있었다.


어쨌든, 적벽대전 승리의 으뜸가는 공은 오의 대도독 주유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지만, 그 결실은 유비가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적벽대전의 패배로 조조가 주춤하는 사이, 유비는 형주를 차지한 데 이어 서촉을 얻게 되어 바야흐로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기틀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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