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평] 삼국지 - 도원결의(桃園結義)의 시작과 끝 (86)
[연재소설/평] 삼국지 - 도원결의(桃園結義)의 시작과 끝 (86)
  • 편집국
  • 승인 2017.06.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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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네 글자로 요약해보라고 하면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도원결의(桃園結義)'라고 말할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서 시작하여 죽음이 세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한 편의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돗자리를 짜서 생활하면서도 큰 뜻을 잃지 않은 교룡(蛟龍) 유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삼국지 최고의 무사(武士) 관우, 호탕하고 직정적(直情的)인 성품의 호걸(豪傑) 장비. 이들 세 사람이 복숭아꽃 만발한 화원에서 검은 소와 흰 말의 피를 섞어 나누어 마신 뒤 향을 사르며 형제의 의를 맺은 것을 천지신명께 고하는 것이 바로 도원결의이다.


"천지신명께 고하노니,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이제 의(義)와 정(情)으로 맺어 형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몸과 마음을 한데 합쳐 서로 도우며 위로는 나라를 구하고 아래로는 창생을 평안케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비록 성도 다르고 생년월일도 다르지만 형제가 된 이상, 고난을 함께 하며 원컨대 같은 날 같은 시에 죽고자 합니다. 황천후토(皇天后土)여, 이 뜻을 굽어 살피소서! 만일 우리 가운데 대의를 저버리거나 형제의 정을 망각하는 자가 있거든 천인(天人)으로부터 벌을 받도록 해주시옵소서!"


이들 세 사람도, 저마다 뜻을 세우고 일어선 군웅들처럼 의병을 모집하여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이들은 저 넓은 중원을 떠돌아다니면서 아무리 큰 난관이 닥쳐도 이를 극복하면서 그 맹세를 지켜간다. 이들이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남긴 유훈을 되새겨 보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첫 번째 난관은 장비에게 찾아왔다. 서주의 유비와 남양의 원술이 격전을 치르고 있을 때, 서주성을 지키고 있던 장비는 유비의 거듭된 주의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고 주벽을 부리다가 잠이 들었다. 이때 장비에게 욕을 당한 부하의 밀고(?)로 여포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술이 덜 깬 탓에 유비의 두 부인을 구해내지 못하고 패퇴한 장비, 다시 유비를 만나게 되자, 그 죄책감 때문에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 한다. 이때 유비는 재빨리 장비의 칼을 빼앗아 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妻子)는 의복과 같다 하였다. 의복이야 떨어지면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손발은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이을 수가 없다. 우리 셋은 함께 죽기로 맹세한 형제인데, 어찌 네가 그만한 잘못으로 혼자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냐!"


처자식보다도, 일국의 성(城)보다도 형제의 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유비. 장비는 죄책감으로 땅바닥에 이마를 찧었고, 세 사람은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포가 유비의 두 부인을 잘 보호하고 있어서 이 문제는 별 탈 없이 해결이 되었다.


두 번째 난관은 관우에게 찾아왔다. 조조가 대군을 몰아 서주의 유비를 공략하자, 패주하던 세 사람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유비는 기주의 원소에게로 갔고 장비는 망탕산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유비의 두 부인을 보호하고 있던 관우는 조그만 토산에서 조조군에게 겹겹이 포위당하고 말았다. 관우의 뛰어난 무용과 남다른 충의를 흠모해온 조조가 항복을 권해왔다.


싸우다가 장렬하게 옥쇄하려 했던 관우는 함께 죽기로 맹세한 도원결의와 유비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결국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즉시 떠난다'는 조건으로 항복한다. 그때부터 관우는 조조의 극진한 후대와 정성을 다한 회유를 받았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유비의 소식을 알아낸 관우는 보장된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한 뼘 땅도 없는 떠돌이 객장 유비를 찾아가는 것이다. 저 유명한 오관돌파를 하면서.


헤어졌던 세 사람은 다시 만나 도원의 의를 잇게 된다. 그 후 오의 손권과 함께 적벽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유비는 마침내 형주와 서촉, 한중을 평정, 촉한부흥의 기치를 내세우며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이때가 세 사람의 일생 중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리라.


그러나 중원 통일의 위업을 이루려고 분골쇄신하던 중에 기어코 비극이 찾아오고 말았으니, 형주를 지키면서 위를 공략하여 큰 전과를 올리고 있던 관우가 후방을 기습한 오의 명장 여몽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오주 손권의 간곡한 회유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영예로운 죽음을 택한다.


조조도 마다하고 손권도 마다하고 의롭게 죽은 그의 일생은 유비를 위해 바쳐진 것이었다. 관우가 지금까지도 관성대제(關聖大帝)로 모셔져서 무신(武神)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의 때문이리라.


관우의 죽음으로 도원결의의 일각이 무너지고 말았으니, 함께 죽기로 한 맹세를 어찌할거나! 드디어 마지막 난관이 유비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으니 유비가 피눈물을 흘리며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로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관우의 죽음에 흥분해 있던 장비가 부하들의 손에 암살당하여 그 수급이 오로 보내지고 만다.


장비마저 죽고 이제 혼자 남은 유비, 거의 이성을 잃고 오직 오에 대한 복수의 일념을 불태운다. 당시의 판세로는 촉과 오는 힘을 합쳐서 위에 대항하는 전략을 유지해야 했다. 그 때문에 제갈량과 조운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중신들이 오에 대한 침공을 말렸지만 유비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유비는 대군을 이끌고 오로 쳐들어가고, 관우와 장비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가 각기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죽임으로써 복수극을 완성한다. 그러나 뒤이어 오의 명장 육손에게 촉군은 여지없이 참패하고, 패퇴하던 유비는 백제성에서 병을 얻어 죽으니 3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도원결의가 드디어 막을 내린다. 앞서간 관우를 따라 장비, 유비가 차례로 죽어간 것이다.


세 사람은 모두 죽을 때까지 젊은 날의 맹세를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했고,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 번도 그 맹약(盟約)을 저버리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듯이, 앞으로도 불멸의 감동으로 후세에 전해지리라.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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