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한국의 얼] '농악'
[에세이-한국의 얼] '농악'
  • 편집국
  • 승인 2017.07.0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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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민요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민요
멋과 흥 어우러지는 배달민족의 상징

상모꼬리가 일품
농악대가 열두 발 상모꼬리를 빙빙 돌리면서 흥겨운 마당놀이를 펴면 하늘과 땅이 울리고 사람들이 저절로 신바람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농악(農樂)은 배달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한국 특유의 음악놀이이다. 농촌에서 집단 노동을 할 때에 능률을 올리거나 명절 때에 흥을 돋우기 위해 연주하는 농민들의 음악을 말한다. 풍물, 풍장, 굿, 매구, 두레, 금고, 취군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농악에는 그 기능과 공연 방법에 따라서 당굿, 마당밟이, 걸립굿, 두레굿, 판굿, 기우제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오늘날에는 민속놀이의 하나로서 각종 명절이나 의식, 주요 행사 등이 있을 때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로 인기를 끌고 있다.


농악의 기원은 정확한 문헌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농업을 ‘천하지대본’으로 여겨오면서 농악을 대표적인 향토음악으로 삼아 그 뿌리를 내려왔다. 농촌 사람들이 모내기와 추수 때에 농악대를 앞세워 춤추고 행진하며 일하면서 신명나게 농악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민족이 농사를 짓고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농악이 유래되어 온 전통음악의 하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먼 옛날 상고시대부터 농악이 전개되어 왔다고 보는데, 그 때에는 농경(農耕) 의례의 음악으로 이어졌으며 그 뒤로는 군대의 훈련과 단결을 결집하는 음악으로 연주되었다고 전한다.

농촌 마을마다 정초에 잡귀를 쫓아내어 액운을 예방하고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축제로 농악판을 벌였다.


고려 제25대 충렬왕 때에 농악을 장려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조선에서는 제4대 세종대왕 때에 농업과 농악에 관심이 많아 ‘선농가’라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농악을 연주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또 조선 제7대 세조와 제9대 성종 때에도 농악을 장려하였으며, 제26대 고종 때에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중수하면서 밤마다 농악잔치를 열어 인부들을 위로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얼씨구~! 올해도 풍년들게 하소서~!” 농악으로 봄에 모내기를 하고, “지화자~! 올해도 풍년일세~!” 농악놀이를 펴면서 가을 추수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기 위해 함께 모여 풍악을 울리며 노동의 피로를 풀고 풍년을 기원하는 공동 의식의 하나로 출발한 것이다.


공동체 놀이의 상징
농악은 여러 공동체가 스스로의 미적 감흥을 반영하는 문화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고을마다 조금씩 다르고 지역적 특징이 뚜렷하다. 대체로 박자가 점점 빨라지면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저절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된다. 멋과 흥이 어우러지는 한국적인 음악놀이의 상징이 되었다.


농촌에서는 설날, 추석, 단오 같은 명절이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농악이 펼쳐졌다. 상쇠가 멋들어지게 꽹과리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곧이어 태평소인 날라리 소리가 흥겹게 울려 퍼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장고, 큰 북, 작은 북, 징들이 일제히 소리를 뽑아내며 화음의 조화를 이룬다.


농악 놀이가 시작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한 마음이 되어 농악 소리에 맞추어 덩실 더엉실~ 어깨춤을 추게 된다. 농악의 우렁찬 소리는 심장의 고동과 맥박을 꿈틀거리게 하고, 놀라운 힘과 흥겨운 가락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저절로 신바람이 나서 춤을 추는 것이다.


옛날 문헌을 보면, 마을마다 그 고장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었다고 믿었다. 그 수호신에게 한 해의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들고 나쁜 질병들이 들지 못하게 막아 달라는 기원에서 한바탕 굿을 하였다.


농악은 이처럼 한 마을의 남녀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굿판을 펼치고 그 굿판에 모여 서로 친목과 화합을 다지며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즐거운 자리를 엮어 흥겨운 무대로 장식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농사일도 기계화되고 젊은이들이 농촌 고향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면서 농악 놀이도 많이 사라져간다. 농악이 처음에는 굿판으로 시작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굿판과는 별도로 우리의 고유한 음악과 놀이로 발전하여 온 마을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는 동시에 꽹과리, 장고, 큰 북, 작은 북, 징들이 연주하는 사물놀이 발전에도 큰 몫을 하였다.


남녀 혼성의 농악대
농악을 연주하기 위하여 농악대를 조직하는데, 보통 농기(農旗)를 든 기수가 앞서고 연주를 하는 잽이, 창부, 무동, 양반 광대 등의 잡색으로 편성된다. 농악대의 인원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통 30명 정도로 구성되며 남녀 혼성으로 한다.


농악대는 그 복장이 특별하다. 머리에는 고깔을 쓰고 바지, 저고리 위에 조끼를 입고 붉은 띠나 파란 띠를 두른다. 청, 홍, 황, 백의 4색 꽃송이를 단 고깔이나 전립에 농악복을 입는다. 상쇠를 비롯한 꽹과리 연주자는 긴 띠가 있는 상모를 쓰고 양반 광대는 정자관에 도포를 입고 담뱃대를 든다. 중은 장삼을 입고 고깔을 쓴다.

농악에 맞춰 여러 가지 흥겨운 춤을 춘다. 농악무는 농악대의 연주 형태에 따라 단체로 춤을 추는 농악무를 펼치지만, 농악대원 중에서 한 사람이 굿판에 나와 혼자 춤을 추기도 한다. 특히 백로 깃을 단 부포 상모를 쓰거나 열 발 물채를 단 채상모를 쓰고 여러 가지 묘기를 보이는 장면이 더욱 흥겹다.


농악은 지역에 따라 각기 특성을 지니는데, 그 대표적인 농악으로는 경기 안성지방의 경기 농악, 호남지방의 정읍, 남원, 광주 지역의 호남 농악, 경상도의 진주, 삼천포 등지의 영남 농악, 그리고 강원도 농악이 꼽힌다.

이처럼 농악은 본래 농부들이 하는 음악놀이였지만, 굿에서 비롯하여 전승된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으로 발전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무형유산으로 2014년 11월 지정되었다.



유한준

-現 아동문학가, 시인, 저술가로 활동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前 종교뉴스신문 편집주간
-前 독서신문 이사 편집국장
-한국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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