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에는 명시와 명문장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명시로는 조조의 단가행(短歌行)이나 호리행(蒿里行), 조조의 셋째아들 조식이 쓴 동작대부(銅雀臺賦)나 칠보시(七步詩), 낙신부(洛神賦) 등이 있다. 명문장으로는 조조의 구현령(求賢令)과 술지령(述志令)이 있고, 원소의 문사 진림이 쓴 조조토벌의 격문도 서릿발 같은 매서운 문장으로 유명하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명문장으로 제갈량이 남긴 전후(前後) 출사표(出師表)가 있다. 전 출사표는 의심할 여지없이 제갈량이 쓴 것이나, 후 출사표는 후세의 어느 문사가 전 출사표를 모방하여 쓴 위작(僞作)이라는 시비가 있다.

출사표는 출진할 때 임금에게 올리는 표문을 말하는 바, 남만정벌을 끝낸 제갈량이 위 정벌을 단행할 것을 결심하고 그 뜻을 적어 촉의 후주 유선에게 올린 글이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울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구(字句)마다 지성어린 충정이 배어있는 글로 유명하다.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촉주 유선이 앞으로 유념해야 할 일을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하나하나 일깨워 주고 있다. 먼저 천하의 현실과 촉이 처한 상황을 설파한 다음, 충량한 신하에게 신임을 더할 것을 권하고, 마지막으로 선제 유비와 자신과의 만남을 회고하면서 아울러 자신의 확고한 결심을 밝히고 있다.

표문 위에는 눈물이 떨어진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원문이 아니고서는 그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충심과 명문장의 맛을 도저히 나타낼 수 없겠으나 여기에 전 출사표의 역문(譯文)을 옮겨본다.

신(臣) 양(亮) 아뢰옵니다.

선제께서는 창업이 다 이루어지기 전에 중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중에서 우리 촉이 가장 피폐합니다. 참으로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달린 위급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하가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무사가 밖에서 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모두 선제에게서 입은 은혜를 폐하께 갚으려 함인 줄 압니다. 마땅히 귀를 넓게 여시어 선제의 유덕을 밝히시며 뜻있는 선비들의 의기를 더욱 넓히고 북돋워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덕이 없고 재주가 모자란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결코 아니 되며, 헛되이 의를 잃고 덕을 잃음으로써 충간(忠諫)의 길을 막아서도 아니 됩니다. 또 궁중과 조정은 하나가 되어야 하며, 벼슬을 올리거나 벌을 주는 일,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일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간사한 죄를 범한 자나 충성되고 착한 일을 행한 자는 마땅히 관원에게 그 형벌과 상을 논하도록 함으로써 폐하의 공정하고 밝은 다스림을 세상에 뚜렷하게 밝히셔야 할 것입니다. 사사로이 한쪽에 치우쳐서 안과 겉이 다른 법을 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시중과 시랑을 맡고 있는 곽유지와 비위, 동윤 등은 모두 성실하며 그 하고자함과 헤아림이 충성되고 깨끗합니다. 일찍이 선제께서는 여럿 중에서 이들을 뽑아 쓰시고 폐하에게까지 넘겨주셨습니다. 어리석은 신이 살피건대, 궁중의 일은 크고 작음을 가릴 것 없이 이들과 의논하여 시행하신다면 반드시 빠지거나 새는 일 없이 폐하를 보필하여 이로움을 넓혀줄 것입니다. 장군 향총은 본성이 맑고 치우침이 없으며 군사에도 밝아 옛날 선제 때부터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군사에 관한 일은 그와 의논하십시오. 반드시 군사들을 화목하게 하고 뛰어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가려 각기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할 것입니다.

현신(賢臣)을 가까이하고 소인(小人)을 멀리했기 때문에 전한은 흥륭했고, 소인을 가까이하고 현인을 멀리했기 때문에 후한은 쇠퇴했습니다. 선제께서는 살아계실 때 항상 이 일을 신과 이야기하면서 일찍이 환제와 영제 시절의 어지러움에 탄식하고 통한(痛恨)하셨습니다. 지금 시중상서 장사 참군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은 모두가 하나같이 곧고 바르며 절의를 지킬 만한 신하들입니다. 요컨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항상 가까이 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머지않아 한실(漢室)은 다시 융성할 것입니다.

신은 원래 아무 벼슬도 없이 남양에서 밭을 갈며 어지러운 세상에 한 목숨이나 지키며 지낼 뿐, 조금이라도 제 이름이 제후(諸侯)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제께서는 신의 비천함을 돌보지 않으시고 귀하신 몸을 굽혀 친히 세 번이나 신의 초려(草廬)를 찾아와 세상일을 의논하셨습니다. 신은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선제의 세력이 뒤엎어지려 할 때 신은 싸움에 진 군사들 틈에서 소임을 맡았으며, 그 어려움 속에서 명을 받들어 이제 21년이 지났습니다.

선제께서는 신의 근신(謹愼)을 아시고 돌아가실 때 신에게 나라의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명을 받은 이래, 신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 당부를 들어드리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심을 그르칠까봐 늘 두려워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너 거친 오랑캐의 땅에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이제 다행히 남방은 평정되었고 싸움에 쓸 무기며 군마도 넉넉합니다.

이제 3군을 인솔하여 북으로 중원을 평정하고자 합니다. 느리고 무딘 재주나마 힘을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고 한실을 부흥시킴으로써 옛 서울을 되돌려놓겠습니다. 이는 신이 선제의 뜻을 받드는 길일뿐만 아니라 폐하께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동안 이곳에 남아 이롭고 해로움을 헤아려 폐하께 충언을 다함은 곽유지와 비위, 동윤의 소임일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역적을 치고 나라를 되살리는 일을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신이 그 일을 해내지 못할 때에는 신의 죄를 다스리시고 이를 선제의 영전에 고하십시오. 만약 폐하의 덕을 드높일 충언이 없을 경우에는 곽유지와 비위, 동윤을 꾸짖어 그 태만에 채찍을 내리십시오.

폐하 또한 선한 길을 자주 의논하시어 스스로 그 길로 드시기를 꾀하십시오. 아름다운 말은 되도록 살펴서 받아들이시고 마음 깊이 선제의 가르치심을 쫓으십시오. 신은 그간의 큰 은혜에 보답코자 이제 먼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떠남에 즈음하여 표문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구쳐 더 말씀드려야 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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