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는 주로 고대 중국역사에 나오는 에피소드인 고사(故事)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함축된 글자로 느낌이나 의지, 처한 상황 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한자성어를 말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해온 우리나라에도 그런 고사성어가 많이 있을 법한데, 필자의 식견이 짧은 탓인지 함흥차사(咸興差使) 외에는 찾지 못했다. 평양감사, 삼수갑산이나 송도삼절 같은 것은 성어(成語)로는 족하나 뚜렷한 고사가 결여되어 있어서….


그러나 중국산 고사성어는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고,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성어만 추려보아도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 중국의 변화무쌍하면서도 유구한 역사와 한자의 무궁무진한 조어력(造語力)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고사성어 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 몇 가지를 골라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보통 고사성어라 하면 거의 대부분 네 글자로 된 사자성어이고, 간혹 두 글자나 세 글자로 된 고사성어도 있다.


두 글자로 된 고사성어를 보자.


계륵(鷄肋)은 닭갈비, 즉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울 때 쓰는 말이다. 한중에서 유비와 대치하던 조조가 닭갈비를 먹고 있을 때 군호를 물으러 온 하후돈에게 했던 말이다. '계륵'이라는 군호에서 조조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부대원에게 철수준비를 시킨 양수는 목이 떨어지고….


백미(白眉)는 흰 눈썹이란 뜻으로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막빈 이적이 유비에게 인물을 천거할 때 '마(馬)씨 5형제 중에서 눈썹이 흰 마량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읍참마속에 나오는 마속은 마량의 동생이다.


만두는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고 개선할 때 노수에 격랑이 일자, 산사람의 머리 대신 밀가루 반죽 속에 소와 말의 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만든 것을 제물로 바쳐 노수의 격랑을 가라앉힌 데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는 만인(蠻人)의 머리(頭), 즉 만두(蠻頭)였다가 나중에 만두(饅頭)로 바뀌었다.


세 글자로 된 고사성어를 보면, 칠보시(七步詩)는 조조의 셋째아들 조식이 일곱 걸음 만에 지은 시이고, 출사표(出師表)는 출병할 때 임금께 올리는 표문인 바, 제갈량의 출사표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낙봉파(落鳳坡)는 새끼봉황 방통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곳이다.


다음으로, 고사성어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 사자성어들을 살펴보자.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은 것은 도원결의(桃園結義), 유비가 제갈량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간 것은 삼고초려(三顧草廬),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간 지 오래되어서 허벅지에 자꾸 살이 찌는 것을 한탄하는 비육지탄(髀肉之嘆(歎))은 형주의 신야에 머무르며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던 유비가 자책하면서 한 말이다.


수어지교(水魚之交)는 물과 고기의 관계처럼 서로 뗄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를 말하는데, 제갈량을 얻은 유비가 한 말이다. 범강장달(范疆張達)은 덩치가 크고 흉악하게 생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데, 장비의 목을 베어 오나라로 도망친 두 무뢰한의 이름이다.


숨어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를 뜻하는 복룡봉추(伏龍鳳雛)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재를 의미하는데, 각각 제갈량과 방통을 지칭하는 말이다. 제갈량이 남만왕 맹획을 일곱 번 잡아서 일곱 번 놓아준 것은 칠종칠금(七縱七擒),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제갈량이 울면서 부하장수인 마속의 목을 친 것을 의미하는데, 아끼는 부하를 제거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단도부회(單刀赴會)는 칼 한 자루만 가지고 회합에 나간다는 뜻으로, 형주를 돌려주지 않는 관우를 해치려고 오나라의 노숙이 초청장을 보냈을 때, 관우가 칼 한 자루만 차고 적진의 회합장에 간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배포가 크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낭중취물(囊中取物)은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 얻기 쉬운 일을 이르는 말로서,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벤 관우의 무용을 치하하는 조조에게, 관우가 겸손해 하면서 ‘제 아우 장비는 적장의 목 취하기를 제 주머니 속에서 물건을 꺼내듯 합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간뇌도지(肝腦塗地)는 간과 뇌를 땅바닥에 쏟아낸다는 뜻으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장판파의 당양벌에서 조운이 적진을 뚫고 들어가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오자, 유비는 아두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이놈 때문에 국장(國將)을 잃을 뻔 했구나’하는데, 이때 조운이 감복해서 유비에게 한 말이다.


우도할계(牛刀割鷄)는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수관을 지킬 장수로 동탁이 여포를 보내려 하자, 화웅이 여포를 소 잡는 칼에 비유하며 자신이 출전하겠다고 하면서 한 말이다.


농(한중)을 쳐서 합병하고 다시 촉을 바라본다는 뜻의 득롱망촉(得隴望蜀)은 전에 광무제가 썼던 말을 조조가 다시 리바이벌했고, 괄목상대(刮目相對)는 눈을 비비고 대면한다는 뜻으로 학식이나 재주가 몰라보게 성장한 것을 이르는 말로서, 여몽의 학식이 급속하게 는 것을 보고 놀라는 선배장군 노숙에게 여몽이 한 말이다.


망매해갈(望梅解渴)은 매실을 생각하니 갈증이 풀린다는 의미로, 장수(張繡)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 조조의 군사들은 오랜 행군과 무더위에 지쳐있는 데다 식수마저 떨어져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조조가 ‘바로 저 앞에 있는 산을 넘으면 매실 숲이 있다. 매실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여 병사들의 입 안에 침이 고이게 하여 잠시 갈증을 잊게 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쓰인다. 조조를 따라 허도에 간 유비가 몸을 최대한 낮춰서 자신을 해치려는 조조와 조조 참모들의 경계심을 풀도록 애쓴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은 과거 등소평 시절의 중국에서 자주 썼다. 당시 중국은 선진국에 대적할 만한 국제적 위상을 갖지 못했으므로 대외적인 마찰을 줄이고 내부적으로 국력을 결집시키는 것을 기본정책으로 삼았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오늘날에는 중국이 국제사회에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의미의 화평굴기(和平崛起)를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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