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에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좌자의 환술이나 관로의 점술, 화타의 의술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갈량이 기도로 동남풍을 불어오게 하거나, 사륜거를 타고 축지법(?)을 써서 위군을 따돌리는 장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기양법(祈禳法)을 쓰는 장면 등은 감탄을 넘어 경외감을 자아내게 한다.

또, 추격대에 쫓기던 유비가 탄 말 적로(馰盧)가 폭이 3장(三丈)이나 되는 단계(檀溪)를 훌쩍 뛰어넘어 주인을 구해준다는 얘기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1장은 3.03m이다. 옛날엔 조금 더 짧았다고는 하나, 폭이 9m쯤 되는 개천을 말이 정말 뛰어넘을 수 있는 건지.
또 있다. 독화살에 팔꿈치를 맞은 관우는 의원인 화타가 ‘살을 절개하여 독이 스며든 뼈를 긁어내야 하니 한쪽 팔을 기둥에 묶겠다.’고 했을 때, 괜찮다고 그냥 하라고 하더니 정말 생살을 째서 상한 뼈를 긁어내고 다시 실로 꿰맬 때까지 태연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 얘기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이 외에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얘기들 중에서 기이한 이야기 몇 가지를 골라서 그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유비와 관련된 아주 엽기적인 이야기이다.
서주에서 여포에게 쫓기던 유비는 가솔들마저 소패성에 버려두고 측근과 함께 조조가 있는 허도로 향했다. 날이 저물자, 어느 집에 들어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유안(劉安)이라는 집주인 청년은 찾아온 길손이 흠모하는 유비인지라 아주 반가웠으나 대접할 음식이 없었다. 그는 아내를 죽여 그 고기를 유비에게 올렸다. 성찬에 놀라는 유비에게는 이리고기라고 속였다.
다음날 아침, 유비는 부엌에서 한 여자의 시체를 보게 되는데, 팔뚝과 허벅지 살이 도려내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유비가 다그치자 청년은 눈물을 흘리며 실토했다.
“실은 유예주님께 올릴 만한 음식이 없어서 제 아내를 죽여서 그 고기를 올린 것입니다.”
유비는 청년의 갸륵한 정성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그대로 믿어야 할까? 혹시 아내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는데 귀한 손님이 오자 그 핑계로 아내를 살해한 것일까?
두 번째는 유비와 손권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적벽대전의 전리품인 형주를 유비가 먼저 차지해버리자, 화가 난 오의 대도독 주유는 한 가지 계책을 꾸몄다. 손권의 여동생과 혼인시킨다는 미끼로 유비를 오로 불러들여서 형주를 돌려달라고 해보고, 말을 듣지 않으면 유비를 죽여 버리기로 한 것이다.
제갈량의 비책(秘策) 덕분에 첫 번째 위기를 벗어난 유비는, 감로사에서 장모가 될 국태부인의 면접(?)을 받기로 했다. 또다시 국태부인의 도움으로 주유가 배치한 도부수들을 물리친 유비는 옷 안에 껴입은 갑옷이 불편해서 옷을 갈아입으러 밖으로 나왔다.
감로사 뜰에 있는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비는 옆 사람의 칼을 빌어서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무사히 형주로 돌아가서 왕업(王業)을 이룩할 수 있다면 이 바위가 둘로 갈라지리라!’하고 외치며 칼을 들어 바위를 내려쳤다.
바위가 둘로 쪼개졌다. 마침 뒤따라 나오던 손권이 이 광경을 보고 ‘공께서는 이 바위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으십니까?’하고 묻자, ‘아니오. 제가 조조를 깨뜨리고 한(漢)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이 칼이 바위를 둘로 가르리라 하면서 내려쳤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하고 둘러댔다.
그러자 손권도 칼을 빼들며 ‘그렇다면 저 또한 하늘의 뜻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만약 조조를 깨뜨리게 된다면 내 칼에도 바위가 갈라질 것입니다.’하며 칼을 들어 바위를 내려쳤다. 바위가 다시 둘로 갈라졌다.
최근에, 감로사에 있는 둘로 갈라진 바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름은 시검석(試劍石), 그때 유비가 쪼갠 바위란다. 아마 지금도 그 자리에 있으리라. 정말 그 바위가 그때 유비가 칼로 내려쳐서 갈라진 것인지, 아니면 갈라진 바위를 어디서 가져와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만약, 그 바위가 그때 유비가 쪼갠 것이 맞다면, 그때 손권도 바위를 쪼갰으니, 바위가 세 조각이나 네 조각으로 갈라져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손권이 쪼갠 바위는 따로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제갈량이 쌓은 석진(石陣)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나라를 정벌하러 떠난 유비는 적장 육손에게 참패하여 백제성으로 쫓겨 갔다. 육손이 패퇴하는 촉군을 쫓아 어복포까지 왔을 때, 앞에 매복이 있는지 살기가 돌아 추격을 멈추고 살펴보았다. 돌무더기 팔구십 개가 널려있는데, 자세히 보니 사면팔방으로 문이 있는 석진이었다. 거기서 구름이 피어나듯 살기가 분분하고 있었다.
육손이 군사 수십 기를 이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바람이 일고 천지가 캄캄해지면서 돌 더미들이 서로 창칼을 부딪거나 북과 징을 울리는 듯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때서야 육손은 ‘아차, 제갈량의 계책에 빠져들었구나.’하며 급히 나가려 했으나 어느 쪽으로 가도 그 자리에 돌아올 뿐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 육손을 밖으로 인도해주면서 전에 사위인 제갈량이 서천으로 들어갈 때 이 돌무더기들을 쌓으면서 ‘이것은 여덟 개의 문이 서로 조화를 일으키는 팔진도(八陣圖) 석진입니다. 능히 10만 정병과 맞먹을 수 있습니다. 후일 동오의 대장이 이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인데, 구해주어서는 안 됩니다.’하고 당부를 했소. ‘그렇지만 사문(死門)으로 들어간 장군이 길을 잃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생문(生門)으로 안내해준 것이오.’하고 노인이 말했다. 육손은 감사를 표하고 군사를 물려 오로 돌아갔다고 한다.
10만 정병에 필적하는 돌무더기 팔진도가 정말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건대, 이 이야기들은 저자가 꾸며냈거나 좀 과장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관우는 강인한 무사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유비는 민중들의 절대적인 흠모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갈량은 그의 신기백출(神技百出)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음주에 계속>
최용현
밀양 출신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저서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꿈꾸는 개똥벌레'

'삼국지 인물 108인전',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 외 다수

내외뉴스통신, NB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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