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내내 기승을 부리던 불볕더위와 열대야가 입추(立秋)를 맞아 한 꺼풀 꺾이는가 싶었는데 북한의 '판가리 결전' 위협으로 시작된 미·북(美·北)간 한 치의 양보 없는 기(氣) 싸움으로 한반도 상공은 한 여름 더위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북한은 지난 8월 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화성-14형’ 미사일발사 도발에 따른 대북 제재결의안 ‘제2371호’가 채택되자 그만 이성을 잃고 그 다음날부터 전쟁불사의 독설을 뿜어대고 있다. 8월 7일 유엔 제재결의를 거칠게 거부하는 ‘공화국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인민군 총참모부와 전략군 성명, 전략군사령관 발표문 등을 계속 내 놓으면서 ‘화성-12형’ 탄도미사일 4기를 발사하여 ‘괌도’ 주변해역을 공격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공표하였다.

북한은 이 정도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지난 8월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10만 군중대회’를 개최하여 ‘전민총결사전’을 결의하였고 그 다음날인 10일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교양마당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총참모장·인민무력상 등 군(軍) 수뇌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인민무력성 군인대회’를 열고 “50년대 투쟁정신 무장과 대미(對美) 전쟁승리”를 외쳐댔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결전진입상태’를 철저하게 갖추었다며 추가협박에 나섰다. 여기에 더해 ‘인민보안성 군무자집회’까지 조직하여 북한 사회 전체가 전쟁준비상태에 돌입해 있음을 ‘국가적 차원’에서 과시하였다.


이와 같은 북한의 대미(對美) 결사전 위협과 한반도 ‘8월 위기설’ 등으로 안보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지나친 평온함’이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로 부터 ‘심각한 안보불감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북한 집단의 합리적 이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나친 안보불감증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의 반응은 결코 ‘현명한 대응’이 아니다. 왜 그런지를 간파할 수 있는 ‘대남(對南) 위협 메시지’가 북한의 이번 각종 성명과 발표문 내용에 적나라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관련 내용을 살펴본다.

첫째, 북한이 강조한 ‘판가리 결전’은 ‘대남혁명론’에서 규정하고 있는 혁명전쟁 유형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길고 긴 대결’에 마침표를 찍는 ‘최종 승리’를 하기 위한 전쟁이다. 즉 ‘판가리 결전’은 ‘남조선 해방을 위해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미(美)제국주의와 언젠가는 한 번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전쟁’을 의미한다. 핵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개발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판가리 결전’에 나설 때가 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판가리 결전’의 목적이 미국을 패망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적화에 있다는 점이다.

둘째, ‘대미(對美)결전’을 주장하면서도 서울과 1군(軍) 및 3군(軍) 사령부가 있는 경기와 강원도의 일부까지 ‘불바다’를 만들겠다는 선포이다. 평양 집단은 ‘서울’에서 진의를 못 알아 들을까봐 ‘친절’하게도 ‘불바다’ 발언을 보다 상세하게 언급하였다.


셋째, 이번 ‘판가리 결전’의 성격을 ‘조국통일대전’으로 규정(5.11자 노동신문 ‘정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조국통일대전’에 나서겠다는 것은 남한을 전쟁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엄혹한 상황인데도 한국이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만’이나 ‘자만’으로 충분히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만이나 자만에 있다 기 보다 북한 핵위협에 대한 한국의 ‘속수무책’에 있다. 한국이 이번에 밝힌 대응은 ‘미국과의 안보 공조를 강화하며, 북한에 대해 아직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코리아 패씽’이나 북한의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대응책 또는 대처계획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런 막중한 안보위협상황에서 구걸식의 ‘대화 타령’은 바람직한 대북(對北) 신호가 될 수 없다.


북한은 ‘남북대화’와 ‘조국통일’문제를 별개로 취급하고 있다. 兩者 간에는 상호관계나 인과관계를 두지 않고 있다. 대화가 잘되고 있다고 하여 적화통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 그들의 내부 원칙이다. 이 원칙은 그 누구도 부인하거나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장군님의 명령’으로 되어 있으며, 북한은 ‘유훈관철’을 정권유지의 유일한 정당성확보 차원에서 결사적으로 지키고 있다. 북한과는 대화를 통해 안보위협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이다.


지금은 한국의 계속되는 대화제의를 매몰차게 거절하며 일체 거들떠보지도 않는 북한의 반응에 미련(未練)을 두거나 대화에 연연(戀戀)해하는 듯한 ‘연약한 신호’를 보내기 보다는 북한의 ‘판가리 결전’의지를 제압하고 ‘핵무기고도화 속도’를 압도(prevail)하는 정치군사적 대응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이를 결단력 있게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현 상황에서 우리는 로마인의 격언인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구를 깊이 새겨야 하며, 북한 핵 억제력 확보 등 항구적인 안전보장 방책을 구체화할 적기(適期)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와해된 한반도내 전략적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각 군의 전투발전(戰鬪發展)과 군사력 건설에 적극 나서야 함은 물론 북한 핵무력을 철저히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군사혁신(RMA)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테이블은 이러한 안보기본을 먼저 갖춘 다음 마련되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통일연구회 체제연구실장 이병순 (북한학 박사)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810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