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경찰관 내연녀 살인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군산에 거주하는 이 아무개 씨(40·여)는 이혼한 후 동갑내기 남성을 사귀고 있었다. 그는 군산경찰서 소속 정완근 경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은밀했다. 정 경사가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7월 24일 오후 7시 50분쯤 이 씨는 가족들에게 “정 경사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밤이 늦도록 이 씨는 귀가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꺼져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도 이 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가족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판단해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25일 오후 5시쯤 정 경사를 임의 동행해 이 씨 실종과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하지만 정 경사는 단호했다. “절대 만난 적이 없다” “강압수사이며 고소하겠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당일 자정까지 조사를 마친 정 경사는 귀가했다.


무단 결근 후 잠적

26일 아침 정 경사는 근무지인 파출소에 출근하지 않았다. 신상에 대해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무단결근이다. 집에도 없었다. 그는 25일 경찰 조사를 마친 후 곧바로 잠적했던 것이다.

정 경사는 자신의 쏘렌토 승용차를 몰고 집과 정 반대인 강원도 영월로 향했다. 1차 목적지에 도착한 정 경사는 한 대학교 인근 다리 밑에 승용차를 버렸다. 26일 오전 9시 50분쯤 영월군 서부시장에 들른 정 경사는 초록색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모자를 구입해 변장했다.

그는 신출귀몰했다. 영월에서 시외버스를 탄 후 충북 제천으로 향했다. 오전 11시쯤 제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약 40분 정도 이곳에 머물다 대전행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이날 오후 3시쯤 대전 동구 용전동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전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전주에 도착한 정 경사는 오후 6시 50분쯤 덕진구 금암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군산 대야행 버스를 탔다. 그러니까 하루사이에 ‘군산-영월-제천-대전-전주-군산’으로 동에 번쩍 서해 번쩍 했다. 오후 7시 40분쯤 군산 외곽에 있는 대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정 경사는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군산시 회현면으로 들어갔다.

그는 3시간 30분 뒤인 오후 11시 15분쯤 대야터미널로 다시 돌아왔다. 정 경사는 다시 전주로 향했다. 27일 오전 5시 40분쯤 금암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폐쇄회로(CC)TV에 찍힌 것이 확인됐다. 그리고는 종적을 감췄다.

이때부터 정 경사와 그를 추적하는 경찰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29일 오전 7시쯤 군산시 대야면의 한 농수로에서 실종된 이 씨의 겉옷과 속옷이 발견됐다. 신발은 없었다. 경찰 확인 결과 버려진 옷과 속옷은 이 씨가 실종 당시 입었던 옷과 일치했다.


옷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씨의 옷이 발견된 농수로는 사람들 눈에 쉽게 띄는 곳이다. 이 씨가 실종된 후부터 있었다면 벌써 발견돼야 한다. 이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위해 일부러 이곳에 옷을 버렸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공범이 아니라면 정 경사가 유력했다. 이를 감안하면 정 경사는 27일 전주에서 종적을 감춘 후 28일 밤이나 새벽에 다시 군산으로 잠입해 옷을 농수로에 버렸다는 것이 된다. 경찰도 정 경사가 군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의 연고지에도 수사대를 보내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정 경사를 찾기 위해 경찰 헬기가 동원됐고, 병력도 대폭 증강했다.

신출귀몰한 도주 행각

정 경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전주에서 마지막 모습이 포착된 후 경찰의 수사에는 진척이 없었다. 1주일 동안 허탕만 쳤다. 정 경사가 파 놓은 함정에 경찰이 빠진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 정 경사의 행적이 오리무중 일수록 추적하는 경찰은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제 아무리 신출귀몰한 정 경사였지만 의외의 곳에서 꼬리가 잡혔다.

이희경 경위는 당시 부여경찰서 백강지구대 소속이다. 그는 전날 근무를 서고 2일 논산시 취암동 거리를 지나다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의 남자를 목격했다. 이 경위는 “어디서 봤지?”라고 생각하다가 곧 “아, 그놈과 닮았다"다는 것을 알았다. ‘그놈’이 바로 군산 여성 실종 사건의 용의자 정완근 경사였다.

이 경위는 재차 정 경사를 앞질러가 얼굴을 확인했다. 정 경사가 논산5거리에 있는 PC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곧장 논산지구대에 신고했다. 얼마 후 이 경위의 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도착했고, 이 경위는 이들과 합세해 정 경사를 검거했다. 정 경사는 검거 당시 PC방 컴퓨터로 언론 기사를 검색 중이었다.

이로써 정 경사의 신출귀몰한 도주행각도 ‘10일’로 막을 내렸다. 정 경사는 군산경찰서로 압송돼 실종 여성의 소재, 도주 경위 등을 조사받았다. 처음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열지 않았지만, 경찰관 동료와 친구들의 설득으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정 경사는 내연녀인 이 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했다고 실토했다. 그는 왜 이 씨를 살해한 것일까.


정완근 경사는 2012년 8월쯤 지인으로부터 피해 여성인 이 씨를 소개받았다. 그 뒤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내연관계로 발전한다. 이 씨는 이혼녀였지만 정 경사는 부인과 자식들을 둔 가장이었다. 경찰이 정 경사의 휴대전화의 통화기록과 지워진 문자메시지 내용을 복원해 보니 두 사람은 2013년 1월부터 30여 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밥은 먹었어?” 등 주로 일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다 2013년 4월부터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4월에 4차례 통화를 했으나 그 이후에는 통화한 기록이 없었다. 이 씨는 정 경사에게 22차례에 걸쳐 문자를 보냈지만, 정 경사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정 경사는 이 씨의 문자를 ‘스팸’으로 등록해 차단했다. 정 경사가 아무런 답변이 없자 이 씨의 문자는 점점 협박성 내용으로 바뀐다. 가령 “만나줘라” “너와 나의 사이를 사람들이 알면 좋겠냐” 등이다. 정 경사가 유부남이란 것을 염두에 둔 문자로 보인다.

이 씨 가족들은 경찰에서 살해된 이 씨가 “임신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또 이 씨가 실종된 날은 “병원비 등을 받고 내연관계를 정리하겠다고 말한 뒤 집에서 나갔다”고 했다. 이 씨 여동생은 “언니는 정 경사에게 낙태비 명목으로 단지 120만 원을 요구했고 정 경사도 그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며 “언니는 이 돈을 받아 낙태한 뒤 내연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경사는 이 씨와의 관계를 부정했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1년여 동안 6~7번 만났지만 애인 사이는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징역 14년 선고 후 복역 중

이 씨가 정 경사를 만나러 나간 뒤 실종된 날 두 사람은 차량 안에서 심한 말다툼을 했다. 이 씨가 헤어지는 대가로 돈을 요구했고, 정 경사가 제시한 금액이 적다며 더 요구하자 우발적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 정 경사는 이 씨를 만나기 전 적금으로 부은 500만 원을 찾았다.

정 경사는 이 씨를 살해한 후 옷을 벗겼다. 그리고는 시신을 군산시 회현면 월연마을 인근 폐양어장으로 옮긴 후 담요로 덮고 나무 패널을 얹어 유기했다. 이곳은 원래 양어장과 버섯재배사로 사용된 적 있어 평소에도 심한 악취나 났다. 때문에 시신이 부패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경찰은 이곳에서 심하게 부패된 이 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결국 불륜과 돈이 살인을 부른 셈이다.

정 경사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과 2심에서 징역 14년이 선고됐다. 그는 여기에 불복해 상고했고 2014년 5월 대법원은 징역 14년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나이·성행·지능·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동기·수단·결과, 범행 후 정황 등 양형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보면 원심 형량이 부당하다고 볼 현저한 사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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