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연쇄 독살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지난 1986년 10월5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이 폐막했다. 한국은 숙적 일본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고, 1위 중국과도 금메달 한 개 차이로 선전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한국은 10월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 2년 앞으로 다가온 서울올림픽 준비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렇듯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 일 때 서울에서는 전대미문의 연쇄 독살사건의 서막이 올랐다. 10월31일 아침 서울 신당동에 사는 김계원씨(49‧여)는 이웃에 사는 김선자(48‧여)가 목욕을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은 동네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갔다. 오전 10시쯤 탈의실에 있던 김계원씨가 가슴을 부여잡고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이어 몸에 심한 경련이 일어나더니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김선자가 건넨 쌍화탕을 마시고 난 후에 생긴 일이다. 김씨의 모습을 본 목욕탕 손님들이 급히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이미 숨진 후였다.

연쇄 독살사건 서막 오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목욕탕 주인과 손님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벌였다. 이렇다 할 문제점이나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김씨의 당일 오전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가족 등 주변인물도 조사했지만 특이점이 없었다. 가족들은 “이웃인 김선자씨가 목욕을 가자고 해서 집을 나섰다”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분명 목욕탕에 갈 때 몸에 지니고 있던 진주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 4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김선자에게 물었지만 “나는 목걸이를 본 적도 없고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그녀를 의심할 만한 증거도 없었다. 김씨의 죽음은 많은 의문을 남긴 채 유아무야 넘어갔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다. 1987년 4월4일 오전 전순자씨(여‧50)는 김선자가 “영등포쪽으로 돈 받으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해서 동행했다. 같은 계원이었던 전씨는 김선자에게 700만원을 빌려 주고 받지 못한 상태였다. 전씨는 빌려준 돈을 준다기에 김선자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서울 용산역 근처를 지나던 시내버스 안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의자에 앉아있던 전씨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김선자가 건네 준 음료수를 마신 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전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실에 도착할 때쯤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전씨의 주소지는 신당동이지만 사건이 용산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관할 용산경찰서에서 수사를 맡았다. 경찰은 버스 기사와 승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지만 “수상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족들도 “자살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전씨의 핸드백이나 버스 바닥에서도 별다른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벌이다 5개월 전 신당동 목욕탕에서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한 여성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경찰은 김선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문제는 심증은 충분했지만 범인으로 잡아넣을 증거가 없었다. 1차 사건에서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풀려났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가고 말았다.

번번이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갔던 김선자는 갈수록 대담해졌다. 88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나라 안팎이 시끄러울 때였다. 1988년 2월10일 오후 4시쯤 김선자는 계원이자 동네에 사는 김순자씨(여‧46)에게 “오늘 불광동에 사는 채무자에게 돈을 받으면 그것으로 빌린 돈을 주겠다”고 해서 약속 장소인 은평구 진관내동 소재의 다방으로 갔다. 그런데 채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김씨는 김선자가 건넨 율무차를 마신 후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김선자도 옆에 동승했다.

김씨는 택시 안에서 속이 울렁거려 고통스러워했다. 김선자는 “건강음료를 마시면 괜찮아 질 것”이라며 택시에서 내리자고 했다. 하지만 뭔가 꺼림찍했던 김씨는 택시에서 내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다.

얼마 후 김선자가 안부를 묻는 척하며 김씨 집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빌린 돈을 갚겠다며 120만 원을 선뜻 내놓았다. 김씨는 채무자를 만난 것도 아닌데 돈을 갚은 것에 의아했지만, 돈을 받은 것에 만족했다. 만약 김씨도 김선자가 내민 건강음료를 마셨다면 큰 화를 당할 뻔했다. 김씨는 김선자의 청산염을 피한 유일한 사람이다.

아버지와 동생까지 살해

김선자에게는 피를 나눈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보름 후인 1988년 3월27일 경기도 이천의 친척 회갑잔치에 다녀오던 김선자의 아버지 김종춘씨(73)가 서울로 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를 보이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딸이 준 건강음료를 마신 후 생긴 일이었다. 김씨는 남서울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김씨는 노인성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로 처리돼 시신이 가족에게 인계됐다. 시신은 화장 후 안장됐다.

아버지를 독살한 후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자 이번에는 친동생 죽이기에 나선다. 4월29일 낮 12시쯤 김선자와 동생 문자씨(여‧43)는 성동구 화양동 어린이대공원 근처에서 만났다. 문자씨는 언니가 “마시라”고 준 건강음료를 들이키고 시내버스를 탔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승객들에게 업혀 한양대부속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병원에서 동생이 죽은 것을 확인한 김선자는 슬퍼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동생의 핸드백을 들고 나가 현금 1천만 원과 다이아반지 등 7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쳤다. 김선자는 동생에게 약 1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문자씨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됐다.

아버지와 동생까지 독살에 성공한 김선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지인, 계원, 아버지, 동생에 이어 이번에는 친척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3개월 후인 7월8일 오후 2시쯤 시누이 손시원씨(여‧44)는 “좋은 집을 싸게 주겠다”는 김선자의 말을 듣고 계약금으로 480만원을 건넸다. 돈을 받은 김씨는 미리 준비했던 건강음료를 손씨에게 내밀었다. 김선자와 헤어져 버스를 타고 가던 손씨는 용산구 서빙고동쯤에서 “어지럽다”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사망했다. 손씨의 시신은 이전의 피해자들과는 달리 부검을 실시했다. 사망원인은 청산염 중독이었고, 시신에서도 독극물이 검출됐다.

경찰은 손씨의 당일 행적을 파악하다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김선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김선자의 행적과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김씨 주변 인물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던 것도 파악했다. 1차 피해자만 빼고 모두 버스를 타고 가다 변을 당했고, 김선자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셨다는 것도 확인했다.

발악하며 범행 부인

용산경찰서는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김선자의 신당동 집에 들이닥쳤다. 집 안에서는 증거물들이 쏟아졌다. 그동안 피해자들에게 훔친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등이 나왔다. 또 손시은씨가 살해된 다음날 그녀의 수표가 김선자의 조흥은행 사당동 지점에서 개설한 예금통장에 입금된 것도 확보했다. 수표에 이서된 가명이 김씨의 필적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청산염 20mg이 들어 있던 병도 증거물로 압수했다.


김씨가 꽁꽁 숨겨놓았던 청산염을 찾은 것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김선자 집을 압수수색하던 형사가 갑자기 용변이 급해 화장실을 이용하는 상황이 됐다.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던 형사에게 나무기둥에 난 작은 구멍이 눈에 띄었다.

그 안에 손을 넣었더니 조그만 신문뭉치가 잡혔고, 그것을 꺼내보니 밤알 크기 만한 청산염 덩어리가 싸여 있었다. 김선자는 화공약품 회사에 다니던 친척 조카에게 “꿩을 잡는다”며 청산염을 구입해 이곳에 숨겨놓고 사람들을 독살할 때 사용했던 것이다.

경찰은 김선자를 강도살인 및 강도살인미수(독극물투입)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김씨는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오히려 “증거를 내놓으라”며 큰 소리를 쳤다. 문제는 마지막 희생자인 손시은씨를 제외한 피해자들이 ‘병사’로 처리돼 화장하거나 매장됐다는 점이었다. 김선자의 범행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다

경찰은 피해자 유족들을 설득해 무덤 속 시신을 다시 꺼내 부검을 했다. 그 결과 화장한 김씨 아버지 외 나머지 시신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됐다. 이로써 김선자는 5명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사형이 선고됐고,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3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선자는 왜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던 것일까. ‘돈’ 때문이었다.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돈을 빌려 채무관계가 있었고, 이를 갚지 않거나 금품을 빼앗으려고 살인에 나섰다. 페인트공인 남편의 수입에 반해 그녀는 카바레를 출입하는 등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결국 치밀한 계획하에 ‘독극물 연쇄살인’을 벌인 것이다. 김씨는 국내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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