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갯바위 유골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전남 함평군 함평읍 석성리 석두(石頭) 마을에는 ‘돌머리 해수욕장’이 있다. 육지의 끝이 바위로 돼 있어 ‘돌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깨끗한 바닷물과 1000m에 이르는 백사장이 해수욕장 뒤편에 펼쳐진 울창한 소나무숲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지난 2012년 4월 22일 오후 6시 40분쯤 관광객 이 아무개 씨(45·광주) 등은 돌머리 해수욕장 인근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근처 넓적한 갯바위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갯바위에 있는 하얀 물체였다. 이 씨는 가까이 다가서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른 한 명과 아이 두 명으로 추정되는 백골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이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유골에서 매장됐던 흔적 발견

목포해양경찰서 경찰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백골 시신 세 구가 발견된 곳은 평소 인적이 드문 갯바위 근처였다. 백골에는 살점이 없었고, 일부 탈골된 것으로 봐서 숨진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으로 추정됐다. 해경은 유골을 수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감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감식에 어려움을 겪었다. 변사체가 숨진 지 오래된 상태에서 백골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세 구의 유골은 각각 30대 여성, 10대 어린이, 생후 6개월 미만의 유아로 추정됐다. 이중 성인으로 추정되는 유골만 여성으로 성별을 구분했고, 나머지 유골들은 성별을 특정하지 못했다. 또 유골 3구가 가족인지 아니면 다른 유골인지도 불분명하다.

국과수는 이 유골들이 매장된 지 20년 이상 지난 것으로 판단했다. 그 근거로 이들 유골에서 매장했던 흔적이 발견됐다. 매장 당시 입혀진 수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모시와 나무뿌리, 황토흙 등이 나왔다.

또 하나의 근거는 발견당시 유골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흩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바다를 통해 흘러들어 왔다면 뼈가 한 곳에 모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발견 당시 해안가에서 종이상자 4개와 비닐봉지가 함께 발견됐는데, 유골을 담아 유기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됐다. 즉 이 유골들은 이미 땅에 묻은 시신을 누군가 파내어 갯바위에 유기했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누가 왜 매장된 지 수 십년 되는 유골을 파내어 이곳에 유기했느냐는 것이다. 해경은 유골이 발견된 장소 인근 탐문에 들어갔다. 유골 발견을 전후해서 갯바위에 수상한 사람이 없었는지 목격자를 찾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의미 있는 얘기를 듣게 된다. 유골이 발견되기 얼마 전 돌머리해수욕장 갯바위 인근에서 무속인이 굿을 벌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골이 발견된 장소에서 무속인의 종교의식이 자주 행해졌다는 증언도 추가로 확보했다. 유골을 발견한 해인 2012년은 이장이나 화장을 해도 큰 탈이 없다는 윤달(양력 4월 21일~5월 20일)이었다. 이런 정황에 따라 유골은 무속인의 종교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무게가 실렸다.

해경은 유골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해안과 인접해 있는 야산 등을 정밀 수색했다. 전국에 수배된 실종자 데이터베이스(DB)를 토대로 동일인이 있는지도 대조했다. 변사체가 발견된 장소로 이동하는 통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 해경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단서도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답답해하던 해경은 이와 유사한 사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건발생 2년 전 전남 무안에서 발생한 ‘무덤 쇠말뚝 사건’에 주목하게 된다.

무안 ‘무덤 쇠말뚝’ 사건과 비슷

2010년 2월 무안군 해제면 대사리의 마을 이장인 노 아무개 씨(48)가 선산에 성묘를 갔다가 아버지 묘소 봉분에서 쇠말뚝 4개가 10㎝가량 삐져나온 것을 발견했다. 노 씨는 이를 모두 뽑아놓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꿈자리가 좋지 않아 아버지 묘소를 다시 찾은 노 씨는 묘에 박혀있는 쇠말뚝 13개를 발견했다.

쇠말뚝은 노 씨의 선산에만 꽂혀있지 않았다. 이웃집 선산에서도 잇따라 발견되기 시작됐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해 쇠말뚝을 찾았다. 20기의 무덤에서 나온 것만 350여 개에 달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마을에서 성인 남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집의 무덤에서만 쇠말뚝이 박혀 있었다. 가령 한 선산의 형제 무덤 중에서 현재 아들이 마을에 살고 있는 무덤에만 쇠말뚝이 박혀 있었다. 또 남자가 죽고 여자 혼자 사는 집의 무덤에는 쇠말뚝이 박혀 있지 않았다.

쇠말뚝은 시신의 머리 부분과 가슴 부분을 향해 집중적으로 꽂혀 있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일단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이나 정신 이상자 등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근처 마을이 발칵 뒤집혔고, 주민들 모두 용의선상에 올랐다. 쇠말뚝의 진원지인 대사리 마을의 경우 64가구에 거주하는 주민 129명을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벌였다. 하지만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다.

무안 닭머리와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은 모두 해안가로 함평만을 끼고 인접해 있다.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의 갯바위처럼 대사리의 마을 인근에서도 무속인의 종교행사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무속인이 종교행사를 했던 해안가 장소의 지명이 ‘닭머리’와 ‘돌머리’인 것도 비슷하다. 이런 정황을 들어 함평 갯바위 유골도 무속인의 종교행사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남는 의문점

설사 유골들이 종교의식과 관련 있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첫째 유골이 어디에 매장돼 있었고 누구의 무덤이었냐는 것이다. 둘째, 유골을 파묘한 것이 가족인지 아니면 제3자인지가 불분명하다. 셋째, 윤달에 묘를 이장하기 위해 파묘했다면 갯바위 근처에 유기한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사건은 유골의 신원만 확인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유골은 30대 여성과 10대, 생후 6개월 미만의 유아로 감정됐다. 일단 유골의 사망당시 나이로 보면 어머니와 자녀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점은 지금까지 해당 유골의 가족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건발생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제3자가 파묘를 했다면 가족이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유골 유기가 가족과 관련됐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범인이 무속인이라면 유골을 갯바위에 버려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보통의 무속인은 ‘죽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만약 무속인이 종교행사를 위해 누군가의 묘를 파헤쳐서 유골을 꺼냈다고 치자. 유골을 놓고 굿을 하거나 종교의식을 했다면 다시 매장하거나 아니면 수습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분명 의도한 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경찰은 범인을 검거하면 ‘사체오욕죄’를 적용해 처벌할 방침이지만, 모든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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