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송유관공사 여직원 살인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지난 2005년 6월 1일 오후 6시 30분쯤 강원도 원주경찰서에 30대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 이 아무개 씨(38)였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자수했다. 경찰은 오후 10시 30분쯤 이 씨가 말한 양평의 한 야산에서 황인희 씨(23)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를 체포한다. 황 씨는 이씨의 회사 동료였다.

시신의 상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온몸에서 외부 힘에 의한 상처들이 발견됐다. 오른쪽 얼굴, 입술, 왼쪽 눈 아래부위, 왼쪽 귀 뒤쪽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머리는 시뻘겋게 피 범벅이 돼 있었다. 시신의 좌우측 대퇴부(넓적다리) 안쪽에는 강제로 눌린 탓인지 피하 출혈 형성이 관찰됐다. 손톱도 다 부러져서 성한 것이 없었다.

범인의 자수, 참혹한 시신

차 안에서는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조수석 문짝과 천정에는 피가 튀어 뿌려졌고, 운전석 옆 깜빡이 켜는 장치와 윈도우 브러시가 부러져 있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이 씨가 황 씨를 성폭행하려 했고, 그녀가 강력하게 저항하자 무차별 폭행하고 목을 졸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상한 것은 이 씨가 하필 원주경찰서에 자수한 것이다. 황 씨를 납치한 분당도, 시신을 유기한 양평도, 이씨의 주소지도 아니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시신이 발견된 지역의 관할 경찰서로 이첩하는 게 관례인데, 원주경찰서는 사건을 직접 맡았다. 굳이 연고를 찾는다면 원주에는 대한송유관공사 지사가 있었다.

황 씨의 어머니 유미자 씨는 "회사 측에서 사건을 사전에 알고 이씨에게 회사의 영향력이 미치는 원주경찰서로 가서 자수하라고 한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 씨의 퇴직 처리 과정도 석연치 않다. 사건 직후 송유관공사는 이 씨를 해고 처리한다. 회사 측은 이 씨가 자수하기 이전,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기 이전에 해고 처리했다.

그리고는 3일 후에 이를 번복하고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는 '면직 처분'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이 씨는 퇴직금 정산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회사 측은 "회사에 공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유 씨는 "해고명령을 보면 분명 이 씨가 원주경찰서에 자수하기 이전이고, 대한송유관공사에서는 살인행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연 관계'로 몰아간 원주경찰서

원주경찰서의 수사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흘러갔다. 현장보존과 감식은 기본인데도 차량 지문감식이나 DNA 감정 등을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조사 후 차량은 가해자 이 씨의 가족에게 돌려줬다.

이 씨는 살해동기에 대해 "내 말을 무시하고 잠을 자서 화가 나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부검 결과 사망원인이 '경부압박 질식사'로 나타났는데,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가해자의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모순이 있었다. 강제로 납치당한 피해자가 태연하게 잠을 잤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피해자가 잠든 사이에 넥타이로 목을 졸랐다면 미처 방어할 사이도 없이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숨이 끊어질 정도로 넥타이로 목을 졸랐다면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보통 이런 때는 둥근 모양의 ‘삭흔’이 남게 되는데, 황씨의 시신에서는 그런 흔적이 없었다. 더욱이 잠자는데 목을 졸라 죽였다면 외상이 없어야 한다. 이씨의 진술과 황씨 시신의 상태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원주경찰서는 가해자인 이씨가 "내연관계가 아니다"고 진술했는데도, ‘내연 관계’로 몰아갔다. 수사보고서에는 “피해자는 ‘동료 사이’였다고 주장하나, 내연의 관계임을 추궁하여 밝힐 예정”이라고 돼 있다.

또 수사기록과 국과수로 보내는 부검의뢰서, 변사사건 발생보고 지휘건의서에는 두 사람이 내연관계로 단정하고 그 기간을 각각 ‘내연의 관계 8개월 지내오다’ ‘9개월 가량 사귀며’ ‘내연의 관계 10개월 지내오다’로 명시했다.

황씨의 어머니 유미자씨는 “똑같은 날짜에 똑같은 수사 팀에서, 단순한 직장동료 사이였다가 내연의 관계 8개월이었다가 9개월, 10개월, 이런 내용으로 해서 수사 기록을 작성했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황씨가 미니홈피인 싸이월드에 올려놓은 시를 이씨에게 연애편지처럼 메일을 보낸 것으로 허위 작성했다. 경찰의 짜 맞추기 수사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의 수사기록은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삼류 소설’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회사 동료였던 고아무개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와 살해된 황씨는 내연관계였으며 나는 통화만 하는 사이”라고 거짓 증언을 했다. 짜 맞추기 수사에 짜 맞추기 증언이었던 것이다.

결국 짜여진 각본대로 경찰은 이씨를 ‘내연관계에 의한 치정살인’과 ‘사체 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유족에게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딸이 살해당한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경찰은 살인자와 ‘애정관계’였다는 오명까지 덧씌웠다. ‘내연관계’가 아니라고 밝혀낸 것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피해자의 어머니 유미자씨였다.

피해자 어머니가 진실 밝혀

유씨는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청에 보냈고, 검찰 조사결과 ‘내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사건을 담당했던 원주경찰서 최아무개 경장의 답변을 보면 기가 막히다.

그는 1심 판결 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내연관계라는 말을 무식해서 몰라서 썼다. 나중에 국어사전을 찾아 봤다”며 비아냥 거렸다. 억울하게 죽은 고인과 유족을 두 번이나 죽여 놓은 경찰관 최씨의 말장난은 유족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재판과정에서 허위 메모까지 등장했다. 2심 재판에서 이씨의 변호인인 원주지법 판사 출신의 이아무개 변호사는 피해자 황씨가 이씨에게 보낸 메모라고 하면서 재판부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것은 조작된 것이었고, 그걸 밝혀낸 것도 피해자 어머니 유미자씨였다.

유씨는 “범인이 쓴 편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범인의 필체가 낯이 익었다. 내 딸이 쓴 거라며 보여준 쪽지 속의 글자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바로 내돈 50만원을 들여 필적 감정기관에 감정을 받았다. 놀랍게도 쪽지 속의 필체와 범인의 편지의 필체가 일치하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국과수 필적 감정에서도 조작된 메모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가해자의 변호사는 이씨가 쓴 것을 마치 피해자가 쓴 것으로 둔갑시켜 ‘내연관계’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유미자씨는 변호사 이씨를 ‘사문서 위조 행사’ 혐의로 고소했으나 기각됐다.

유씨는 “변호사 이씨는 변론 요지에 피해자를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두 번 죽이는 망발을 했다”며 “터무니없는 허위변론으로 피해자 가족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은 악덕 변호사”라며 울분을 토했다.

유씨는 딸의 ‘내연 관계’라는 오명을 벗겨주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회사 동료 고씨의 위증도 밝혀냈다. 그는 고씨가 전남 곡성으로 발령받아 내려가자 그곳까지 쫓아가서 “제발 진실을 밝혀 달라”고 사정했고, 그는 자신의 증언이 거짓임을 시인했다. 고씨는 2007년 위증죄로 벌금 300만을 선고받았다. 그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고인의 명예가 또다시 훼손됐고, 가족들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살인자 이씨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그는 1심에서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했으나 2007년 항소심에서 3년이 줄어든 징역 12년으로 감형된 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2심에서 내연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형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유미자씨는 “원주지원 판사출신으로 변호를 맡았던 이아무개 변호사의 영향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만기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부남이던 가해자가 피해자 스토킹

명지전문대를 다니던 황인희씨는 어디에 내 놔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실하고 예뻤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학교 추천으로 공기업인 대한송유관공사에 취업했다. 그때가 2003년 8월이었다.

대한송유관공사(현 SK그룹 계열사)는 황씨를 사장실에 배치했다.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기쁨도 잠시, 그녀의 회사 생활은 평탄치가 않았다. 2004년 8월 인력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HR팀 인사과장(3급) 이씨와 겹치는 업무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함께하는 교육 참석, 야간 근무가 잦았고, 자가용이 없는 황씨를 이씨가 대중교통이 가능한 곳까지 데려다 주거나, 때로는 서울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이씨는 황씨에게 흑심을 품기 시작했다. 유부남인 이씨는 16살이나 어린 황씨에게 “이혼할 테니 나와 결혼해 달라”며 교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씨는 첫 번째 결혼해서 12살 된 딸을 두고 있었다. 이혼한 후 회사 사장실 여직원과 재혼해서 다시 딸을 낳았는데, 당시 생후 7개월 이었다.

이런 이씨가 미혼인 황씨에게 구애를 시작했고, 거절당하자 “트집 잡아서 그만두게 할 수도 있다”며 협박했고, 괴롭힘의 강도도 점점 심해졌다. 어느 날 부터는 황씨의 사생활까지 사사건건 간섭했다. 어떤 날에는 늦은 시간 집 앞에서 기다렸다. 사회 초년생인 황씨는 스토커로 변해버린 직장 상사 이씨로 인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2005년 2월과 5월, 두 번에 걸쳐 미니홈피에 남긴 ‘사는 게 괴로움… 누가 나 좀 구해줘’라는 글을 보면 당시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친구에게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지만, 집에는 내색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같은 해 5월30일 황씨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다. 이날 밤 10까지 야근했다. 황씨의 같은 부서 입사 1년 후배인 고씨가 함께 퇴근하면서 분당 서현동의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줬다. 황씨가 승용차에서 내린 순간 그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인사과장 이씨였다.

이씨는 다짜고짜 황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려고 했다. 고씨가 “늦었으니 내일 얘기하라”며 만류했지만 “너랑은 할 얘기가 없다”며 황씨를 강제로 차에 태워 경기 양평으로 향했다. 얼마 후 이곳에서 끔찍한 살인극이 벌어진다. 이씨는 이렇게 황씨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은 야산에 유기하고 달아났다.

큰 딸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자 황씨 부모는 초조했다. 휴대전화로 수 십 번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부모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날 밤 안절부절못하며 딸의 행방을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했지만,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토록 기다리던 딸의 소식이 알려진 것은 48시간이 지난 6월1일 밤 10시30분쯤이었다. 강원도 원주 경찰서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딸이 살해당한 후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비보였다. “제발 무사하기만”을 바랐던 간절함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건 발생 10년이 넘고 가해자가 출소했지만,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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