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 등으로 전직 국정원장 3명을 포함, 20여 명이 구속되고 30여 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2명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7년은 대한민국 국가정보기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치욕의 한 해였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국가정보기관 개편 논의를 앞두고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삼을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단체를 위해 목전의 이익을 취하지 않을 것’ ‘확실한 혁명적 인생관을 가지고 행동을 취할 것’ ‘계급관념과 공로주의는 공작원이 버려야 할 두 가지 심리’....1932. 10. 조선의 완전독립과 만주국 붕괴를 목적으로 설립된 의열단(義烈團)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재 ‘정보학 개론’에 나오는 정보요원의 마음자세다.


‘특무인원은 모두 폭탄과 같이 소중하다. 그러므로 공작 및 활동의 성적 양부(良否)에 따라 생활비를 증여(贈與)하거나 장려금(獎勵金)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여하한 공작인원을 막론하고 결코 생활욕 또는 허영심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훈동지(受訓同志)는 절대로 관료화 또는 고용화(雇傭化)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1930년대 중반 중국‧만주‧조선 각지에서 정보수집‧선전‧암살‧파괴활동을 주도한 민족혁명당의 정보활동 수칙이다.

1943. 6. 11. 미국 정보기관 실무 대표자들이 일본과의 전쟁에 한인(韓人)들을 활용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한인들은 항상 지위와 계급에 집착하며 특권을 요구하기 때문에 헌신적 희생이 요구되는 공작원의 특성에 적합하지 않다.” 이미 12명의 재미 한인들을 훈련시켜본 전략첩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 OSS) 공작국 작전과장 호프만(Carl O. Hoffman) 대위가 토로(吐露)했다.


모두, 정보요원의 덕목으로 투철한 애국심‧확실한 인생관‧숭고한 희생정신을 강조했다. 관료주의‧계층주의‧실적주의‧고용화(雇傭化)는 경계했다. 첩보 보고 한 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하고, 한 명의 비밀 누설이 조직을 망치기도 하는 게 정보활동이기 때문이다. 절차의 합법성도 중요하지만 목적의 정당성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게 정보기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달 전 국정원 개혁위에서 대공수사권 이관‧직무범위 명확화 등 개편 안이 제시되었다. 국회에서도 곧 논의가 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조직, 일 년의 삼분의 일을 승진(昇進)에 마음 졸이는 조직, 이런 조직으로는 윤봉길이나 엘리 코헨(Elie Cohen)같은 인물이 나올 리 만무하다. 촛불과도 끊고 태극기와도 끊는 개편, 승진 때문에 신념도 동료애(同僚愛)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개편, 오직 국가 이익과 국민 안전만을 염두에 두고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이 되도록 개편되어야 한다.

2017년 치욕의 역사는 여기서 끝내자. 정권은 유한하고 국가정보기관은 영원하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통일연구회 연구위원 장석광

-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연구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21세기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안보통일연구회 연구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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