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후평동 택시기사 살인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지난 2002년 2월 1일 경기도 시흥시 S택시업체 소속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던 박아무개씨(52)가 손님을 태우고 춘천으로 떠난 후 연락이 두절됐다.

S택시는 박씨가 교대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고 연락이 닿지 않자 다음날 택시회사 간 연락망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춘천지역 택시 회사들은 자사 소속 기사들에게 무전으로 “경기 51바 3XXX호 크래도스Ⅱ 택시가 보이면 즉시 신고 바란다”고 전파했다. 이때부터 춘천지역 택시기사들은 영업을 하면서 타 지역 번호판을 단 비슷한 차량이 있는지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택시는 운행 특성상 지역의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기동력까지 있다 보니 해당 차량이 춘천에 있다면 발견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춘천 모텔 공터 앞에서 택시 발견

같은 날 오후 3시50분쯤 춘천 XX콜택시 기사 A씨(52)는 춘천시 후평동의 한 모텔 앞 공터에 있는 택시를 유심히 살펴봤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 뒷길인 모텔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연락망을 통해 전달받은 택시와 비슷했다.

A씨는 택시에서 내려 해당 차량 내부를 살펴봤다. 그랬더니 택시 유리창이 깨져 있고 운전기사 박씨가 뒷좌석에 기대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A씨는 즉시 경찰에 이런 사실을 신고했다.

살인사건이 터지자 춘천경찰서는 강력팀 형사들을 소집했다. 당시는 토요일이라 최소한의 근무자를 빼놓고는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서는 감식반의 정밀 감식이 시작됐다. 발견 당시 택시는 왼쪽 뒷좌석 창문이 일부 깨진 상태였다. 택시 안에는 창문을 깬 벽돌과 유리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시신은 흉부 등 수 차례 흉기에 찔린 상태였다. 목에는 가느다란 줄로 조른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뒷좌석에 있던 범인이 끈으로 박씨의 목을 졸랐으나 죽지 않자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박씨가 반항한 흔적도 있었다. 택시 안에서는 또 다른 단서가 나왔다. 운전석에 있던 택시기사를 살해한 후 뒷좌석으로 옮기고 제3자가 운전대를 잡은 흔적이 나왔다.

이것은 박씨가 택시가 발견된 공터에서 살해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즉 다른 곳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후 뒷좌석으로 옮기고 범인이 운전대를 잡고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들어 범인은 2명이라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범인들은 왜 박씨를 살해한 것일까. 일단 택시 안에 있던 물건들 중 ‘동전’만 없어졌다. 경찰은 ‘푼돈’을 노린 택시강도 보다는 택시를 타고 오다가 요금시비가 붙자 운전기사를 살해해 뒷좌석으로 옮긴 것에 무게를 뒀다. 택시 창문이 깨진 것은 범인들이 택시 문을 닫고 황급히 나왔으나 뒤늦게 자신들의 물건을 놓고 나온 것을 알고는 벽돌로 창문을 깨고 가져간 것으로 봤다.

경찰은 택시 안을 정밀 감식해 조수석과 운전석 뒷자리에서 족적 1개씩을 채취했다. 운행일지 등에서는 9점의 지문이 나왔다. 운전석 하단에서는 디스 담배 1개가 수거됐다. 경찰은 채취한 증거물에서 범인의 흔적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문은 이 차량을 교대해 운전하던 동료 택시기사의 것으로 나왔다. 숨진 박씨가 비흡연자인 것을 감안해 담배에서 범인의 유전자를 검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창문을 깨는데 사용한 벽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차량 안에서 발견된 단서 가운데 유효한 것은 운동화로 추정되는 ‘족적 2개’ 뿐이었다. 경찰은 족적 문양으로 특정 상표의 운동화 구매 시기와 구매자 등을 조사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춘천 오는 길목에서 살해한 것으로 추정

경찰은 택시의 운행기록장치(타코미터)를 분석했다. 범인들이 마지막 손님일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택시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타코미터 분석결과 택시는 2002년 2월1일 오후 7시48분쯤 경기 안산시 중앙동과 안산역 사이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범인들을 태운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택시가 최종 발견지점인 모텔 공터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한 지 2시간 24분 만인 이날 오후 10시24분이다.

경찰은 운행기록을 분석하다 특이점을 발견한다. 택시가 출발한 후 137.7km 지점에서 엔진을 끄고 12분간 정차한 것인데, 경찰은 이때 범인들이 택시기사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이 구간을 역 추적해 살인이 일어난 지점을 찾으려고 했다. 만약 해당 지점만 파악되면 목격자를 찾기가 한층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춘천 진입로가 여러 곳인데다 모두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해당 지점을 특정할 수 없었다.

경찰은 택시의 동선으로 볼 때 범인들은 춘천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 차량을 유기한 곳이 후미진 곳이라는 것을 감안해 범인들이 춘천 지리에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찰은 타지에서 춘천지역으로 들어오는 도로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택시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간에 대해 경찰력을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였다.

300만원의 포상금을 걸고 목격자 등 제보를 받기 위한 유인물도 제작해 배포했다. 그러다 2월1일 밤 안산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택시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자에 따르면 실랑이를 벌이던 남성의 키는 160cm 정도 이며, 나이는 20~30대로 보였으며,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춘천에 연고를 두고 경기 안산과 시흥 일대에 취업해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층을 상대로 탐문에 나섰다. 이밖에 소년범 전력자, 강‧절도자, 인근 군부대 면회자 등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벌였다. 약 2천여 명을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벌였으나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유일한 단서인 ‘족적’만 남긴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사건 발생 16년이 넘었으나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사건에 대한 제보는 강원경찰청 미제사건팀(033-241-4599)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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