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부녀자 실종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충북 청원군 강외면 서평리에 사는 주부 조상묵씨(49)는 효부로 칭송이 자자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시어머니(84)를 10여 년째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있었다.

조씨는 새마을 부녀회장직을 2년째 맡으면서 마을 일에도 적극 나섰다. 남편 직장 때문에 2004년 9월 천안에 새 집을 마련하고 이사했으나, 시어머니 간병을 위해 매주 2∼3일은 서평리 시댁에 머물러 왔다.

2005년 2월18일 오후 6시쯤에는 마을 부녀회 모임이 있었다. 조씨를 비롯한 부녀회원들이 회 식에 참석했고, 단합을 과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 8시쯤 1차 모임이 끝나고 부녀회원들은 2차로 노래방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씨는 “남편이 있는 천안으로 가야 한다”며 2차에 합류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마을 부녀회원의 승용차에 동승한 후 궁평3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이곳은 청주~조치원간 36번 국도로 강외면 궁평3리 미호천교 옆에 있는 정류장이다. 조씨는 이곳에서 조치원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나머지 부녀회원들은 차 2대에 나눠 타고 노래방으로 출발했다. 8시10분쯤 노래방으로 이동하던 옆 마을 부녀회장이 버스를 기다리는 조씨를 발견했다. 그것이 조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후 조씨는 귀가하지 않고 행방불명됐다. 남편 이아무개씨(48)는 아내와 연락이 두절되자 2월19일 오후 2시쯤 청주 서부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조씨의 통신과 금융거래내역 등을 조회해 그녀의 생존 여부를 확인했다. 그런데 조씨가 소지한 현금카드로 돈이 인출된 정황이 포착됐다. 버스 정류장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두 은행에서 조씨 명의의 카드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이다.

실종 당일인 18일 오후 11시1분과 3분, 조씨 명의의 현금카드를 든 남성이 조치원 죽림동 조치원농협에서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만원과 5만원을 인출하는 장면이 CCTV에 찍힌 것이다. 그는 파란색 점퍼를 입고 후드를 눌러 쓴 남성이었다. 키는 168∼170㎝의 건장한 체형이었다.

다음날인 19일 오전 10시4분쯤에는 같은 인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조치원 농협의 다른 지점에서 현금카드로 4만원을 인출한 뒤 조씨 남편 명의의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으려다 비밀번호 오류로 인해 인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조씨의 실종이 단순가출이 아닌 ‘납치’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현금을 인출한 남성의 신원 파악을 위해 현금인출기 등 현장 감식을 진행했으나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수사도 별다른 진전 없이 원점을 맴돌았다. 그러자 사건발생 13일 만에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일반인들의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시각에 이 일대를 지나간 1만4000여대의 차량번호를 검색하고, 인근지역 수색작업도 병행했다. 버스정류장의 경우 당시만 해도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 않아 어둡고 외진 길이었다. 더욱이 도로 변에서 약 6~7m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정류장에 사람이 있어도 잘 눈에 띄지 않았다.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마을 주민들도 조씨를 찾는데 적극 나섰다. 인근지역 40여개 마을에서 임시 반상회를 열고, 약 한 달 간 매일 20~30명의 주민들이 경찰과 함께 조치원 고북저수지 등 인적이 뜸한 곳을 수색했다. 하지만 조씨 실종 관련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방송 시사프로그램에도 조씨 실종사건을 제보했다. 실제 조씨의 실종사건이 관련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했으나 조씨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팔순 고령의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실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은 조씨 남편의 비밀번호 오류가 난 후에는 다시 현금 인출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범죄 전문가들은 조씨가 이미 살해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미해결 상태다. 여러 정황을 보면 조씨가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피해자는 살아 있나?
조상묵씨가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 약 3시간 후 조씨 명의의 신용카드로 현금이 인출된 것을 감안하면 범죄 연관성이 짙다. 아울러 용의자가 조씨 남편 명의의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으려다 비밀번호 오류로 실패한 후 재 시도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미 조씨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2. 어디로 갔을까?
조씨는 마지막으로 목격된 버스정류장에서 범인에게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종 당시는 어둠이 짙게 깔리는 밤이었고, 장소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남편이 있는 천안으로 향하던 조씨는 앞선 버스를 놓쳤는데, 그 후 조씨를 태웠거나 목격했다는 버스 기사나 승객이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조씨가 다른 운송수단을 이용했다는 것이 된다.
아울러 조씨 실종이후 경찰과 마을 주민들이 인근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시신 등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씨가 자가용 승용차를 탔을 수도 있지만, 마을주민들은 “아무 차나 탈 사람이 아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씨가 택시에 탔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경찰이 택시 기사들을 상대로도 탐문이나 목격자 제보를 받았으나 조씨를 태웠다는 택시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택시기사가 범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3. 범행 목적은?
범인은 왜 조씨를 납치했을까. 사건 이후 범죄전문가들도 여러 분석을 내놓았다. 크게는 두 가지다. 하나는 범인이 단순히 돈만 노렸다면 조씨를 위협해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현금을 빼내거나 현금서비스를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실종 지점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조치원 죽림동의 농협에 나타난 것은 약 3시간 후다. 때문에 범인이 ‘성폭행’ 등의 목적이 있지 않았나하는 의심이 든다. 범인이 조씨를 위협해 성폭행 한 다음 카드번호를 알아낸 뒤 시신을 유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인은 성(性)적 목적과 금품 갈취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 연쇄살인범 ‘안남기’와 연관성 있나?
안남기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청주 일대에서 택시를 이용해 부녀자를 대상으로 강도, 살해, 성폭행을 일삼은 연쇄살인마였다.
안남기의 범죄 패턴을 보면 여성을 노렸고, 피해자를 납치한 후 성폭행 했으며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그런 다음 피해자를 살해해 시신은 천변에 유기했다. 안남기의 범죄 무대도 청주였다. 조상묵씨 사건과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안씨는 경찰의 추궁에 “내가 안 했다”며 부인했다.
안씨의 범행을 보면 2004년 지적 장애 여성(22)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시신은 연기군 조천변에 유기했다. 2009년 사건도 비슷하다. 40대 주부를 납치해 성폭행한 후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살해했다. 시신은 무심천에 유기하고, 피해자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다.
2010년 3월에는 20대 여성 인턴 사원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때도 앞선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방법으로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했다. 물론 피해자의 카드로 현금도 인출했다. 이때 시신을 유기하는 장면이 CCTV에 찍히면서 덜미가 잡혔다. 안씨는 현재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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