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내외뉴스통신] 김현옥 기자 =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지난 겨울 스크린을 뜨겁게 달군 영화 ‘1987’에서 대학 신입생 역을 맡은 배우 김태리의 대사다.

30여 년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은 변했다. 외형적으로는 군부독재가 사라지고 민주정부가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촛불항쟁을 겪으면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는 민주사회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사회 곳곳에서 적폐를 청산하느라 분주하다. 적폐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하지만 양평에서 적폐라는 말을 발설하기가 쉽지 않다.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꾸려는 발언은 자칫 ‘좌편향’으로 매도 당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상식이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 자기검열에 익숙해졌다. 살기 위해서, 귀찮아서, 때로는 ‘그런다고 바뀔까’ 하는 패배의식으로 적폐의 방관자가 되다가, 급기야 자신마저 적폐의 대상이 되는 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18년 양평군 예산안을 한번 살펴보자. 총액은 5,520여 억 원으로 전년대비 22% 증가했다. 이 가운데 공기업(양평공사) 특별회계가 710억 원으로 58% 증가했다. 행사운영비는 14억 원으로 46%, 주차장사업 17억 원으로 210%, 국외여비는 40% 가량 늘어났다.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으면서 촛농이 타는 지도 모르고 즐기다 보면 줄어드는 분야도 있다. 중소기업 지원 37억 원(전년 100억여 원)으로 -65.7%, 장학금 학자금 3억 5천만 원으로 -30%, 폐기물 처리 -14.7%, 저소득층주민안정기금 -7.98%, 수질개선 -3.1% 등이 감소됐다.

무너져가는 경제정의와 사회안전망을 두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예산안의 모순에 대한 답을 찾고자 20일 오후 양평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이하 양평경실련) 여현정 사무국장(44)을 만났다.

여현정 사무국장은 2011년 양평에 터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자녀 둘을 공부 스트레스 없는 자연 속에서 키우고 싶은 평범한 엄마였다. 혁신초등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아이들의 경험을 나누고자 양평교육희망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3년간 활동한 것이 사회참여의 계기가 됐다,

2014년 세월호 관련 학부모 단체인 ‘바람개비들이 꿈꾸는 세상’(바꿈세)를 조직하고, 참사 진상을 밝히는 활동을 하게 되면서 교육과 인권에 대한 문제에 나섰다. 당시 바꿈세 밴드 가입자가 500여명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커서 이들 중 일부가 자연스레 양평경실련에 참여하게 됐다.

2013년부터 2년 여 준비기간을 거쳐 발기인 20여명으로 시작한 양평경실련은 2015년 7월에 창립을 한다. 창립과 동시에 사무국에 합류해 일하다 2016년 2월부터 사무국장을 맡아 2년 넘게 ‘시민운동의 불모지’ 양평에서 주민 권익보호를 위한 활발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평경실련은 철저하게 지역 중심의 NGO(비정부기구)를 추구한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회비를 납부하는 구성원들이 이끌어 가는 조직으로 불과 2년 여 만에 2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사무국장과 간사(김은미) 2명이 실무를 책임지고, 상설기구(정책위원회, 조직위원회), 특별기구(노동위원회, 교육위원회, 소비자위원회, 의정모니터위원회, 도서선정원회)와 부설기관(양평시민학교, 노동상담소)을 통해 분야별 현안을 청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여현정 국장은 양평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군민이 낸 세금이 올바른 곳에 공평하게 쓰이는 지 감시하는 역할을 정치적 목적으로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때문이다.

양평군의 ‘아픈 손’이 된 양평공사 문제만 해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일자리 창출과 분배의 관점에서 토론 및 공론화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으로 봐줬으면 한다. 매년 예산의 15% 이상을 쓰면서도 경영이 개선되지 않은 부담은 고스란히 군민은 물론 공사 직원, 장기적으로 농업생산 기반에까지 미친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양평경실련이 선거철에만 반짝 양평공사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매월 셋째 화요일 양평군 종합사회복지관 경로식당에서 배식봉사를 한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2시~5시까지는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법률, 노무, 세무, 컴퓨터 분야 길거리 무료상담을 지원한다.

작년 5월부터 시작한 재봉틀 동아리 ‘봉트리’ 모임에서 티셔츠 앞치마 에코백 액세서리 등을 만든다. 이를 통해 저소득 가구 청소년 30여명과 신생아 및 유아 3명에게 후원을 했다. 양평공사 노동조합 봉사동아리에서 취지에 공감해 생리대 사업에 후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 용문청년회와 공동으로 12개 읍면 자율방범대 차량을 지원 받아 용문면 어르신 120여명과 함께 가섭봉을 탐방하고, 의병장 김백선장군묘제를 주관해 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들었다. 여기에 권역별 취약계층 경제교육 일환으로 노인을 위한 실버경제교육도 진행한다

지난 여름 용문면 일대 화상경마장 유치 소식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전개, 600여명이 참여해 철회를 이끌어 내는 데 한몫 했다. 지난해 5월 설립한 부설 노동상담소는 노동자는 물론 사용자들에게도 노동법 및 근로기준법에 대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

산업재해, 부당해고, 임금체불, 비정규직, 노조설립 문제에 대해 지방공사와 세미원 노조에 대해 상담을 진행했으며, 은혜재단 부당해고건 상담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찾는 데 도움을 줬다. 이 같은 활동은 올해 롯데마트 입점에 따른 중소상인 및 재래시장 보호를 위한 상생안 마련과 조례제정 촉구 입장 발표로 이어졌다.

부설기관인 양평시민학교는 주로 어머니들이 참여, 9개 역사교실을 운영해 근현대사 공부를 했다. 청소년 대상 교실도 3개 운영하고 분기별 대중강좌도 틈틈이 열어 지적 욕구를 채우고 있다.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 온 원동력을 여 국장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꼽았다. 특히 매주 금요일 점심을 지어 먹는 ‘와밥’(와서 밥먹자) 모임은 친목과 소통을 통해 지역문제를 논의하는 장이다. 박민기 정책위원장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내놓는 요리에 맛들려 매번 10여명 가량 참여한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집행위원회는 올해 2기를 맞아 15명의 위원 중 14명이 참여할 정도로 열정이 뜨겁다. 올 초 회원 총회를 시작으로 동부 서부 중부지역 등 상반기 권역별 모임 후 6월에 전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여현정 사무국장은 “봉사와 상담, 교육, 토론을 통해 주민에 가까이 다가간 결과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각이 많이 없어졌다”면서 “시민단체로서 비판과 공론화, 대안 찾기 과정은 단순한 적폐청산 이상의 시민사회의 민주적 권리로 받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선거 국면을 맞아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20~30개 정도의 시민정책안을 제출하고, 후보들에게 반영토록 할 방침이다. 양평공사 문제도 공사노조, 군수, 친환경농산물 및 급식 납품업체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통해 해법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묶은 숙제인 용문산사격장 폐쇄운동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국방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관철시킬 계획이다. 거기다 그 동안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답답함을 ‘적폐고발센터’를 설립해 해소하려고 한다.

여 사무국장은 “각종 불합리와 모순이 해결되려면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통하는 사회 되어야 한다”면서도 “봉사와 나눔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개선해 주민들의 공감을 받는 ‘따뜻한 시민단체’의 모범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고 밝혔다.


<양평경실련 조직 소개>

◈고문
장영달(우석대 총장), 도재영(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 윤형로(용문청년회 초대 회장), 서상섭(장준하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이창복(인혁당 조작사건 피해자), 송영배(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덕현(경상대 지리학과 명예교수)

◈자문위원
박석두(농경제학 박사), 조춘선(제일광고 대표), 권오병(서울시립대 총동창회장)

◈전문위원
김주남(롯데칠성 양평대리점 대표), 권수연(컴퓨터 강사), 조재국(공연기획자)

◈공동대표
임승기(성균관대 명예교수), 유영표(민주화운동공제회 이사장)

◈감사
김광윤(동일세법연구소장), 안경모(용문중학교 교사)

◈집행위원
김경수(노무사), 김명주(학부모), 김창현(양평시민학교 교감), 박민기(정책홍보위원장), 박옥경(한실림 양평지역장), 서동일(영화감독), 서진숙(보육교사), 송진원(컴퓨터강사), 윤경일(풍경하임 대표), 정연준(목수), 정주영(법무사), 조현주(중국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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