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유골함 도난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지난 2012년 7월 19일 신아무개씨(43)는 전남 영암군 시종면 신항마을에 있는 가족 납골당을 찾았다. 전날 태풍으로 인해 강한 비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납골당에 피해가 없는지 살피러 왔던 것이다. 신씨는 타지에 살면서도 자주 조상 묘를 찾아 돌봐왔다. 

 

다행히 납골당에 태풍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평소 굳게 잠겨 있던 자물쇠가 파손돼 있었다. 이걸 본 신씨는 머리가 쭈뼛쭈뼛 서면서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다. 납골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모를 비롯해 작은 아버지와 작은어머니 등 유골함에 있던 4기의 유골이 사라져 있었다.

 

 

하루 뒤인 무안에서도 유골이 도난당했다. 무안군 몽탄면에 사는 박아무개씨(56)도 가족 납골당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납골당 자물쇠가 예리한 도구로 절단돼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 있던 동생의 유골함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4가구 13기 유골 도난당해

 

유골함 도난은 신씨와 박씨 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해 9월30일 추석 당일 오전 무안군 삼향읍에 사는 장아무개씨(51)는 가족 10여명과 함께 집에서 1km 떨어진 선산의 납골당으로 성묘를 갔다. 이곳에는 장씨의 부모와 조부모가 모셔져 있었다. 장씨는 납골당의 문이 파손돼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혹시나 해서 납골당 안을 들여다봤더니 유골 4기가 없어진 상태였다.

 

같은 날 오전 무안군 일로읍에 사는 조아무개씨(48)도 동네 뒷산 납골당에 성묘 갔다가 납골당에 있던 유골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이로써 2012년 7월부터 9월까지 전남 무안(3가구)과 영암(1가구) 일대의 납골당에서 도난당한 유골이 13기에 달했다.

 

 

이들 납골당은 모두 선산에 대리석으로 집 모양처럼 만들어졌고, 그 안에 유골함을 넣은 후 열쇠로 잠그도록 돼 있었다.

 

유골함이 연달아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유골함이 있던 자리에 범인이 남긴 종이쪽지가 나온 것이다. 쪽지는 비닐에 싸서 넣어 놨다. 여기에는 ‘(유골을) 찾으시려면 무안신문에 광고 내세요! 집 전화+휴대전화 남기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박씨 등은 며칠 후 해당 신문에 유골함을 찾는다는 광고를 내고 연락처를 남겼다. 범인은 광고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해 “1억 원을 보내면 유골함을 돌려주겠다”며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박씨는 돈을 보내지 않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해당 계좌를 추적해 주인을 파악했다. 하지만 계좌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개설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전화 발신지를 추적했으나, 국내가 아닌 ‘중국’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을 조회했지만 국내에는 동일인이 없었다.

 

전화를 건 상대방 또한 어눌한 중국 동포(조선족) 말투를 사용했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판단했다. 물론 유골함을 훔친 것은 한국에 있는 조직원일 것으로 판단했다.

 

 

전화 발신지 중국으로 밝혀져

 

누군가 한국에 있으면서 유골함을 훔치고, 이걸 미끼로 돈을 요구해 탈취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바로 전화하면 추적이 되니까 중국에서 전화를 걸어 추적을 피하는 수법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은 피해자들에게 2~3차례 전화를 해서 2000~3000만원 사이에서 흥정을 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범인은 피해자인 박씨가 경찰에 신고한 것을 알고 “유골함을 변기에 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하루에 조상이나 가족의 유골을 도난당한 피해자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장씨의 경우 유골함이 도난당한 후 ‘혹시 다시 가져다놨을까’ 하고 밤 11시에도 택시타고 납골당에 다녀오기도 했다. 꿈속에 조상이 나타나 ‘나 어디에 있으니까 찾아가라’는 꿈이라고 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한다. 조씨의 가족 또한 “가슴에 항상 한이 맺혀 있다”고 말한다.

 

유골함이 도난당한 마을에는 “사람의 뼛가루가 불치병에 좋다는 잘못된 속설을 믿는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이 사건의 범인들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도난당한 유골도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조상 유골을 인질로 삼은 납치범들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이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주범은 한국인이다.

이 사건의 주범은 한국인일 확률이 아주 높다. 중국은 조상을 납골당에 안치하는 ‘납골 풍습’이 없다. 하지만 범인은 납골 풍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돌로 된 납골당에 흠집하나 내지 않고 잠금장치만 훼손했는데, 석재 전문가들은 “돌을 잘 다루고 납골묘에 대해 잘 알아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범인은 납골당에서 아래쪽에 위치한 유골에만 손을 댔다. 즉 위쪽은 선대의 유골이고, 아래쪽은 가장 최근 사망한 후대의 유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된다. 범인이 남긴 쪽지의 필체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가 있다.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가 똑같다. 범죄 전문가들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1차로 쓰고, 그걸 중국 동포가 받아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주범이 ‘한국인’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또 있다. 범인이 피해자들과 통화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피해자가 범인에게 욕을 하니까 목소리를 높인 범인이 “나한테는 욕을 하지 마요. 한국 놈이 한 짓이니까”라면서 엉겁결에 한국인이 범행을 주도했다는 것을 실토했던 것이다.
 
2. 주범은 무안에 있다
주범은 무안지역의 사정을 잘 알고 있거나 무안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범인은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무안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했다. 범인이 평소 해당 신문을 자주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자 범인은 곧바로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신고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는 것이다. 범인은 또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니 사장님, 장난하는 겁니까. 찾고 싶지 않죠”라며 “아니 왜 경찰하고 자꾸 그렇게 연락을 하고 그럽니까”라며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유골을 변기에 버리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범인이 무안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3. 주범은 전과자다.
전화를 건 범인은 주범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피해자들과 통화내용을 보면 “형님들이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뭐 또 교도소 갈 일 있습니까”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을 토대로 유추하면 주범들은 전과가 있으며,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 또 다른 범행에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범인은 최소 2명 이상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피해자들과 통화를 하는 중국 동포로 추정되는 연락책이 있다. 또 그가 ‘형님들’로 지칭하는 복수의 범인이 존재한다. 이것만 봐도 범인은 주범과 공범을 포함해 최소 2~3명이다.

 

5. 드러난 정황으로 추정되는 사건 전말
지금까지 드러난 단서와 정황으로 이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이렇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되는 주범들은 한탕을 목적으로 납골당 유골함을 인질로 잡기로 한다. 조상들의 유골이 없어진 것을 안 후손들이 쉽게 돈과 유골을 바꿀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주범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중국동포를 끌어들인다. 그런 다음 그를 이용해 중국에 있는 또 다른 중국 동포를 섭외해서 연락책을 맡긴다.
이들은 같은 해 7월18일 비바람이 부는 것을 틈타 유골함을 훔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유골을 특정 장소에 묻어놓고 당초 계획대로 실행에 옮겼다. 일단 범인은 유골을 훔치고, 피해자들이 광고를 내게 해서 연락처 확보까지는 성공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순순히 범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범인들은 피해자 조상의 유골을 인질로 잡았지만, 돈을 받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범인들은 꼬리를 감춘 채 숨어버렸다. 그러다보니 피해자들은 조상의 유골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텅 빈 납골당에 위패만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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