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 '새마을금고 1500억' 횡령사건

[정락인 사건전문 취재기자] 지난 2008년 5월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 사는 한 주민은 천안에서 돈을 찾으려다 등록이 안 된 ‘대포통장’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주민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창구 직원에게 재차 확인을 요청했지만, 같은 말만 되돌아왔다. 그는 새마을금고연합회에 이런 사실을 신고했다.

며칠 후인 5월 8일 광천 새마을금고에 수 명의 연합회 감사반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고객 예탁금부터 거래 내역 등을 일일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금고 거래내역 등을 살펴보던 감사반은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객들이 맡긴 거액의 예금이 빼돌려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합회 특별감사에서 직원 7명이 168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누가 얼마를 횡령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여직원 최아무개씨(여·28)만 1억 2000만원을 횡령했다고 시인했고, 나중에 모두 추징을 당했다.

2년 근무한 여직원이 그 정도였다면 전무(20년 이상)나 상무(17년) 등 장기 근속자들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연합회는 공공자금 168억원을 투입해 고객 피해를 보전해주고 전 직원을 파면했다. 이와 함께 광천 새마을금고를 해산한 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연합회 특별감사에서 횡령사실 드러나

인구 1만 3000여 명의 광천읍에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제1금융권 은행이 하나도 없다. 제2 금융권인 농협과 새마을금고만 있을 뿐이다. 특히 서민 금고로 알려진 새마을금고는 광천 주민들의 안주머니 역할을 했다. 전체 인구 중 절반에 해당하는 약 6000여 명이 새마을금고를 이용했을 정도다.

광천시장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 소나 돼지 등 동물을 키우는 농장주, 농사를 짓는 농민까지 돈이 생기면 새마을금고에다 돈을 맡겼다. 언제나 친절하게 미소 짓는 창구 여직원이나 수십 년 동안 광천 토박이로 살아온 이사장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꿈에서라도 “설마 내 돈을 떼어 먹겠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대전지검 홍성지청에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연합회에서 밝혀낸 횡령금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횡령액수는 무려 1500억원에 달했고, 여기에는 이사장 등 전 직원이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천 새마을금고는 무늬만 금융 기관이었지, 실제로는 거대한 범죄 조직과 다름없었다. 이들의 기막힌 수법에는 저절로 혀가 내둘렸다. 신종 ‘은행털이범’으로 불릴 만했다.

검찰에 따르면 광천 새마을금고 전·현직 직원 20여 명은 지난 1999년 4월부터 2008년 5월까지 10여 년에 걸쳐 광천 주민 절반에 해당하는 조합원 5880명의 예탁금 1500억원(누적액)을 빼돌렸다. 여기에는 이아무개 전 이사장(62)을 비롯한 협회 임직원 20여 명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직원이 가담해 1500억원 빼돌려

이들의 범행은 새마을금고 연합회와 전혀 별개의 전산 시스템을 갖추면서 시작된다. 정기예탁금의 경우 만기 전까지 고객이 돈을 출금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 고액의 정기예탁금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고객에게는 입금내역이 포함된 대포통장을 발행해 주고 새마을금고 연합회에는 거래 내역이 입력되지 않아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었다. 연합회 감사 시에는 별도의 전산시스템과 장부를 철저히 숨기고 허위보고했다.

직원들에게는 범행 준비, 전표 조작, 수기장부 작성 등 범죄 수법까지 교육시켰다. 이사장 이씨는 퇴직하는 직원들에게는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 놓고 새로 충원되는 직원은 돈을 미끼로 범행에 가담시켰다.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위해서는 이사장이 “만약에 일이 터지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까지 쓰는 치밀함을 보였다. 전 직원이 동참한 범행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광천 새마을금고는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편법을 썼다.

검찰은 이 전 이사장을 비롯해 이아무개 전무(58), 장아무개 상무(42) 등 임직원 3명과 이 전 이사장의 아들(32)을 구속했다. 이 전 이사장의 아들은 광천터미널 부지를 담보로 새마을금고에서 8000만원을 대출받았으나, 이를 갚지 않고 갚은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가 들통났다.

최아무개씨 등 16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횡령 금액 중 일부는 이 전 이사장이 차명으로 만든 은행 계좌를 통해 빼돌린 후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의 운영 자금으로 썼다고 밝혔다.

광천 주민들은 검찰이 밝힌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횡령이 시작됐을 것으로 내다 봤다. 주민들은 이씨가 이사장을 맡은 1986년부터 횡령이 시작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새마을금고연합회의 전국 온라인 전산망이 구축된 것이 1997년 10월임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 수기로 작성하면서 얼마든지 장부 조작 등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주범격인 이 전 이사장은 광천 새마을금고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이다. 광천 새마을금고는 1979년 작고한 윤아무개씨와 이씨가 공동으로 지분을 출자해 설립했다. 윤씨가 이사장을 맡은 6년 동안 이씨는 전무로 일했다. 이 전 이사장은 그 후 20년 넘게 이사장을 맡았다.

광천읍에서 자영업을 하는 주민은 “약 15년 전에 새마을금고 여직원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광천에서는 여직원의 자살 동기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이사장과 갈등이 심했다는 말이 지배적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또 다른 주민은 “본인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하면 이자율이 5%인데, 이사장이 자기 이름으로 하면 8%를 주겠다고 했다. 여기에 혹한 주민들 중에는 자기 통장을 개설하면서 이사장 이름으로 통장을 만든 사람도 있다. 이자를 많이 주겠다고 하니까 그런 것이다. 새마을금고 총회가 열릴 때면 대형 이벤트를 열어 주민들의 환심을 샀다. 회원이 아니면 불이익을 준다고 하면서 회원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에서 최대의 의문은 10년 동안 범행이 철저하게 숨겨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20명의 직원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전 이사장 ㅅ씨는 “(이 전 이사장)은 사람을 기가 막히게 잘 다뤘다. 자기 말을 따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임직원들의 생활이 겉보기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직원 명품 의류나 가방 사기도

이 전 이사장의 경우 천북면 학성리에 대형 농장(양돈)을 소유한 재력가로 알려졌고, 개인사가 좀 복잡했을 뿐 별다른 점은 없었다. 전무나 상무 등 임직원들도 겉으로는 평범하게 생활했다. 여직원 최아무개씨만 “명품 의류나 가방을 샀다”고 할 정도이다. 이런 점도 그동안 범행을 의심하지 않게 한 요인이었다.

다만, 이 전 이사장의 경우 그동안 상당히 돈에 쪼들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원래 광천 인근 지역에서 양돈 농장을 운영하다가 이곳이 영농조합에 편입되면서 상당한 보상금을 받았다. 이씨는 이 보상금을 가지고 보령군 천북면 학성리의 약 3만평 부지에 1만2000두의 돼지를 키웠다.

하지만 약 2년 전에 이곳 돈사 1동에 불이 나면서 3000~4000 마리의 돼지가 폐사해 수억 원의 피해를 입었고, 돼지 값 폭락 등이 이어지면서 자금난을 겪었다.

이씨는 또, 횡령 사건이 세상에 드러날 것을 미리 짐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 6월 이사장직을 자신의 고등학교 선배이자 40년 지기인 ㅅ씨에게 넘기는 등 치밀한 계산을 했다. 연합회 특별감사가 나오기 이틀 전인 2008년 5월 6일에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몰래 광천을 떠났다.

이때 그의 부인은 지인들에게 약 1억원을 빌린 후 도주했다. 이 전 이사장도 개인적인 금전 관계가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당좌가 부도나면서 이씨에게 보증을 섰거나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이씨의 지인인 김 아무개씨도 1억원이 넘는 돈을 빌려주었으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해서 약 20억원 정도가 물려 있다는 것이다.

전 이사장 ㅅ씨는 “이 전 이사장이 광천을 위해 이사장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명의만 빌려줬다. 그러다가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청산 작업을 직접 진행했다. 청산을 하다 보니 이 전 이사장의 재산 목록(부동산, 주택, 농장 등)은 무려 72가지나 됐다”며 “그런데 3차까지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그것으로 보면 그의 재산이 공중 분해됐다고 볼 수 있다. 나도 가장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다. 광천 사람 모두가 내 심정 같을 것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광천은 ‘광천 김’으로 유명한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토박이들로 수 십년 간을 호형호제하면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런 광천에서 초대형 횡령사건이 터지면서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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