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086편 회항 사건

[정락인 사건전문 취재기자] 한진그룹은 국내 재계 순위 14위의 재벌기업이다. 세계에서 육상(한진), 해운(한진해운), 항공(대한항공)을 가진 유일무이한 기업이다.

지난 2014년 12월5일 오전 0시 50분쯤(현지시간) 미국 뉴욕JFK 국제공항에서 인천으로 오는 KE086편 1등석에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탑승했다.

한 승무원이 퍼스트클래스에 타고 있던 조 부사장에게 견과류인 ‘마카다미아(땅콩)’가 든 봉지를 건넸다. 그러자 조 부사장은 "왜 넛츠를 봉지째 주느냐. 규정이 뭐냐"고 해당 승무원을 질책했다.

사무장까지 불러 규정을 확인시켰는데,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자 그를 향해 “내려”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항공기는 후진한 후, 사무장을 내리고 나서야 인천을 향해 이륙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항공기의 이륙이 약 20분 동안 지연됐으며, 인천공항 도착 또한 예정시간보다 11분 늦어지는 등 해당 비행기에 타고 있던 250여명의 탑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승무원·사무장 무릎 꿇리고 질책

항공기의 후진, 즉 ‘램프리턴’은 기체 결함이나 주인 없는 수화물 등 안전 우려가 있을 때만 이뤄져야 한다. 규정을 따지며 이륙하려던 항공기를 되돌린 조현아 부사장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항공기가 문을 닫고 지상 활주를 시작했으면 모든 권한은 기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기내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조 부사장이 아무리 비행기가 속한 항공사의 부사장이라지만 비행기 안에서의 절대 권한은 기장에게 있다. 조 부사장은 단지 승객으로서의 권한밖에 없었는데, 비행기의 총 책임자인 기장의 권한을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대한항공은 사과문을 내고 “해당 승무원이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객실을 담당하는 총괄 부사장으로서 적정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지만, 성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국토교통부도 ‘항공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섰다. 우리나라 항공법에 따르면 기장과 승무원의 직무를 방해해서 항공의 안전을 해친 사람에게는 10년 이하의 징역, 그리고 항공기 안전을 위한 지휘, 감독은 전적으로 기장이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대한항공 노동조합도 조 부사장을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노조 관계자는 “항공보안법 제43조 ‘직무집행방해죄’에 따르면 폭행·협박 또는 위계로써 기장 등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해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을 해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조 부사장은 대한항공 임원이자 오너의 지위를 이용해 기장을 압박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2월 10일 조현아 부사장은 대한항공 부사장은 물론 계열사 등기이사와 계열사 대표 등 그룹 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이틀 후인 12월12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저의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아버지로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조양호 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하던 날 박창진 사무장(45)은 KBS와 작심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회항 당시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 측은 이 사건에 관해 거짓진술을 하도록 계속 강요했다고도 주장했다. 대한항공의 조직적인 증거인멸과 거짓진술 강요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 사무장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도 이런 내용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박 사무장에 따르면 “조현아 전 부사장이 기내에서 견과류를 제공하려 했던 여승무원을 질책하고 있어 기내 서비스 책임자로서 용서를 구했는데 조 전 부사장이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하면서 서비스 매뉴얼 케이스의 모서리로 손등을 여러 차례 찔러 상처가 났다. 이런 모욕감과 인간적 치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조 전 부사장이 여승무원과 나를 무릎 꿇린 채 모욕을 줬고, 삿대질을 하며 조종실 입구까지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폭행당한 것에 대해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당장 연락해서 비행기 세워, 나 비행기 못 가게 할 거야’라고 했다”면서 “감히 오너의 따님인 그분의 말을 어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사건 이후 대한항공 직원 5~6명이 거의 매일 집으로 찾아와 ‘사무장이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해 조 부사장이 화를 냈지만 욕을 한 적은 없으며 스스로 비행기에서 내린 것’이라고 거짓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의 앞자리에 있던 1등석 승객 박아무개씨도 언론을 통해 “조 전 부사장이 사무장에게 내릴 것을 강요했고, 승무원에게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며 박 사무장의 발언을 뒷받침 했다.

박씨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일등석과 일반석 사이 커튼이 접힌 상태에서도 일반석 승객들도 다 쳐다볼 정도였다. 무릎을 꿇은 채 매뉴얼을 찾고 있는 승무원을 조현아 부사장이 일으켜 세워 밀쳤다. 한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 한쪽을 탑승구 벽까지 거의 3m를 밀었다. (매뉴얼이 담긴) 파일을 말아서 승무원 바로 옆의 벽에다 내리쳤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 “승무원은 겁에 질린 상태였고 안쓰러울 정도였다. 결국 승무원에게 파일을 던지듯이 해서 파일이 승무원의 가슴팍에 맞고 떨어졌다. 승무원을 밀치고서 처음에는 승무원만 내리라고 하다가 사무장에게 ‘그럼 당신이 책임자니까 당신 잘못’이라며 사무장을 내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 전 부사장은 ‘땅콩 회항’ 당시 음주상태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사실로 확인됐다. 국토부 조사에서 비행기에 탑승 전 저녁자리에서 지인들과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셨다고 진술했다.

박창진 “폭언·폭언 있었다” 폭로

박창진 사무장의 폭로가 있은 후 여론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 됐다. 그의 폭로가 나오기 전 조현아 부사장은 국토부 조사를 위해 출두할 당시 사무장을 상대로 욕설과 폭행을 했는지 묻는 기자들의 말에 “처음 듣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다”라고 부인했다. 대한항공은 조현아 부사장의 보직사퇴와 사표 제출, 아버지 조양호 회장의 사과문 발표로 성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으나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땅콩회항 사건이 터진 후 국토교통부가 조사에 나섰지만, ‘유착설’이 강하게 제기됐다. 조씨가 조사 받는 자리에 대한항공 임원을 오랫동안 동석시켜서 말썽이 일었고, 국토부 조사관 6명중 2명이 대한항공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조사관 중 한 명인 김아무개(54)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감독관은 조사 내용을 대한항공 측에 수시로 알려준 혐의(공무상 누설혐의)로 구속됐다. 김 조사관은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여아무개 상무(57)와 수십 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조사 내용을 누설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대한항공 출신이었다.

같은 해 12월 24일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해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죄 △강요죄 △업무방해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  5가지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2월 30일 법원은 “사안이 중하고 사건 초기부터 혐의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점 등에 비춰볼 때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이때 여 상무도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언니인 조현아 부사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드러나 또 한 번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조 전무는 언니가 검찰에 출석하자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가 문제가 되자 “치기어린 제 잘못이었다”며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과했다. 
 
2015년 2월2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함께 구속된 여아무개 대한항공 상무와 김아무개 국토교통부 조사관에게는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은 자기 방어 수준을 넘어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여준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피고인 신문에서 조씨는 “사건의 발단이 승무원과 사무장 때문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취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수사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폭언, 폭행 등은 인정했다.

이날 재판에는 박창진 사무장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조 전 부사장은 물론 조양호 회장 등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현아에 대한 심경을 말해달라’는 검사의 말에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은 경영방식으로 제가 다른 승무원과 당한 사건과 같은 행위를 한 것에 대해 본인이 진실성 있게 반성해 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나야 한 조직의 단순한 노동자로서 언제든 소모품 같은 존재가 되겠지만, 조 전 부사장 및 오너 일가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지난 19년간 회사를 사랑했던 그 마음, 또 동료들이 생각하는 그 마음을 헤아려서 더 큰 경영자가 되는 발판으로 삼기를 바란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또 대한항공에서 자신을 '관심사원'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석방

2월 12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 오성우)는 조 전 부사장에게 ‘항로변경죄’를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과 함께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아무개 대한항공 상무에게는 징역 8월,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김아무개 국토교통부 조사관에게는 지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혐의 5가지 중 ‘공무집행방해죄’를 제외한 나머지는 유죄가 인정됐다. 가장 큰 쟁점은 램프리턴으로 알려진 ‘항공기 항로변경’이다. 이것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조 전 부사장은 100%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텐데 결국 유죄 판결이 나면서 실형이 나온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조씨 측은 1심 선고 하루 만에 판결에 불복,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2015년 5월 22일 열린 항소심에서는 조 전 부사장에게 예상대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이었던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항로’는 사전적 의미대로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로 해석하는 게 맞다”며 항로는 ‘항공로’를 의미할 뿐이지 지상 이동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는 조 전 부사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과 형법상 강요, 업무방해 등 3개 혐의는 유죄로 보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2심이 엇갈린 판결을 내린 것이다. 검찰이 상고했으나 지난해 12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땅콩 회항 사건’의 법적 처벌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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