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경제민주화·동반성장·벤처창업>

우리나라는 경제민주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벤처창업의 무늬만 그리고 있다. 독일처럼 경제민주화하면 중소기업이 좋아지고 일본처럼 대기업이 협력하면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이 판을 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독일은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이지만 미국처럼 획기적인 혁신을 하는데 실패해 위기를 느끼고 에버트재단의 Schröder박사(2016)의 지적처럼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로 거국적 차원에서 대대적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Kimura박사(2001)에 의하면 일본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강하게 만드는데 기여했지만 세계화에 따라 해외로 진출하면서 중소기업은 과거처럼 대기업의 기술이나 경영지원을 받기 어려워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한군의 요구로 경제민주화를 추진했고 빠르게 부흥하면서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가 모두 경제민주화를 추구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벤처중소기업이 경제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다. 1980년대 독일과 일본의 도전으로 위기를 느낀 미국은 첨단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육성해 돌파구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독일과 일본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론이나 실증분석으로도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을 지속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요인임을 확인하면서 OECD(2010)는 중소기업정책의 핵심을 기업가정신을 높여 혁신을 촉진하는데 두라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 무엇을 놓치고 있나?>

한국은 경제민주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벤처창업 그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경제민주화도 동반성장도 그리고 벤처창업도 정부가 다 해야 한다는 발상 때문에 그렇다. 당사자인 중소기업이나 중소기업이 고객인 은행이나 졸업생을 취업시키는 학교는 빠져있다. 정부는 툭하면 법 만들고 자금지원 늘렸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벌어졌다. 중소기업 자금지원이 OECD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지만 중소기업의 1/3정도는 수입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혁신의 성공에 으뜸가는 요소는 기업가정신이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것 다한다고 나서면서 중소기업이나 이해당사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해결하라고 한다. 중소기업문제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기업가정신을 훼손했고 중소기업의 생태계를 악화시켰다. 얼마 있지 않아 기업가정신촉진법, 중소기업생태계보호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 무엇이 다른가?>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는 중소기업이 스스로 할 일, 관련 경제주체들이 해야 할 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상호 협력해 시너지를 만든다. 경제민주화든 동반성장이든 벤처창업이든 권리와 의무의 균형, 수익과 위험의 공정한 분담, 장기성과의 추구 등이 불문율적인 규범으로 작동한다. 당사자인 중소기업이 혁신에 대한 의지가 작고, 학교가 학생들이 취업할 기업에 관심이 없고, 은행이 대출해주고 원리금만 회수하면 그만인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도 중소기업을 강하게 만들 수 없다.

<기업 스스로 책무성을 높인다.>

우리나라는 혼자 창업해도 주식회사를 만들고 기술을 조금 익히면 회사에서 나와 창업을 한다. 이러니 혁신역량이 쌓이기 어렵다. 독일은 중소기업이라면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를 선택한다.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미국과 일본도 그렇다. 미국은 유한회사의 도입이 늦었지만 1990년대 혁신의 시대가 되면서 지배구조의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유한회사 도입이 확산되었다. 유한회사는 주식회사처럼 출자자가 유한책임을 지지만 출자자들이 불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나 기술 등으로 결합한 전문 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출자자들의 숫자를 제한하고 지분 변경 등 중요한 의사결정에 출자자들이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기업의 지배구조는 지분 제공 등으로 핵심 인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소비자에 대해 신뢰를 높이고 은행대출에 대한 공동책임을 강화하게 만든다. 유한회사는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용이하게 만든다. 한국은 경영참여를 근로자의 권리로만 인식하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는데 사실은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무거운’ 장치이기도 하다. 근로자들이 과도한 임금인상은 자제하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독일의 근로자평의회와 공동결정제도, 일본의 관행화된 노사협의, 미국의 스톡옵션 등 주식공유나 이윤공유, 성과공유가 경영위험 분담을 위한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은행도 책임진다.>

우리나라 은행은 담보나 보증으로 안전하게 대출하고 대출한 이후 고객인 중소기업에 대해 경영 정보나 조언도 하지 않는 등 위험을 분담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Hall교수와 Soskice박사, 2001)에서 제기되었듯이 독일은 중소기업의 자기자본 비율이 높지만 대출 은행이 중소기업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자금 빌려주고 이자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경영 정보 제공과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본도 독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 미국의 벤처자금 투자기관은 기술과 시장에 대한 분석력으로 투자 중소기업의 경영을 지원한다. 대출이든 투자든 자금을 지원하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금융관행은 경영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약점을 보완하게 만든다.

<전 방위적 산학협력>

우리나라는 산학협력을 강조하지만 학교는 기업과 담을 쌓고 기업은 학교를 원망하고 정부는 학교를 사사건건 규제한다. 독일 기업은 채용하기 이전부터 도제교육을 통해서 인력을 키운다. 직업교육을 정부가 아니라 기업단체인 상공회의소가 주관한다. 중소기업이 인재확보를 위해서 미리 투자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교육제도가 비슷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평소 학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인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독일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교육보다는 연구에서 산학협력이 활발하다. 미국의 대학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교육과정이 훨씬 엄격해 혁신 인재를 양성하는 보고이지만 특정한 기업을 상대로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다. 그 대신 대학이 자유롭게 투자까지 하는 등 기업가정신으로 산학협력에 나설 수 있도록 허용한다.

글/김태기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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