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큰 전시가 몇 개 있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된 '한국근현대회화100선전'은 자주 보기 어려운 기획전으로 192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우리 근현대 미술작품을 망라하였습니다. 관람객들이 그 풍부함과 높은 수준에 많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미술 애호가들이 우리 근현대 미술을 더 알고 작가, 작품들과 더 친해질 수 있는 훌륭한 기회였다고 생각됩니다. 또 인사동에서 박수근전시가 있었는데 모처럼 박수근의 전 작품을 거의 다 모아놓은 의미가 큰 전시였습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전시들이 서울과 지방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시민의 문화생활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시설들로서 그 나라나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가보더라도 중요 미술관과 박물관은 대부분 대중이 찾아가기 쉬운 도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작년 가을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위치가 매우 좋아 미술을 통한 대중의 문화 향수에 크게 기여할 뿐 아니라 서울의 품격과 매력을 높이는 데도 적지 않게 이바지한다고 하겠습니다. 서울의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에 들어선 이 미술관은 이름이 서울관이지 사실상 국립현대미술관의 본관에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니다. 새 건물 하나에 기존의 여러 건물을 연계한 전시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아담하고 편안하게 만든 것도 돋보입니다.

그간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과천관이 아무리 규모가 크고 소장품이 많다 해도 멀어서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국군수도병원, 기무사 등을 거쳐 온 그 자리에 미술관을 지은 것은 근년에 본 우리 문화행정 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늘 찾게 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사람의 발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 고요한 교외의 숲 속에 있다면 아무리 좋은 건물과 시설이라도 그 의미가 퇴색할 것입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이렇게 도심에 훌륭한 미술관이 생겼으니 찾아가기도 편리하고 멀리서 그 모습만 봐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현대인에게는 도심의 공원 같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숲이 있는 공원에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넓은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듯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도 도시인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누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인간 정신이 빚어낸 창작물들과 만나면서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나름대로 재충전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좋은 자리에 위치한다는 것 외에도 건축미나 공간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딱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람들의 내왕이 많지 않은 용산의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심에서 멀지는 않다 하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길이 불편합니다. 택시를 타야만 그나마 쉽게 갈 수 있는데 택시에서 내려서도 제법 걸어서 들어가야 하므로 여름에 박물관 한 번 찾아가는 게 적지 않은 고역이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진국의 도시들처럼 대중의 문화적 갈망을 해소해 줄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지하철이나 버스로 찾아가기 쉽게 도로에 바로 붙어 있거나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달리 장소가 없어 박물관을 거기에 세웠다 하더라도 건물을 큰길에서 멀지 않게 지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거대한 박물관 안에서 전시물을 보면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아픈데 정문에서 박물관 입구까지 가고 오는 거리가 머니 관람객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물관에서 열리는 훌륭한 전시는 많은데 큰맘을 먹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이 아쉬운 일입니다.

우리 중앙박물관은 배산임수를 고려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이런 구조는 오히려 일반인들에게는 불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분들은 실내에서 주변의 넓은 공간과 잘 조성된 경관을 즐기면서 보낼 수 있을 것이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면 뭔가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금이라도 정문에서 가깝게 느껴지도록, 지상이 아니면 지하에라도 무슨 유용한 시설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길에서 곧바로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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