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리서치 대표 김창권

[내외뉴스통신] “여러분들 앞에 있어야 저도 좋은 것 같아요. 무대에서 긴장한다는데 저는 긴장 안돼요. 너무 편해요. 평생 딴따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50년까지 왔죠.”라며 소감을 전하는 그의 무대멘트에서 가왕의 카리스마를 흠뻑 느낄수 있었다. 이어 그는 "난 음악이 좋아서 취미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평생을 하게 됐다. 여러분이 있어서 50년동안 할 수 있었다. 감사드린다"며 팬들에게 겸손한 고마움을 여과없이 전했다. 50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의 건재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봄비가 세차게 내렸던 지난 5월12일 토요일밤은 비 대신 가왕의 음악으로 한껏 젖어든 시간이었다.현란한 조명에다 드론까지 띄우며 잠실벌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용필&위대한 탄생 50주년 콘서트 ‘땡스 투 유(Thanks to you) 서울’ 공연의 열기와 함성은 지금도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공연 3시간 전부터 잠실종합운동장역 일대는 그의 노래를 기다리는 팬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뜻깊은 공연임을 알고 있던 하늘의 장난이었을까. 15년 전 잠실주경기장에서 그가 첫 공연을 했던 날처럼 이날도 비를 피해가진 못했다.

“계속 날씨가 좋다가 하필이면 오늘 이렇게 비가 옵니까. 아 미치겠어. 내일은 좋다잖아요”라며 빗 속에서 치뤄지는 세번째 야외 공연을 푸념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면서 “정말 비 지겹습니다. 2003년 여기서 처음 공연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왔어요. 2005년에는 더했고요. 근데 한 분도 간 분이 없었어요. 오늘도 그럴 거죠? 믿습니다.”라고 첫 멘트를 날렸다. “니가 있었기에/ 잊혀지지 않는/ 모든 기억들이/ 내겐 그대였지/ 해주고 싶었던/ 전하고 싶었던 그말/ 땡스 투 유“ 50년을 한결같이 응원해 준 팬들을 위해 조용필이 만든 테크노 스타일의 자작 오프닝곡 ‘땡스 투 유’가 울려퍼지자 조용했던 4만 5000 관중들이 일제히 “조용필!”, “오빠!”, “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공연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상·하의에 가볍게 걸친 회색 조끼, 흰색 운동화를 신고 까만 썬글라스를 쓴 그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가왕다운 기품 있는 모습 그 자체였다. 50년이 지나도 가왕의 치명적인 매력의 힘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흔히 마지막 곡으로 선곡하던 ‘여행을 떠나요’로 포문을 연 그는 ‘못찾겠다 꾀꼬리’ 무대에서 ‘무빙 스테이지’를 타고 뒤편의 객석으로 나아갔다.

‘기도하는’이라는 첫 소절이 나오자마자 ‘꺅’이라는 함성이 튀어나와 다음 가사를 부르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비련’은 36년이 지난 오늘도 ‘꺅’이 ‘오빠’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다. 역시 우리시대의 가왕은 가왕이었다. 두번째 곡 ‘못찾겠다 꾀꼬리’부터 서서히 본래 음색을 끌어올린 그는 ‘바람의 노래’, ‘그대여’, ‘어제 오늘 그리고’ 등 자신의 명곡들을 연이어 부르며 분위기를 잡았다. 일부러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팬들과 직접 소통하려했다. 공들여 단장한 머리가 빗속에서 망가지자 아예 자기 손으로 흐트러뜨리는 등 팬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그대로 공연속에 짙게 묻어 나왔다.

이날 공연에서 어김없이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 것은 단연 2011년부터 이어져 온 ‘무빙 스테이지’. 객석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메인 무대에서 약 100m 가량 떨어진 가장 끝 관람석까지 레일로 이동하는 무대다. 그는 공연장 한 가운데에서 무대를 멈춰 세워 360도로 돌며 팬들에게 포즈를 취하며 노래를 불렀고, 때로는 가장 끝에 있는 관객석까지 무빙 스테이지를 끌고와 팬들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가왕’이라는 타이틀이 무색지 않게 조용필은 공연의 흐름마져도 쥐락펴락했다. 강렬한 일렉기타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다가도 반주가 거의 없는 느린 곡을 부르며 공연의 몰입도를 높였다. ‘창밖의 여자’는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 하나에 맞춰서 완곡을 했다. ‘한오백년’과 ‘간양록’을 부를 때는 그의 신끼 있는 목소리가 공연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수많은 그의 명곡들을 팬들에게 다 불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제 노래 다 못들려드려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다하려면 3일 내내 공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 통기타를 메고 자신의 곡 중 ‘그 겨울의 찻집’, ‘서울서울서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 원래 선곡되지 않았던 노래들의 주요 구절을 즉석 메들리로 부르기도 했다. 4만 5000여명의 관객은 그와 함께 호흡했다. 유도하지 않아도 ‘떼창’이 절로 나왔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창밖의 여자)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잊혀진 사랑) 등의 소절이 공연장에 한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특히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로 시작하는 곡 ‘허공’을 부른 뒤 그만 두자 팬들이 떼창으로 후렴구를 이어 불렀고 결국 조용필도 따라 1절까지 모두 부르기도 했다.

원조 오빠답게 그는 노련한 팬 조련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몇몇 팬들이 ‘용필 오빠’를 외치자 장난스럽게 “왜 자꾸 불러”라고 화답하기도 하고, ‘무빙 스테이지’에 선 그는 악수를 요청하는 팬들에게 “안 당길 거지”라고 묻기도 했다. 팬이 약속을 어기고 손을 내민 그를 객석으로 잡아당기자 “이럴 줄 알았어. 꼭 이렇다니까”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공연의 최고조는 단연 록 사운드를 담은 곡 ‘모나리자’ 였다. 그가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라는 대목을 부르자 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몸을 흔들려 저마다 후렴구인 “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 나를 슬프게 하네”를 합창했다. ‘슬픈 베아트리체’를 마지막으로 ‘감사합니다’를 수십번 외치며 고개를 숙였던 그가 무대에서 사라지자 팬들은 아쉬움속에 다시 한 번 “앵콜”을 외쳤다.

많은 이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할때 즈음 무대엔 다시 조명이 들어왔고 조용필은 무대로 돌아왔다. 앵콜 첫 곡은 그가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즉석으로 만들었다는 곡 ‘꿈’이었다. 이후 ‘친구여’에 이어 어린아이부터 20대까지 가수 조용필을 다시금 알게 해줬던 2013년 19집 타이틀곡 ‘바운스’를 진짜 엔딩곡으로 꺼내들었다. 순간 ‘대형 클럽’을 연상케 하듯 모든 팬들이 리듬에 몸을 흔들었다. 한 음악인의 열정과 자기 혁신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었다는 반응을 보인 이곡은 10년만에 발매됐던 조용필의 앨범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명반의 탄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비처럼 젖어들었습니다. 햇살처럼 스며들었습니다.” 그가 공연내내 바라봤던 객석 3층 현수막엔 이런 멘트가 걸려 있었다. 조용필의 노래는 50년이 지났음에도 팬들과 대중들에게 비처럼 햇살처럼 다가오는 힘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공연이었다.

누가 뭐래도 4만 5천 팬에게 보여준 이번 공연은 가왕 조용필의 겸손함과 성실성을 넘어 유능함마져 보여준 무대라고 평가하고 싶다. 과연 조용필이 가진 매력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마지막 앵콜곡 ‘바운스’의 가사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림을 새삼 느낀다. 가왕' 조용필의 50주년이 그렇게 빛난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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