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인들도 문재인 대통령도 탄식

[경남=내외뉴스통신] 장현호 기자 = 이 시대 ’마지막 무애(無碍)도인’이 떠났다.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이 26일 오후5시11분 강원도 속초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밀양이 낳은 우리시대 최고의 석학 고 신영복 선생에 이어 오현 스님의 안타까운 입적소식에 밀양은 큰 슬픔에 잠겼다.

오현스님은 밀양문인협회 후배들에게 특히 깊은 애정이 있어 고향문집에 시를 많이 보냈다 고향에 대한 애정과 진한 향수가 남달리 깊어 잠시나마 스님과 함께 했던 지역 문인들의 슬픔과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대한불교조계종 원로 의원이자 설악산 신흥사 조실인 무산(오현) 스님이 지난 26일 오후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승납 60년, 세납 87세. 속명인 `오현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무산 스님은 한국 불교문학을 대표하는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39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교신문 주필과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신흥사 주지, 원로 의원, 백담사 조실,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일해 왔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스님은 현대시조문학상, 남명문학상, 가람문학상, 한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7살에 절머슴으로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잤으니 언제 공부나 해봤겠느냐“며 ‘무식한 노승임’을 자처했지만, 실은 어린시절 대장경 원문을 외워 그대로 암송해낼 수 있는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해탈의 정신세계와 파격의 언어, 세심한 내면은 시에 남았다. 그의 시에 대해 원로시인들중엔 “시인들조차 감히 넘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세계”라고 평가했다.

그의 시에선 7살 어린 나이에 원치않게 절집에 맡겨진 가엾은 동자승의 ’타는 목마름’과 중생들의 아픔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시조 ‘어미’에는 죽도록 일하다 힘이 떨어지자 미처 젖도 못 뗀 새끼를 두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어미소가 당산 길 앞에서 주인을 떠박고 헐레벌떡 뛰어와 새끼에게 젖을 먹여주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그가 서울에 올라오면 가끔 머물던 서울 정릉 흥천사 조실채엔 ‘손 잡고 오르는 집’이라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쓰인 편액이 걸려있다. 고인이 붙인 이름이다. 그의 정신 세계는 일찌기 중생의 관념과 애증의 골짜기를 뛰어올라 창공을 비상했지만, 그는 늘 그 골짜기로 내려와 구부러진 허리를 한채 고통중생들과 언덕을 함께 올랐다.

문 대통령은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 얼마 전에 스님께서 옛날 일을 잊지 않고 ‘아득한 성자’ 시집을 인편에 보내오셨기에 아직 시간이 있을 줄로 알았는데, 스님의 입적 소식에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라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스님은 제가 만나뵐 때마다 늘 막걸리 잔과 함께였는데, 그것도 그럴듯한 사발이 아니라 언제나 일회용 종이컵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영결식은 오는 30일 오전 10시 원로회의장으로 설악산 신흥사에서 엄수되며, 이어 금강산 건봉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봉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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