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돌아온다

 

[서울=내외뉴스통신] 김덕팔 기자 =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그는 일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 이보다 더한 형은 없느냐? “ 그의 당당함은 또 다시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서른 두 해의 치열했던 생을 마감한 그는 하얼빈 역에서 아시아의 원흉이였던 이토히로부미 (조선 초대 통감/ 일본 총독역임) 를 격살시켰던 ‘안중근 의사’ 였다.

사형 선고 뒤 안 중근 의사의 어머니 ‘ 조 성려 (세례명/ 조 마리아) 여사’는 ‘항소 하지 말고 죽으라’ 라는 마지막 말을 전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위대한 어머니로 기억되며 존경 받아 오고 있다. 영웅의 생애는 그렇게 짧았고, 대한민국뿐 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용기와 희망을 준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되며 현재까지도 각국에서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영웅 그의 유해를 지금까지도 발굴하지 못하고 허 묘로 남겨 두지 않았던가? ‘조린 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나를 조국에 안장해다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효창공원 내 삼의사묘역 중 백범 김 구 선생께서 안중근 의사의 허 묘(유해를 찾아 안장하기 위해 마련된) 윤봉길 의사 와 나란히 선 묘이지만 안중근 의사는 돌아오지 못했고, 모친 ‘조 마리아 여사는’ 징안쓰 외국공동묘지에서, ‘김 아려 (아녀스/ 안 중근 의사의 아내 분)여사’ 역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장남인 안 분도, 의문의 독살로 7세의 생을 마감했고, ‘안현생’ (장녀) 만이 고국에 묻혔고, ‘안준생’은 6.25 당시 부산 군 병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희생 되었지만, 그의 가족들은 처절한 삶을 살아갔다. 일본의 감시와 억압, 그들은 아무런 꿈조차 가질 수 없었다. 과거 1980년대 3부작 특집 극으로 다루어진 드라마 외에 현재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는 제작되어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몇 년 동안, 고군분투 해오며, 모두가 제작되지 못할 거란 쓴 소리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꺾지 않았던 ㈜더 윤 미디어 그룹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조명하며 가시밭길 속에서 2018년 현재까지 제작에 열성을 다하였고, 놀라운 사실은 한국 측 보다 중국 측에서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에 더욱 큰 관심 과 열정을 보여주어 이에, 감사의 뜻을 함께 전하고자 했다.

캐스팅 부분은 현재 80% 마친 상태이며, 현재는 ‘ 안중근 의사’ 주연 캐스팅 마지막 단계만을 남겨 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2018년 10월 26일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 저격 당일)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의 허 묘 앞에서 1차 제작 발표가 있을 예정이며, 2차 발표는 뤼순감옥에서 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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