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북한이 독재 세습체제를 국제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국 시진핑 주석과 세 차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한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따라 오는 9월 푸틴 대통령이 주재하는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이 참석할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7월 19일 “김정은 동지께서는 전통적인 북․러 친선을 귀중히 여기신다”며 9월 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사실 북한 정권은 구 소련에 의해서 탄생한 정권이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스탈린이 이식한 독재체제이다. 1990년 전후 구 소련 및 동구 공산권 몰락과 함께 스탈린 체제는 사라졌다. 2011년 ‘아랍의 봄’ 때 스탈린 체제와 유사한 중동의 독재체제도 무너졌다. 그러한 체제가 인류 보편적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에는 여전히 스탈린식 독재체제가 존속되고 있다. 공개처형을 통한 공포조장과 정치범 분리, 정보조작을 통한 우민화, 독재자 우상화, 자유권적 기본권의 제한 등 북한에 남아있는 스탈린식 독재체제의 유산은 너무나 많다. 독재집단의 이익만 강화시켜주는 평화가 아니라 한민족 전체에게 희망을 주는 평화를 위해서는 모두 청산해야 할 과제들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핵 문제에 가려 이러한 문제들은 국제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핵 문제를 부각시켜 체제의 약점을 덮으려는 북한의 능수능란한 전략과 전술에 국제사회가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즈음 북한에 스탈린식 독재체제가 접목되는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문제의 뿌리를 알아야만 그 해결방법을 올바로 찾을 수 있다. 

북한에 스탈린식 체제가 이식된 때는 해방직후다.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각각 자유민주체제와 스탈린 체제를 세웠다. 그러나 그 체제를 이식하는 방법은 서로 달랐다. 미국은 군정(軍政)을 통해 제도를 바꿔나감으로써 주한미군이 ‘점령군’이라는 인식을 낳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소련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점령군이 아닌 ‘해방군’이라고 선전하면서 김일성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민정(民政)’을 시행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 결과 객관적 사실과 논증으로 사회현상의 진리를 규명해야 하는 학계까지 일부 북한 선전에 물드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구공산권 몰락은 북한 정권의 본질적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북한 정권의 창출을 배후에서 지휘했던 소련군 간부들의 일기, 비망록, 증언 등이 속속 발굴됐다. 

새롭게 빛을 본 사료들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극동 소련군 연해주 군관구 정치위원의 총지휘 아래 평양에 주둔한 소련군 제25군 소속 정치장교들의 현장지도를 통해 창출됐다. 특히, 연해주 군관구 정치위원이었던 쉬띄꼬프의 일기는 북한의 김일성뿐 아니라 남한의 좌파 지도자였던 박헌영, 여운형까지 철저하게 소련의 통제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헌영은 당이 사회단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1946.9.9.).’, ‘스딸린 동지에게 암호전문을 보내 여운형에게 어떠한 답변을 주어야 하는지 묻다. 지령을 요청하다(1946.9.24.).’ 쉬띄꼬프의 일기에 등장하는 구절들이다.

또한, 그의 일기에는 1946년 9월 24일 총파업으로 시작되어 그해 10월의 영남소요로 이어진 사태를 실질적으로 소련이 조정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있다.

‘남조선 파업투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리다 - 체포된 좌익 활동가들의 석방, 공산당 지도자 체포령 철회, 임금인상 등의 요구들이 완전히 받아들여질 때까지 파업투쟁을 계속한다(1946.9.28.).’, ‘박헌영이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향후 투쟁방침에 대해 교시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다(1946.10.21.).’

이처럼 소련의 연출로 생겨난 북한 정권은 구소련이 몰락하자 중국에 기대어 생존을 모색해왔다. 스탈린 사후 한때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나자 구소련과 중공 두 나라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쳤지만 구소련 체제 몰락 이후에는 중국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 중국도 북한 지도부에 어떠한 ‘지령’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 지령의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스탈린 체제의 청산은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우선 급한 대로 개혁․개방을 통해 주민들의 의식주라도 개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으면 좋겠다.

안보통일연구회 정책위원 정주진

-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 21세기 전략연구원 기획실장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8617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