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만에서도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의 동향이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선거 일정이 오는 11월로 잡혀 있지만 다음 달로 선거가 예정된 우리보다 더욱 정치권의 움직임이 분주한 것 같습니다. 최근 대학생들의 기습적인 입법원 점거농성과 타이베이 중심가에서 벌어진 대규모 원전반대 가두시위 사태로 선거 열기가 잠시 주춤했으나, 20여일에 걸친 농성이 마무리되면서 다시 선거 정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수도인 타이베이(臺北) 시장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의 움직임이 주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총통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위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겠지요. 지금의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타이베이 시장을 거쳤고, 과거 국민당 정권에 맞서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또한 타이베이 시장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집권 국민당의 후보는 경선 과정을 거친 끝에 이미 지난달 결정되었습니다. 올해 마흔네 살인 롄성원(連勝文)이 그 주인공입니다. 롄잔(連戰) 전 부총통의 아들이며, 모친도 ‘미스 타이완' 출신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그 자신 타이베이 지하철(MRT)과 버스 탑승에 이용되는 교통관광카드 회사의 대표를 지낸 기업인 출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집안의 재산이 엄청난 규모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항간에는 수백억 달러에 이른다는 소문도 자자합니다. 아버지 롄잔이 부총통을 지내는 등 가문 구성원들이 대체로 공직자 출신이었는데도 어떠한 과정으로 그만한 재산을 모았는지가 논란거리입니다. 그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시장에 당선될 경우 월급 전액을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여론으로부터 시비의 대상에 올라 있는 중입니다.

이에 비해 야권의 움직임은 약간 복잡합니다. 민진당의 경선 후보들보다 무소속 출마의 뜻을 밝힌 대만의대 외과의사인 코원저(柯文哲)의 인기도가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야권 단일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후보선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단 민진당 후보들끼리 우열을 가린 뒤 다시 코원저와의 지지율을 따져 야권의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는 방안이지요.

내달 중에는 야권의 단일화 후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결국 코원저의 우세가 유지됨으로써 롄성원과의 양자 대결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입니다.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천수이볜 전 총통 의료진의 일원이기도 한 코원저는 그의 건강상 이유를 들어 교도소가 아닌 자택치료 선처를 주장하는 등 야권의 지지표를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후보 결정 방안에 대해 민진당 내부의 반발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경선 후보로 나섰던 뤼슈롄(呂秀蓮) 전 부총통이 엊그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사퇴를 선언한 것이 그런 때문입니다. 당 지도부가 코원저에 대해 특별 배려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없지 않겠지요. 이밖에 타이난(臺南) 시장을 지낸 쉬티엔차이(許添財) 입법위원과 인권변호사인 구리슝(顧立雄) 등이 당내 후보로 뛰고 있는 중입니다.

롄성원과 코원저 두 사람 사이의 유별난 인연도 얘깃거리입니다. 4년 전의 지방선거에서 롄성원이 국민당의 타이베이 시의원 후보 지원연설을 하던 도중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당해 총탄이 얼굴을 관통하는 치명상을 입었는데, 그때 손상된 얼굴뼈 치료를 위해 집도한 의사가 바로 코원저였습니다. 이번에 환자와 주치의가 아닌 선거판의 라이벌로 대결이 이뤄진다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미리부터 궁금해집니다.

선거 공약을 둘러싼 여야의 정책 공방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청년 실업자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 그리고 치솟는 주택가격에 대한 해결방안이 중점적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특히 야당 후보들은 지금의 하오룽빈(郝龍斌) 시장은 물론 전임자인 마잉지우 총통까지 들먹이며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공세를 펴는 중입니다. 국민당 정권이 지난 16년 동안 타이베이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지역적인 균형발전 방안도 후보들이 제시한 공약 사항의 우선순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낙후된 타이베이 서부 지역을 고르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여야가 모두 공감을 표명하는 입장입니다. 쑹산(松山) 공항이 위치한 지역에 대한 얘기입니다. 특히 야권에서는 공항으로 인해 지역 일대가 고도제한에 걸려 있다는 점을 들어 공항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시민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됩니다.

최근 연달아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도 변수로 떠오를 조짐입니다. 중국과의 서비스협정 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은 대학생들의 ‘해바라기(太陽花) 시위’와 현재 신베이(新北)에 건설되고 있는 제4원전 반대 시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로 인해 마잉지우 총통의 레임덕 현상까지 나타나는 등 부분적으로 야당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상황이지요. 그 영향이 전통적으로 여권 강세 지역인 타이베이 선거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두고 볼 만합니다.

한편, 국민당 후보로 결정된 롄성원은 이웃인 한국과 일본의 지방행정 제도 시찰을 위해 이달 말께 서울과 도쿄를 차례로 방문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한국의 경우 세월호 침몰사고로 전국이 애도 분위기라는 점에서 방문 일정을 다시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세월호 사태가 바다 건너 대만의 타이베이 시장선거에도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입니다.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저서로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한국과 대만, 잠시 멀어진 이웃'(e-book)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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