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태평양전쟁이 백인 식민주의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 사관(史觀)에 동조하는 영국 언론인이, 그의 친구인 일본 극우단체 지도자들로부터 배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동경 출판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런던타임스 동경지국장 때 광주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여 ‘광주 대학살’이란 책을 출판하기도 한 헨리 S. 스토크스 씨는, 작년 12월에 일본 친구가 낸 책에서 자기 발언이 왜곡 또는 허위로 전달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킨슨’ 병 초기 증세로 직접 글을 쓸 수 없는 스토크스 씨는 170시간 분량의 녹음된 자기 원고를 ‘사실(史實)을 세계로 발신하는 회’ 간부인 친구 후지타 히로유키(藤田裕行)에게 번역을 부탁해 ‘영국인 기자가 본 연합국 전승사관(戰勝史觀)의 허망(虛妄)’이란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일본 극우 보수 세력의 환영 속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1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우익 행동파인 후지타를 통한 그의 출판 계획의 위험성을 은근히 걱정하는 동료들도 있었다고 영국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인한 스토크스 씨의 문제는 자기 발언의 원문 출판을 위해 원고 정리를 해 온 일본인 여성의 공개적인 도중 사퇴 소동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스토크스와 후지타 두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스토크스 씨 발언 내용과 후지타 씨가 번역해 출판한 책에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도의적으로 더 이상 영문 원고 정리 작업을 도와줄 수 없다고 통고한 것입니다. 일본의 교도(共同)통신은 5월 8일 기사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경위를 스토크스 씨와의 인터뷰를 곁들여 공표하였습니다.

스토크스 씨는 후지타 씨의 책에서 특히 1937년의 ‘난징(南京)대학살’ 사건을 죽국의 조작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일본인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문제 외에도, 이 책은 스토크스 씨를 부정확하게 인용하거나 ‘유도질문’으로 억지로 발언시킨 듯한 흔적이 있어 ‘도의적 이유’로 원고 정리 작업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안젤라 구보(Angela Kubo)’ 여사가 밝혔습니다.

영국 언론인으로 뉴욕타임스 동경지국장도 역임한 75세의 스토크스 씨는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50년이나 일본에 살고 있지만, 민족적으로 한국이 싫어 일본의 혐한(嫌韓) 행동가들을 돕고 있다기보다,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일본 전통 보수진영의 운동을 지지하게 된 것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500년 서구 백인 식민주의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한 ‘성전(聖戰)’이라 부른 과거의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강연을 많이 했습니다. 2년 전 인도와 일본 국교 60년 기념행사에서, 그는 ‘일본은 아시아의 희망의 불빛(Japan as the Light of Hope for Asia)'이라고 칭찬한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의 독립투사로 이름을 날린 찬드라 보스(Chandra Bose) 씨의 예를 든 연설을 하였습니다. , 이 연설은 후지타의 ’사실을 세계에 발신하는 회‘ 등 우익 모임에서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토크스의 그릇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이런 연설은, 조선의 합병이나 1932년에 일본의 괴뢰정부로 만든 소위 만주국(滿洲國)의 탄생, 중화민국의 장제스(蔣介石) 주석에 대항하여 왕자오밍(汪兆銘)을 일본군 점령지역의 괴뢰 주석으로 임명한 일본군의 모략적 조치 등을, 의도적으로 묵과한 강변에 불과합니다.

‘대동아공영권’ 구축을 목표로 한 태평양전쟁으로 기세가 등등한 일본은 1943년 5월에 소위 ‘대동아회의(大東亞會議)’를 열어 아시아 여러 나라의 수뇌를 도쿄로 불러 아시아 최초의 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만주, 중국의 두 꼭두각시 정권 외에 필리핀, 인도네시아, 타이, 버마(지금의 미얀마) 등 국가의 수뇌가 초청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옵서버로 참석한 사람이 인도의 찬드라 보스 '인도국민군(INA)‘ 대표로, 그의 유명한 ’아시아 희망의 불빛‘ 발언이 이 회의에서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개전 후 곧 함락한 영국의 아시아 군사기지였던 싱가포르를 ’쇼난(昭南)‘ 특별시로 명명하고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해방한 전승비를 자카르타에 건립한 일본군부의 야욕을 의식적으로 외면한 것이 스토크스의 깊이 없는 태평양전쟁 사관입니다.

일본의 전통문화에 심취하여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사회에 문화적으로 큰 업적을 남겨 정부와 국민의 존경을 받은 그리스 태생 영국인 라프카디오 한(고이즈미 야쿠모: 小泉八雲)이나 도널드 킨(Donald Keene) 같은 미국인 학자도 있습니다.

스토크스보다 두 살 위로 역시 일본 여성과 결혼하여 평생을 외신 기자로 활약하다 작년에 도쿄에서 사망한 전 LA타임스 지국장 샘 제임슨(Sam Jameson) 같은 언론인은, 평소 한국의 큰 사건 취재도 하여 많은 친지도 만들었습니다. 그에 반해, 선의를 배반하는 등 일본 우경 보수 세력에 농락당한 스토크스 기자가 더 이상 봉변을 당하지 않도록 우정 어린 위안의 말을 보내고 싶습니다.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TIME 서울지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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