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박물관, 8.24-11.11 '메이드 인 청계천: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무료전시
- 60-80년대 라디오DJ앨범, 금지곡 ‘동백아가씨’, 서구 팝송 등 복제 LP ‘빽판’ 한눈에
- 당시 유행한 빨간 잡지 전시, 추억의 오락실 게임 ‘너구리’, ‘갤러그’도 체험

[서울=내외뉴스통신] 강원순 기자= 음반수입이 전무했던 1960년대 세운상가에 가면 라디오 DJ 이름으로 만들어진 앨범부터 정부가 방송을 금지했던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일본판 버전, 서구의 팝송까지 LP로 구할 수 있었다. 불법 복제된 일명 ‘빽판’이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였다.

플레이보이, 허슬러, 각종 복제된 빨간 비디오나 만화도 세운상가에 가면 은밀하게 거래되곤 했다. 일본 비디오게임과 오락실용 게임 카피판도 세운상가에선 원판의 1/4 값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서울역사박물관 분관 청계천박물관(관장 사종민)은 이처럼 1960-8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추억의 빽판, 빨간책, 전자오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기획전 '메이드 인 청계천 :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4일 부터 11월11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메이드 인 청계천'은 청계천박물관이 청계천에서 만들어진 유·무형의 자산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기획한 시리즈 전시다.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는 첫 번째 전시다.

전시회에선 라디오 전성시대였던 1960년대에 유명 DJ들이 이름을 걸고 음악방송에서 나온 음반을 편집해 만든 ‘라디오방송 빽판’을 볼 수 있다. 빨간 비디오가 유통됐던 세운상가를 상징적으로 연출한 ‘빨간 방’을 통해 세운상가 인근에서 유통했던 잡지들도 전시했다. 추억의 오락실 게임인 너구리와 갤러그도 체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청계박물관은 “한 때 세운상가 주변을 찾는 다는 것은 대중문화를 찾는 것이란 의미가 있었다”며 “전시회를 통해 대중문화의 언더그라운드 청계천이 서울에서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시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청계천 3,4가는 해방 직전, 공습 시 화재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소개공지, 즉 ‘아무 것도 없는 빈 터’로 만들어졌다. 해방 이후 자연스럽게 이곳에 월남민이나 무작정 상경한 무거주자들이 자리를 잡게 되어 일종의 ‘빈민굴’이 형성됐다.

이곳은 김현옥 서울 시장 재임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도심 미화’ 사업이라는 명분하에 청계천 일대에 대대적인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세운상가’가 들어선다.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대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1970년대 중반까지 번영을 누렸으나, 강남 개발과 현대적인 백화점의 등장, 용산전자상가의 급부상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60년대는 4.19 의거(4.19 혁명), 5.16 군사정변, 그리고 한일국교 정상화가 연이어 전개되던 시점이다. 시민과 학생들은 끊임없이 저항하였고 국가는 탄압을 반복했다. 정치적 불안은 1980년대 군사정부까지 이어졌다.

경제적으로는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성과로 나타났다. 경제발전 5개년계획 등으로 누구도 낙관하지 않았던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했으나 사회는 그에 따른 극심한 빈부격차, 수도권 인구 집중, 전통적인 공동체 붕괴 등 부작용도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빽판은 특히 LP판을 한정하는 말로 은밀히 뒤에서 제작돼 Back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복제판을 흰색종이로 포장해 백白색 포장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해적판은 1950년대부터 만들어 졌으며 80년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해적판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복제돼 판매·유통되는 음반이나 서적, 테이프, 소프트웨어 등을 말한다.
 
1960년대는 라디오의 시대였다. 라디오를 통해 흐르는 음악은 곧 유행이 됐고, 문화방송(MBC 1961), 동아방송(DBS 1963), 라디오서울(RSB 1964, 후에 동양라디오 TBC로 변경) 등 민간 상업 라디오 방송사가 잇달아 설립됐다.

1960년대는 음반의 수입이 전무 했던 시대로,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외국가수 음반은 모두 빽판이었다. 라디오 방송사는 음악프로그램 청취율 경쟁에 돌입했고, 오락 매체로서 라디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세대 음악방송 DJ 최동욱과 이종환의 탑툰쑈, 탑툰왕 시리즈 앨범을 선보였다. 모두 빽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8군이나 중고음반(유통 업자) 등을 통해 입수한 원판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선곡해 제작한 편집음반들이 해적판 시장의 최대 히트 상품으로 각광받았다. 

1970년대 들어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라디오와 TV가 보급되며 한국대중음악의 번영기를 구가한다. 저렴한 가격과 심의 및 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적판이 성행했다. 해적판을 통해 서구의 음악을 향유한 청소년들이 음악인으로 성장해갔다.

1980년대는 카세트테이프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로 제작된 해적판들이 전국적으로 범람한 시기이다. 길거리의 해적판 판매원들이 가요를 선곡하여 판매하는 길보드가 탄생하고 해적판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법적 처벌이 강화되어 해적판 생산이 위축됐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이었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금지곡이 됐다. 이 노래는 1966년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서 싱글로 발매됐다.     

1965년 방송 금지곡이 됐다. 표면상으로는 왜색풍이 원인이었으나 그 배경에는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불거진 국민적 저항을 차단하고자 했던 정치적 원인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자의 일본어 동백아가씨가 수록된 빽판 ‘리듬파레이드25집’을 선보인다. 재킷의 뒷면에는 ‘이미자 히바리고도마도리 유행가집’이라는 조악한 등사지의 가사집도 붙어있다.

세운상가 주변은 누군가에게는 볼 빨간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다. 플레이 보이, 허슬러, 각종 복제된 비디오와 빨간 만화들이 은밀하게 거래된 곳이다. 특히 어린 시절 치기어린 호기심에 큰 맘 먹고 구입한 비디오에서 전국노래 자랑이 엉뚱하게 튀어나와 당황했던 그 시절로 돌아 가본다.

전시에 등장하는 ‘빨간 방’은 당시 세운상가의 음란물 유통과 소비 과정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기획, 제작되었다. 음란물을 주로 취급했던 가게들은 셔터를 완전히 닫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상품’을 은밀히 암시했고, 그 ‘사인’을 아는 사람들은 신세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빨간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하고, 집에 와 몰래 시청하기 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구입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낯선 아저씨의 ‘뭐 좋은 거 보여줄까’라는 은밀한 호객과,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오시기전까지의 긴박한 순간을 모두 무너트리는 송해 아저씨의 ‘전국~ 노래자랑~’은 빨강 방을 관통하며 명랑하게 울려 퍼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직 ‘대중’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성숙하지 못하였다. 자생석인 대중문화가 이미 분명한 실체로써 자리 잡고 있었으나, 그것을 학계나 언론에서 ‘문화’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만큼 관점이 정립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70~80년대 들어 급변하는 사회환경으로 인해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당시 군사정권은 이를 강력하게 탄압했다. 대중문화의 성장은 ‘민주주의의 성장’과 맞물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사정권의 대중문화 억압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범위하고 집요하며 체계적이었다.

1970년대 성장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들이다. 초헌법적인 이 조치로 인해 노동운동, 학생운동은 직격탄을 맞았고 특히 ‘긴급조치 제9호’는 대중문화에 치명상을 입혔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건전한 문화예술활동을 계속지원하고 사회기강을 해치고 국민정신을 좀먹는 저속하고 퇴폐적인 일부 대중예술을 과감히 정화하여, 건전한 국민정신과 사회기풍을 진작한다’고 선전했다.

긴급조치 제9호가 시행되면서 ‘무더기’로 금지곡이 양산됐다. 풍기문란의 단속 명분은 대중문화를 위축시켰지만 거꾸로 더 음성적인 시장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금지음반은 빽판으로 제작됐고 불량도서는 청계천에서 더 은밀히 거래됐다.

세운상가만 단속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운상가 일대는 음란물의 유통에 있어 중추적인 공간이었다. 단속은 1950·60년대 미성년자보호법, 외국 간행물수입배포와 같은 불량서적 단속에서 시작됐다.

세운상가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청년들이 다가와 ‘비디오를 보고 가라’며 손을 잡아끄는 곳이었다.” 그리고 “헌책을 구매하러 들어온 중학생들에게도 도색잡지를 보여주는 몰지각한 어른들이 있는 세상”이기도 했다.

일본의 비디오게임이나 오락실용 기판을 카피해 수출하며, 국내 전자시장의한 한 축을 담당했었던 곳 역시 세운상가였다. 보통 게임을 카피하여 원판의 1/4도 안 되는 싼 값에 공급했다. 1990년대까지도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에 별다른 단속도 없었다. 오락실에서 이용했던 대부분의 아케이드 게임 기판은 세운상가에서 만든 복제 기판들이었다.

일본 세이부社에서 제작, 1982년 시그마社에서 발매한 ‘너구리’의 원제는 ‘PONPOKO’로 너구리가 배를 두드리는 의성어의 일본어다. 특히 ‘너구리’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높았다. 전시장에 연출된 오락실에서 너구리, 갤러그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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