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北美)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있기 직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즈음 북한은 비핵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한미(韓美)당국에 전했고 이를 ‘선의’로 받아들인 한미 양국은 북한에 더없이 좋은 ‘화려한 정상외교’의 선물을 기꺼이 제공했다. 

이로써, 북한의 비핵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고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 위협이 사라지게 되어 완전한 평화가 곧 정착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이 있은 지 4개월,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는 벌써 2개월이 훨씬 지났지만 ‘현란했던 정상회담’ 이전의 북한 비핵화 문제는 전혀 진전된 것이 없다. 

변화된 것이 있다면 최대 관심 사안이었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6.25 전쟁의 ‘종전선언’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부각된 것이 전부다. 북한은 대내외 언론매체를 동원하여 ‘종전선언’ 없이는 비핵화에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연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의 전제조건이나 선행조건이 될 수는 없다. 6.25 정전협정 목적에 충실할 경우 종전선언이 불필요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백 보 양보하여, 북한의 주장대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북한의 핵 관련 시설 재가동이나 미사일 발사장 해체작업 중단 말고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행태로부터 ‘행동 대 행동’ 원칙에서 벗어나 종전선언을 ‘先 수용하여 채택’하거나 다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될 ‘당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은 지난달 초 도(道) 단위 노동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강연에서 북미(北美)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핵 폐기’가 아니라 ‘핵 동결’이며 ‘핵이 없으면 죽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록 내부용 강연이라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아직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둘째, 최근 노동신문의 사설과 논평은 주민들에 대해 “집중포화, 연속포화, 명중포화를 들이대는 사상전”(思想戰)을 강도 높게 전개할 것을 지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적대세력들의 제재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어떤 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핵을 보유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셋째, 북한은 ‘세계적인 전략 국가’의 위치에 올라 있으며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언명을 매일 쏟아내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세계적인 전략 국가’는 ‘핵을 보유한 북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 경제 강국을 이룩하여 세계적인 ‘강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선대(先代) 유훈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반복 강조하고 있는 ‘세계적인 전략 국가 위치와 역할’ 주장을 단순한 ‘내부 정치적 구호’로 해석하여 가볍게 볼일은 아니다.

또 한 북한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계획’ 목표달성을 독려하고 조선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 노선’을 강조할 때마다 ‘전략 국가를 이룩한 바탕 위에서’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핵을 보유한 경제 강국 건설’이 현 북한체제의 당면 목표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북한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비핵화 이행방안이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먼저 하게 된다면, 북한은 유엔사령부와 한미연합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비핵화 전제조건’으로 ‘새롭게’ 제시할 것이며, 이를 놓고 지루한 소모적 논쟁과 외부 선전, 자의적 해석과 일방적 요구로 시간을 끌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없었던 일’로 치부해나갈 것이라는 대북전문가들의 고언을 깊이 있게 참작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을 먼저 해주고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할 때는 종전선언을 파기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고 있으나, ‘선(先) 종전선언’에 따른 한국과 미국 그리고 한미동맹이 입게 될 ‘사활적 이익’의 침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 동맹균열과 동맹 관리비용 증가, 정책 실패 후유증, 남남갈등 고조 등은 쉽게 예상되는 부작용들이다. 

북한이 중국을 등에 업고 종전선언에 목을 매고 있는 전략적 의도와 술책을 주도면밀하게 따져 보고 기존에 합의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차분하게 대응해도 늦지 않다. 소용돌이치는 한반도 정세에서 남북관계 현안의 경중과 선후, 시급성 유무를 판단하는 ‘절대 기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병순 안보통일연구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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