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5·19 대국민 담화는 이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생각할 수 있는 개혁의 최대치를 담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해경 해체, 안행부와 해수부 대개편, 공무원 채용과 보직 근무제 개혁, 국가안전처 신설 등은 해당 공무원들에게 충격적일 테지만 일반인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특히 퇴직공직자 취업 제한제도를 강화키로 한 것은 각종 비리와 담합의 온상이 되는 끼리끼리문화와 민관유착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큽니다.

대통령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미증유의 국난을 맞아 국민들을 위무하고, 저마다 본연의 임무를 다하도록 앞장서서 이끌어가야 할 무한책임이 있습니다. 책임 수행을 위해서는 필요하고 가능한 조치를 당연히 총동원해야 합니다.

원래 5년 임기의 대통령에게는 집권 2년차가 아주 중요합니다. 첫해는 예산 운용이나 인력 운영 등에서 전 정부가 수립한 것을 그대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듬해부터 비로소 새 정부의 새 대통령이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할 수 있고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차인 올해 세월호라는 불의의 암초를 만나 좌초한 형국입니다. 그 배를 버리고 새로 건조하는 배로 안전 항해와 목적지 도착이 가능하게 할 수 있느냐가 관심사입니다. 요즘 ‘국가 개조’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지만 박 대통령 자신의 언급대로 이런 상황에서도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영원히 개혁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5·19담화에서 중요한 논점은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국회입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각종 개혁과 제도 변경은 모두 법을 고쳐야만 가능합니다. 국회가 동의하지 않거나 고질적인 정략과 나태로 인해 법 제정이나 개정이 늦어질 경우 개혁은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국회가 그동안 보여온 행태나 정부·여당과 야당의 관계로 미루어 법을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것이 그리 수월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쨌든 국회가 달라져야 합니다.

두 번째 논점은 박근혜 정부의 솔선수범입니다. 아무리 개혁을 부르짖고 국가 개조를 외쳐도 정부의 인사행정과 인물 기용이 투명하지 않거나 스스로 비리의 빌미를 제공하는 사례가 근절되지 않으면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대통령과 정권의 편의나 사익 추구를 지양하고 문자 그대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 정직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내 사람’만 챙기는 일부터 없애야 합니다.

세 번째 논점은 소통입니다. 그동안의 사과와 조문에서 별로 호평을 받지 못한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학생, 교사, 승무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는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에게 위기이지만 거꾸로 말하면 좋은 뜻에서 소통을 위한 ‘골든 타임’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대화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제도 박 대통령은 담화문만 읽고 퇴장했습니다. 국민들은 궁금한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 인선과 개각에 관한 것, 지금까지 원만하지 못했던 국회와의 관계 개선 문제, 점점 커지는 KBS 방송장악 의혹사건, 여전히 현안인 국정원의 대선 개입, 간첩 조작공방 등에 대해서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설명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내각 전반의 문제와 개각에 대해서는 당연히 담화문에 언급했어야 할 텐데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혹시 기자들과의 문답이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를 뒷전으로 밀어내거나 번민과 고뇌 끝의 결단을 희석시킬까 봐 삼간 것이라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오후에는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되는 ‘바라카 원전 1호기 원자로 설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습니다.

당연히 가야 할 일이어서 간 것이겠지만 이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미세하게 국면이 달라집니다. 담화문 낭독과 출국의 함수관계를 따지면서 출국이 꼭 필요했느냐고 시비하는 논란이 당장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둑을 빌려 말하면 그때그때 꼭 놓아야 할 수를 빠뜨릴 경우 상황을 주도하기 어려워지고 국면이 불리해져 승패를 가늠할 수 없게 됩니다. 왜 문답을 기피하고 대화를 꺼리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담화문에서 언급한 개혁방안에 대해서는 반발과 방해, 지연공작이 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여야 가릴 것 없이 만나서 성심성의껏 설득하고 국민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개혁에 명운을 걸겠다는 약속을 잊지 말고 본인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사생결단하듯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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