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 벨트 사인에 불이 켜지고 기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7월 18일 겨울 날씨의 시드니 현재 기온은 섭씨 8도, 하늘은 맑고 쾌청하며 습도는…”

기장의 아나운스먼트가 계속되는 동안 앞으로 나와 가족들이 살아갈 낯선 땅 호주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동그란 비행기 창을 통해 그림 같은 시드니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떠나온 내 나라와는 다른 하늘 아래가 펼쳐져 있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나의 호주 이민 생활이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창문을 쪼아대는 새소리에 잠이 깨고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 향기에 혼곤히 취하는 나라,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초록 잔디밭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며,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는 잔디밭 한편에는 가방을 베개 삼아 소르르 잠이 든 젊은이의 초상이 삽화처럼 평화로운 곳…..................................

수면 위를 매끄럽게 헤엄치는 오리의 여유도 실은 안간힘을 다하는 물밑의 갈퀴를 감추고 있듯이, 겉으로는 제법 이 땅에 적응이 된 듯하지만 배내 정서의 이물감으로 까무룩한 내 나라 품속을 마냥 서성대는 꿈을 꾸는 세월이기도 했다…

저의 호주 이민 이야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을 요즘 이따금 떠들어 봅니다. 1992년에 시작된 호주살이가 살갑고도 정겹게, 낯설고도 서럽게 조각조각 어우러져, 잇대어 꿰맨 조각보처럼 펼쳐집니다.

곳간에 쌓아 올린 재물이 부자의 자랑이자 힘이듯이 오랜 습관이 된 일상의 기록은 제게 내면의 ‘뒷심’이자 마음이 스산할 때 스스로 비벼대는 언덕입니다.

페미니스트 작가 앨리슨 루리(Alison Lurie)가 “나는 연필과 종이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 말이, 가진 거라곤 ‘노트북 한 대와 혼자 있는 시간’ 밖에 없는 제게 위무가 됩니다.

제 글이 무슨 ‘세상씩이나’ 바꾸겠습니까만, 외돌토리로 21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온 저를 토닥이며 보듬기는 하니까요.

2000년에 낸 첫 책에는 이민 첫날, 첫 새벽을 맞는 기내에서의 감회와, 밤새 보채던 8개월 된 큰아이를 둘러 업고 양 손엔 이민 보따리를 그러쥔 채 시드니 공항에 내리던 날의 기억서껀 호주 땅 이방인의 소회가 담겨 있습니다.

‘말이 좋아’ 21년이고, ‘말이 통해’ 21년이지 한국을 떠나 있던 21년이란 과거가, 한달음에 현재와 조우하기란 ‘말과 같이’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제가 얻은 별명이 ‘조선족’이겠습니까.

흔히 해외 이민자들은 고국을 떠난 시점에서 가치관과 정서 상태가 고정된다고 하듯이 저 또한 90년대 초반의 한국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대서 얻은 별명입니다.

그도 '충격적'인데 더러는 “요즘은 조선족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사족을 달아 ‘확인 사살’에 들어가는 분들도 계시니 그런 말까지 들으면 그 자리에서 ‘꽈당’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국은 1년에 한 번씩 와도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는 판에 무려 21년이란 세월 속에 변해도 너무 변했으니, 90년대 한국 사고 방식에 고착된 채 변하지 못한 내 쪽에서 ‘조선족이란 말을 들어 싸다’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 더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이미 받은 상처를 덧내지 않기 위해 자기 상처를 핥는 짐승처럼 혼자 웅크린 채 내 책, 내 글하고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자폐성 나르시시스트’가 된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르시시즘,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을 서문부터 읽어나가는데, 마치 ‘지옥’ 문 앞에 선 듯 아득하고 어처구니 없는 문장에 가슴이 ‘쿵’ 내려앉고 팔에 ‘오소소’ 잔소름이 돋습니다.

“사고와 비리가 끊이지 않는 불안한 한국을 떠나고자 이민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최근 많아졌다고 한다. 이민이 능사는 아니지만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내 나라를 등질 결심을 한다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1년 단위로 변하는 한국, 아니 1년에 두 번 와도 휘황한 변화에 주눅이 드는 내 나라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변한 것이 하필 ‘사고와 비리’라니…

몰래 한 나쁜 짓이 들켰을 때처럼 수치스럽고 허방을 디딘 것처럼 허망하여 자위 삼아 시작한 내 책 읽기가 이 대목에서 딱 걸려 더는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찬란하고 황홀한 물질 세례와, 사치와 현란과 은성한 불빛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조국에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은 왜 정착되지 않는지, 아니 오히려 더 후퇴하고 있는 현실에서 도대체 누구를 붙잡고 따져 물어야 할지 참으로 갑갑하고 답답합니다.

일껏 적응해서 살아 보자고 와 놓곤 이렇게 망연자실하게 되니, 기왕 호주 시민인데 치사하고 구차하나마 목숨이라도 보전하려면 ‘심심한 천국’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까지 올라와 더 심란한 요즘입니다.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www.bistromeme.com)를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 학교, 중앙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공저<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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