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이나 사하라 사막 북쪽 국가, 호주의 ‘로드 킬(Road kill)’ 경고판에는 낙타가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주로 노루·고라니 그림이다. 중동에 여행 가면 인기 있는 기념품이 바로 낙타 비누다. 낙타유와 낙타고기 또한 중동에서 맛볼 수 있는 희귀한 음식이다. 현지에서 낙타고기를 사 먹으려면 1인분에 10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낙타 타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체험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세계를 휩쓸었다. 4살 미만의 어린 낙타가 메르스를 인간에게 옮기는 주범이었다. 감염된 낙타의 침 등이 주 루트인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 연구진은 낙타와의 키스 또는 생 낙타유 섭취, 그리고 낙타의 콧구멍을 만지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밝혔다.

당시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예방 수칙으로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나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를 먹지 마라’ ‘낙타와의 접촉을 피해라’고 발표했다.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에도 두 대목이 예방 수칙으로 올랐다.

그러자 국민 반응이 들끓었다. 낙타고기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대다수 국민은 황당해 했다. 인터넷과 SNS에 야유가 넘쳤다. ‘님아, 그 낙타를 타지 마오’(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메르스와의 전쟁: 나쁜 낙타 전성시대’(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돈 크라이 낙타’(돈 크라이 마마) ‘커피는 역시 낙타유로 만든 낙타 라떼’ 등 현실성 없는 보건 당국의 예방 수칙을 비꼬았다.

■ 동물원 낙타 통해서도 메르스 감염?

메르스 사태 초기 전국 동물원에 살던 약 30여 마리 낙타들도 수난 당했다. 이들은 중동산이 아닌데도 졸지에 ‘사악한 동물’로 취급받았다. 서울대공원, 용인 에버랜드, 광주 우치공원 등 모든 낙타에게 접촉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대부분 낙타 고향이 한국이었다. 중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낙타였다. 나중에 낙타들은 감염 여부 검사를 받고, 그제서야 격리에서 풀려났다.

평생 한 번도 먹기 힘들다는 낙타고기를 2번이나 먹은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3월 중동 4개국 순방 때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등 2개국에서 낙타고기를 2번 대접받았다. 당시 청와대는 “중동에서 손님에게 낙타고기를 주는 것은 전 재산을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중동 측이 최고의 환대 의지를 표현했다”라고 발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두 번째 가서야 겨우 얻어먹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 방문인데도 두 번이나 대접받았다는 뉘앙스였다. 중동에선 낙타 고기를 차리는 게 우리가 소 잡는 것만큼 극진한 대접이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3월 원전 기공식에 참석차 아랍에미리트(UAE) 2번째 방문에서야 낙타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양고기를 대접받았는데, 이번에는 낙타고기를 대접받았다”라고 자축했다.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메르스 검사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MB는 2011년 8월 몽골 방문 때는 낙타를 타보며 몹시 즐거워했다. 올해 9월, 국내에서 3년 만에 메르스가 재발했다. 지금 두 전직 대통령은 장기간 일반인과 격리 수용(?) 되어 있다. 물론 낙타와 메르스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 세계 역사를 바꾼 동물 낙타

낙타는 원래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다. 남아메리카로 내려가서는 라마, 과나코, 비쿠냐 등으로 갈라져 진화했다. 정작 북미에서는 멸종되었지만, 1만 년 전 빙하기 동안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유라시아로 건너왔다.

육지가 된 베링해를 북방 사람들이 건너간 것과 정반대였다. 이때 고래의 길을 따라 한민족의 선조들이 아메리카에 발을 디뎠다. 동시에 늑대와 표범, 스라소니가 북미로 건너갔다. 각각 회색늑대와 재규어, 퓨마로 진화했다.

낙타는 두 종류다. 등 위에 혹이 하나인 단봉낙타는 중동과 사하라사막 같은 북아프리카에 널리 퍼져 산다.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는 몽골 고비사막이나 중앙아시아에 산다. 오스트레일리아에도 단봉낙타 70만 마리가 있다. 가축으로 들여왔다가 야생화된 개체들이다.

낙타가 가축화된 시기는 말보다 늦은 대략 서기전 3000년경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생긴 것은 크고 사납게 보이지만 실제 성격은 온순한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낙타를 길들여 짐 운반용으로도 쓰고 그 고기와 털, 가죽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명도 40~50년으로 길어, 오래 활용할 수도 있었다.

낙타는 환경 적응이 얼마나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우선 낙타는 발목 높이가 어느 동물보다도 높다. 다리 길이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하이힐’을 신은 것처럼 낙타 발목의 위치가 높이 있는 것은 사막의 강한 복사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혹에 저장된 지방분을 태워 물이나 먹이를 오랜 기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데다 눈썹과 귀 털이 모래를 막을 수 있어 유용했다. 콧구멍도 닫을 수 있고, 발은 작은 방석처럼 넓고 푹신해 모래밭을 걷기에 그만이었다. 또 힘도 세서 300~400kg 정도의 짐을 거뜬히 나를 수 있다.


■ 낙타를 대체한 유라시아 익스프레스 철도

길은 단순히 물건과 사람이 오가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교류하는 장이다. 실크로드는 동서가 만나고 교류하던 길목이었고, 동방과 유럽을 연결하며 수천 년간 교역로로 이용되어 온 길이다. 실크로드의 낙타는 길에서 길을 잇는 역사와 문화, 소통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흔히 낙타를 ‘사막의 배’에 비유한다. 낙타 1마리는 300킬로그램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서 머나먼 사막을 가로질러야 했다.

9세기 중반 아라비아와 송나라, 청해진을 잇는 장보고 무역선은 200톤 규모였다. 200마리 분량의 낙타 등짐과 100명의 선원을 한꺼번에 실어 나를 수가 있었다. 번성했던 실크로드는 바닷길이라는 새로운 무역 채널이 열리면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낙타는 세계 역사를 바꾼 동물 중 하나로 꼽힌다.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의 문물을 수도 없이 전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실크로드 시대의 말과 낙타는 철도가 대체하고 있다. 유라시아 익스프레스 철도는 철마(鐵馬)이기도 하다.

■ 낙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월 말이면 월급 타서 밧줄을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7080 가수 이연실의 노래 <목로주점>에는 낙타가 등장한다. ‘목로’는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해 널빤지로 만든 좁고 기다란 상을 말한다. 일본 ‘이자카야(居酒屋いざかや)’ 술집 형태다. 이 노래는 전두환 정권 초 1981년에 나왔다. 암울했던 시대 낙타는 탈출 수단으로 비유됐다. 느릿느릿 걷는 낙타가 적금 타서 떠나는 여행의 길 동무로 제격인 동물이란 뜻일까. 낙타 1마리는 보통 1000~3000만 원에 달한다. 제법 비싸지만, 차 한 대 사는 셈 치고 몇 년 부은 적금을 깨면 능히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박노해 시인은 말과 낙타를 시에서 비교하기도 했다. “빨리 가려면 말을 타고 달려라. 멀리 가려면 낙타를 타고 걸어라. 말을 탄 사람은 점점 속도가 떨어지지만, 낙타를 탄 사람은 목적지까지 줄기차게 걸어간다. 말을 탄 사람은 속도를 경쟁하며 긴장 속에 서로 싸우면 달려가지만, 낙타를 탄 사람은 물과 대추야자를 함께 나눠 먹으며 웃으며 걸어간다”라고.

그러나 낙타는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다. 대개 말의 속도는 시속 45km 정도인데, 낙타는 40km 내외로 1시간가량 달릴 수 있다. 중동에서 인기 있는 낙타 경주대회에서는 시속 65km까지 나온다.

‘낙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는 아주 굉장히 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는 마태복음 구절이 있다. 이는 애당초 성경 번역자가 ‘밧줄(Gamta)’을 ‘낙타(Gamla)’로 착각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즉 원래 뜻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밧줄이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라는 것.

낙타는 화가 나면, 엄청난 양의 침을 뱉는다. ‘지렁이도 꿈틀하는 것’처럼 낙타도 침을 뱉는다는 이야기다. 위액이 섞인 침 냄새는 지독하다고 소문났다. 때로는 메르스의 감염 경로가 되기도 한다. 순하디 순한 낙타에게 바늘구멍을 들어가도록 강요한 사람들에게 낙타는 아마 침을 뱉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구약성경 잠언 30장에 나오는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는 말씀대로 살아가고 싶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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