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전쟁이 터졌다고 하자. 아수라장 혼란 속에서 과연 누가 동물을 챙길 것인가? 전쟁이 나면, 사람뿐만 아니라 숱한 동물들이 희생된다. 전쟁의 비극은 동물에게도 고역이고 고통이다. 대부분 동물은 전쟁에 방치된다.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1,2차 세계대전 때부터 지금까지 전쟁 중에는 동물의 잔혹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시리아는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까지 약 30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희생됐다. 5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나라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와중에 동물들을 신경 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동물들은 피난도 못 간다. 쇠창살 우리에 갇혀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딱히 갈 곳도 없다. 방치된 건 동물원의 동물만이 아니다. 현재 시리아의 길거리엔 주인 없는 유기 동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라크 제2 도시인 모술은 2014년부터 3년간 IS에 점령됐다가, 이라크군을 비롯한 국제연합군이 2017년 10월 IS를 격퇴했다. 오랜 전투로 도시에 살던 약 1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술 동물원 동물 대부분은 굶거나 포탄에 맞아 죽었다. 굶주린 동물끼리 서로 잡아먹기까지 했다.

한 모술 주민이 동물구호단체에 동물원의 참상을 알린 덕분에 암컷 곰과 수사자 한 마리, 이렇게 두 마리만 생명을 건졌다. 리비아 트리폴리 동물원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하기까지 잦은 전쟁으로 고통받았다.

■ 서울 창경원 동물 잔혹사

우리나라 동물원도 두 차례 큰 수난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일제에 의해 창경원이 동물원이 창경궁으로 둔갑했던 시절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을 앞두고, 창경원에서 사육하던 동물이 골칫거리였다. 당시 일본은 도쿄 우에노 동물원을 비롯해 고베, 오사카 등과 타이완과 만주 등에 여러 개의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 20일 전인 1945년 7월 25일, 패전의 기운이 일본에 짙게 드리웠다. 당시 창경원 회계과장이던 일본인 사토는 전 직원을 불러 모아놓고 “사람을 해칠 만한 동물을 모두 죽여야 한다”라고 은밀한 지령을 전달한다. 그는 “미군이 폭격할 경우 동물들이 우리를 뛰쳐나와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라며 “도쿄로부터 명령이 내려졌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육사들에겐 “동물들의 먹이에 몰래 넣어 두라”며 독약을 나눠 줬다. 한국 표범을 비롯해 사자와 호랑이·코끼리·악어 등 21종 38마리가 그렇게 독살됐다. 그날 밤, 고통에 찬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밤새 창경원 일대에 메아리쳤다.

독사들은 칼로 난도질을 해 죽였다. 독이 들어간 먹이를 먹은 후 괴로워 나뒹구는 사자를 차마 볼 수 없어 창으로 심장을 찔러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독이 든 사료를 먹지 않으려 했던 코끼리는 아사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굶주린 코끼리는, 재주를 부리면 먹이를 줄까 싶어 사육사가 지나갈 때마다 쇠약해진 몸으로 간신히 재주를 부려대어, 보는 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 6.25 전쟁, 모두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동물들은 또 한차례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전쟁 초기 동물들은 다행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1951년 중공군이 개입해 1·4 후퇴를 할 때는 사육사들도 피난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두 달 후 3월에 서울을 다시 수복한 다음 창경원 동물원의 광경은 처참했다.

당시 사육사로 일했던 고 박영달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낙타·사슴·얼룩말은 중공군이 도살해 잡아먹은 듯 머리만 남아 있었다. 여우와 너구리·오소리·삵 등은 굴과 돌 틈에 끼여 죽어 있었다. 모두 그렇게 굶어죽고, 얼어 죽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자 전방의 군인들이 야생에서 곰과 산양·노루·삵 등을 잡아 보내면서 창경원의 텅 빈 우리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정부기관 및 기업체, 독지가들에게도 기금을 모았다. 코끼리는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태국에서 4000달러에, 사자의 경우 한국은행에서 2500달러에 사 왔다.

체구가 크고 우둔하지만 제일 비싼 동물이었던 하마(5000달러)는 천우사가 맡았다. 타조와 얼룩말은 한국흥업은행(조흥은행 전신)이, 들소는 경성전기가, 두루미는 조선맥주가, 물개는 대한산업이, 사슴은 화신산업이, 퓨마는 국생산업이, 백곰은 상업은행이 각각 맡아 기증했다.

국내외 유지들이 자진해 기증한 동물도 있었다. 예를 들면 한국산 독수리는 육군 31사단장이, 외국산 멧돼지는 로렌스 베이커라는 미국 사람이, 악어는 파벌터라는 필리핀 사람이, 백여우는 임재봉이라는 육군 소령이, 곰은 미 8군단이 보탰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문을 연 창경원은 서울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처이자 놀이공간의 역할을 했다. 1983년 12월 31일 창경원은 마지막 관람객을 맞은 후 문을 닫았고, 동물과 식물들은 서울대공원으로 옮겼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동물 버전?

죽어가는 동물을 살리기 위해 이라크 전쟁 속에 뛰어든 남자가 있다. 200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코끼리를 돌보던 환경보호운동가 로렌스 앤서니는 총알이 빗발치는 바그다드로 날아간다. TV에서 이라크 전쟁 뉴스를 보다가 불현듯,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떠올렸다. 참혹한 전쟁 틈바구니에서 동물원은 어찌 되었을까?

인간이 벌이는 전쟁에 바그다드 동물원은 폐허가 됐고, 동물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미군에게 자살특공대로 오인되어 사살될 뻔한 타조들,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비좁은 암시장 우리 안에 갇혀 어딘가로 팔려갈 날만 기다리는 기린들, 일곱 가족이 모두 굶어 죽은 뒤 홀로 살아남은 새끼 원숭이, 아사 직전의 상황에서도 개들을 잡아먹지 않고 오히려 지켜준 사자들….

미군이 동물원을 점거했을 때는 굶어죽기 직전의 사자 네 마리가 우리를 탈출, 사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는 상처로 고통받던 동물들을 응급처치하고 자비를 털어 먹이를 구했다.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오고, 자살폭탄 테러가 들끓으며,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었다. 눈앞의 상황이 너무 비참했던 그는 차라리 총을 하나 서서 동물들을 하늘나라로 고이 보내주고 싶었다.

"내게 맨 처음 가까이 온 것은 눈먼 갈색 곰 새디아였다. 녀석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태아 같은 모습으로 웅크렸던 자세를 떨쳐버리고 철창 가까이 다가왔다. 눈은 흐릿했지만 나는 새디아가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다고 느꼈다.“

앤서니는 목숨을 걸고 동물들을 살려냈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 궁에 고립된 사자, 치타 등을 들을 구출하고, 도둑과 마약범들이 들끓는 아부그라이브에서 후세인이 기르던 종마도 구출해낸다. 모든 것이 파괴된 동물원에서 1분 1초가 절박했던 그는 휴일도 없이 일주일 내내 일했다. 휴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2007년, 우여곡절 끝에 바그다드 동물원은 다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나중에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란 책을 쓴 앤서니는 이렇게 말했다. “지구에서 함께 사는 다른 생명체에게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지요”

그의 말 그대로, 이라크에서 그가 구한 것은 동물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앤서니는 바그다드에서의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지구의 날 메달(The Earth Day Medal)’을 수상했다. 2012년 4월 야생 코끼리 보호에 평생을 바친 그가 죽자 어떻게 알았는지 숲속의 코끼리들이 두 무리를 이뤄 집 근처로 찾아와 이틀이나 머물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애꾸눈 사자 ‘마르잔(Marjan)’

아프가니스탄의 사자 ‘마르잔’은 역사의 풍파를 오롯이 겪어야 했다. 독일산 수사자인 마르잔은 23년 동안 카불 동물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원래 아프간 왕가의 상징이 사자였기에, 마르잔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오랜 내전과 탈레반이 지배하면서 기구한 삶이 시작됐다.

1996년 한 광신적인 탈레반 병사가 카불 동물원 곰의 코를 잘라버렸다. 곰의 수염이 충분히 길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탈레반 병사는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기 위해 사자 우리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튿날 그 죽은 병사의 동생이 앙심을 품고 사자 우리에 수류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마르잔의 평생 배필로 지내왔던 암사자 ‘추차’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마르잔의 오른쪽 눈은 완전히 실명되었으며, 얼굴은 물론 온몸이 파편 자국으로 일그러진 채 살아야만 했다.

탈레반이 이 눈먼 사자를 죽이려고 했을 때, 사육사 아크발은 “죽이려면 나와 함께 죽여달라”라고 애원했다. 다행히 마르잔은 사육사 아크발에 의지해 삶을 연명했다. 사육사가 되기 전 힌두쿠시 산맥의 양치기 목동이었던 아크발은 잠시도 이 사자를 떠날 수 없었다. 내전 동안 한 달 박봉 8달러를 쪼개고, 자신의 먹을 것을 줄여가면서 친자식같이 마르잔을 길렀다. 사육사 아크발이 심장병으로 죽고 난 후, 마르잔은 남은 한쪽 눈마저 거의 실명 상태가 됐다.

카불이 탈레반의 손에서 벗어났을 때 미군은 더러운 우리 안에 혼자 남아 있던 마르잔을 발견했다. 마르잔과 코 없는 곰, 늑대 두 마리가 카불 동물원에 남은 유일한 동물이었다. 갈증과 허기로 지친 마르잔의 목과 턱에는 수류탄 파편이 박혀 있었고, 온몸에는 이와 옴이 들끓었다. 목숨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마르잔은 2002년 1월 역사 속으로 묻혔다. 공식 장례식이 치러졌고, 동물원 광장에서 화장됐다. 마르잔은 탈레반 치하에서 겪은 고통을 상징하는 존재로 세계 언론의 관심거리가 됐다. 마르잔이 숨지면서 텅 비게 된 사자 우리는 다음 해 새 주인을 찾았다. 중국 베이징 동물원 측은 마르잔의 뒤를 이을 사자 두 마리를 곰과 돼지, 사슴, 공작 등과 함께 카불 동물원에 기증했다.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금지돼 있지만, 흰 돼지는 교육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1999년 태국에서는 원목 벌채 작업에 동원된 한 코끼리가 미얀마와의 국경지대 부근에서 지뢰를 밟아 왼쪽 앞발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코끼리의 이름은 모탈라. 코끼리 앞발 절단 수술에는 의사 30여 명, 기중기와 소방차가 동원되어 3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10년 만에 모탈라는 의족을 달았다. 호주 출신 톱모델 미란다 커는 지뢰를 밟는 사고로 다리를 잃은 코끼리들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 전쟁 때 등장하는 동물 살생부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쥬키퍼(The Zookeeper)’는 동물원 사육사가 주인공이다. 전쟁이 일어나 어수선한 나라, 그 와중에 아무도 찾지 않아 쓸쓸한 동물원. 사람들은 떠나갔지만 여전히 철창에 갇힌 채 남겨진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곁에 남은 사육사가 있다.

대부분 동물원에는 실제 전쟁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가정한 대응 지침이 마련되어 있다. 일부 동물은 해방 직전 일제가 행했던 것처럼 죽임을 당해야 하고, 일부 동물은 풀어준다. 일종의 ‘전시용 살생부’인 셈이다. 희귀종이라고 해서 또는 예쁘거나 인기가 있다고 해서 살려주지 않는다.

죽임을 당하는 동물은 당연히 사람을 해칠 우려가 높은 맹수들이다. 호랑이나 사자, 늑대, 악어의 경우 새끼일지라도 모두 죽이게 되어 있다. 또 코끼리나 하마·코뿔소 등 성격이 포악하거나 덩치가 커서 사람에게 해를 끼칠 만한 초식동물들도 모두 이에 포함된다.

우리 밖으로 방사되는 동물은 주로 조류와 순한 초식동물들이다. 사슴처럼 풀어줘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동물들이 이에 포함된다. 동물에 대한 살 처분은 먹이에 극약을 타거나 경찰이 총살 처리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났다.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은 이 땅의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원 동물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마 동물들도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란 성명을 내고 싶을지 모를 일이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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