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장이화(江宜樺) 행정원장(국무총리)이 지난주 엘살바도르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살바도르 산체스 세렌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양국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다짐하기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산체스 신임 대통령은 게릴라 반군 지도자 출신으로, 지난 3월 실시된 대선에 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뜨거운 화제를 불러모은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장 행정원장의 이번 방문을 놓고 대만 내에서 약간의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왜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직접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남미가 대만에 있어 외교적 사활이 걸린 지역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런 궁금증은 당연합니다. 바티칸을 제외한다면 아프리카와 태평양 도서국, 중남미 지역에 수교국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만 외교부의 설명은 간단합니다. 과거 롄잔(連戰), 뤼슈롄(呂秀蓮) 부총통이 각각 엘살바도르 대통령 취임식 축하사절로 파견된 전례가 없지 않으므로 이번에 행정원장이 참석했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2009년 전임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의 취임식 때는 마 총통이 직접 참석했습니다. 자신의 첫 임기를 시작한 이듬해의 일이었습니다.

마 총통은 그때 마우리시오 대통령의 취임식 외에도 파나마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을 뿐 아니라 아울러 니카라과와 온두라스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수교국 방문에 열의를 보였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마 총통이 이번에 장이화 행정원장을 대신 참석시킨 것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라고도 여겨집니다. 대만의 일부 언론들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그에 대한 의문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엘살바도르의 전임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플로레스가 지난해 미국 의회와 법무부에 의해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대통령 재임 중 두 차례에 걸쳐 2,000만 달러를 받아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돈의 출처가 대만 정부였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플로레스가 미국 은행을 통해 대만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엘살바도르 의회의 자체 조사에서도 사실로 밝혀졌고, 플로레스 본인도 시인한 상황입니다. 내용이 구체화되면서 더 이상 발뺌하기가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만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진 결과 마 총통이 장 행정원장에게 엘살바도르 방문을 슬며시 미룬 것이 아닌가 하는 게 현지 언론들의 짓궂은 지적입니다.

물론 대만 정부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플로레스에게 돈을 보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플로레스 본인은 이 돈으로 지진피해 복구와 마약근절 등 적절한 목적에 사용했다고 항변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뉴욕은행에서 발행된 수표가 어째서 마이애미를 거쳐 코스타리카와 바하마 은행으로 보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돈세탁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대만 정부로서는 수교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출하고 있다는 ‘달러 외교’의 진상이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난 것이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있기 마련이지만 중국과의 외교 경쟁을 의식해야 하는 대만으로서는 더욱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은탄(銀彈) 외교’라거나 ‘수표책(checkbook) 외교’라는 용어에서처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사례가 플로레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지난달에도 과테말라 전임 대통령인 알폰소 포르티요가 뉴욕 법정에서 과거 미국 은행을 통해 250만 달러를 세탁하려 했던 혐의로 5년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돈의 출처도 대만 정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원래 공공도서관을 확충한다는 목적으로 전달됐지만 목적을 벗어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플로레스나 알폰소가 대만으로부터 돈을 받은 시기를 따져보면 마잉지우 총통 정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2004년에 임기가 끝났고, 그 임기 말년에 돈을 전달받았다는 점에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당시의 일입니다. 대만의 독립 문제를 놓고 중국과 심각한 마찰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외교무대의 경쟁이 절박했던 상황임을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대만 정부는 수교국에 대한 지원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만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원 절차상 내부적으로 잘못이 없다고 해도 더 이상 자세한 뒷얘기를 꺼낼 수 있는 형편도 아닙니다. 수교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아무리 정당하게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돈을 받는 입장에서 통치권자가 빼돌리기로 작정했다면 그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수교국인 쌍토메 프린시페와의 불협화음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마누엘 핀토 대통령이 대만과 외교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중국을 지난 주말부터 직접 방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잉지우 총통에게 친서를 보내 일주일 간의 방문 활동을 경제교류로만 국한시키겠다며 사전 양해를 구했다지만 대만의 심기가 편할 리는 없습니다. 외교관계 유지를 빌미로 양측을 떠보며 경제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감비아와의 외교관계가 끊어진 사정도 내막은 비슷합니다. 1,000만 달러를 현금으로 직접 전달해 달라는 야야 자메흐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데 대한 보복조치였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당시 감비아가 ‘국가적 이익’을 들어 일방적으로 관계단절을 발표하자 대만 정부가 “이는 자메흐 대통령 개인의 결정”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던 배경이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대만이 슬쩍 찔러보기만 해도 돈이 나오는 ‘달러 외교’의 물주국이라는 오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방법입니다. 이미 중국이 국제적으로 외교무대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돈을 처들여 한두 나라의 환심을 더 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감비아가 외교관계를 단절함으로써 대만의 수교국이 22개국으로 줄어들긴 했어도 그냥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보다는 대만의 장점을 살려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국제무대에서 심각한 제한을 받는 처지에서도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상당한 사회발전을 이뤘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내세울 만합니다. 정부간 외교관계가 어렵다고 해서 민간 교류가 막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몇 마디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진 독에 물붓듯이 막대한 달러 뭉치를 날리고도 손가락질을 받는 것보다야 훨씬 바람직하다는 게 바깥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입니다.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저서로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한국과 대만, 잠시 멀어진 이웃'(e-book)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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