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내외뉴스통신] 김현옥 기자 = 박철은 나무와 바람의 시인이다. 김포 벌판 어디쯤 홀로 서 있는 나무로 기타를 만든 후, 동남풍을 빌어 도심으로 끝없이 노래를 보내는 사람이다.

심부름 돈으로 아내 몰래 자스민꽃을 사고, 갑자기 전화를 걸어 김포 바람소리를 들려줬다가 십여 년 몸살을 앓던 그가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창비)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서툴고 험준했던 박철의 사랑법이 조금 철이 들었나 궁금해졌다. 그러다 ‘일출’에서 “새벽에 일어나 원고를 보는데/아내의 얼굴이 어둡다//이 시집 상 받으면 장모 줌세/아내의 얼굴이 환해지며/붴으로 간다”를 읽고, 뭔가 ‘변~’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달에 그는 이 시집으로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이런 걸 두고 이렇게 말해도 될 듯 하다. “다행이다/다행이다 바닷게가 찜통으로 들어가기 전/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네”(‘비상’ 중에서)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한동안 시를 놓았습니다/……/그러나 호구를 전혀 외면한 것은 아니어서 지책으로/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만원짜리는 엮으며 살았습니다/…./차라리 길에다 손을 벌리고 시를 쓰던 때가 좋았습니다”

리어카 꽁무니를 밀며 ‘아래지향적’ ‘미물지향적’으로 눈물을 떨궜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지 않았나 추측을 해본다. 사랑도 노동이니 사랑을 더 치열하게 했거나… 아무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자신을 뭐든 뚝딱 만들 수 있는 ‘구름의 둘레’로 설명한다.

“당신이 부정해 마지않는 것과/당신이 지금 행하는 것의 거리/욕심의 둘레란 그런 것이다/구름도 둘레는 있다/둘레로써 오늘은 작은 곰이 누워 자는 모양을 만들었다/……/당신이 바라보지 않는 하늘에/……/당신이 조용히 무릎을 꿇을 때/나는 당신이 걷지 않는 길을 걷는다”(‘흰 구름’ 중에서)

그 길은 ‘외’로우면서도 ‘의’로운 것이어서 그렇게 가다 보면 절로 따라오는 ‘뭣’을 시인은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머시 중헌디~’라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답했으리라.

“옛 서대문 형무서 터 사형장 입구의/늙은 미루나무 곁에서 사진을 찍었다/나무와 나란히 선다는 일/부동의 자세가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냥 그래야 하는 것처럼/……/시간이 갈수록 형편이 나아질 수는 없을까”(‘그냥 그래야 하는 것처럼’ 중에서)

왜냐하면 그는 ‘나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귀에 담아놨다가 공명을 통해 멀리 보내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귀’를 통해 수많은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기에 늘 흔들리는 삶을 살아왔다.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없으나/귀는 들리지 않는 것도 듣는다/……/말했듯이 귀는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담는 것이 아니라 퍼주는 것이기 때문이다/귀가 앞에 달린 것이고 눈은 옆에 달렸다/그 탓에 우리가 이제껏 흔들려/옆으로 걷는 것이다”(‘귀’ 중에서)

그렇게 출렁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반환점에 다다랐다. 전에는 소낙비를 뚫고 바람처럼 지나가거나 강물 한 가운데 절벽에서 되돌아 왔다면, 지금은 당신에게 가겠다고 은연 중에 말한다.

“반에 관한 두가지 아픔이 있다/……//한번은 반을 지나쳐버렸고/한번은 반을 돌아와/겁 많은 내 생은 그대로 솟대가 되고 말았다/오늘 개화리 자귀숲으로 가는 길/이제 기어이 발길은 다시 반에 다다랐으니/반은 절벽인가요 바람인가요/당신인지요”(‘반’ 중에서)

그 당신에게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죽은 뒤라도 어디에서 만나자고 당신과 쪽지 나누고 싶다”고 ‘약속’한다. 또 “그래도 그런 사랑 한번 하고 싶다/정말 세상 다 아는 사랑/……/태양빛에 반짝이며/나 그 큰 산/다 녹이고 가고 싶네”(‘산’ 중에서)라고 소리친다. 아직 뜨겁다.

하지만 ‘해를 쫓는 달’ 사이의 천형을 알기에 이제는 영원의 끝에서 그래도 다시 사랑을 통해서 그 질긴 ‘악연’을 끊어내려 한다.

“어김없이/해가 뜨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생명을 위하여?/그러기엔 너무 뜨겁지 않은가/타면서 멀리/밀려온 우리/그러나/이제 수평선을 넘어가는 사연을 좀 알겠네/영속이란 없다는 것/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다는 것/그러니/나는 오늘도/사랑 운운”(‘사랑 운운’)

그것은 “사랑하지 않아도 버리진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신은 내년 봄 ‘윤중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않을런지.

“사랑하는 이에게 줄 꽃들을/아직 전하지 못하고 줄지어놓은 듯하나/내 기억으로 당신은 받은 꽃들을/차마 버리지 못해 여기 남겼네/……/내 사랑 아득한 일들처럼/꽃은 피리/꽃은 지리//당신의 꽃길/끝을 열지 않기 위하여/내 봄 닫네”

꽃만 자스민에서 벚꽃으로 바뀌었을 뿐 시인에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 것을 기다리며 그냥 세월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없는 영원을 있게’ 만드는 것 아닐까. 벚꽃 필 즈음 이 시인을 양평에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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