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살아오면서 억울한 일이 있었는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고통 받은 일이 있는가?

이런 경험은 유년기와 청년기는 물론 성인에게도 발생한다. 그 억울한 기억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이십대, 삼십대... 누구나 많은 곡절을 지닌 채 지금 여기 와 있는 것이다. 아무도 쉽게 지금 이곳에 당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다리가 아팠는가? 눈물이 났는가? 모멸감을 느낀 순간은 없었는가? 참담하고 치 떨리는 기억은 없었는가?

나의 경우는 성장기 동안이 힘들었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나보다. 엄한 부모 밑에 효자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내 어머니.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나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듯했다. 꿈에서 자주 어머니에게 얻어맞고 쫒기는 신세가 되다가 붙잡혔다.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눈을 번쩍 뜨면 ‘꿈이었구나.’하고 안도한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으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아무튼 그 시절보다 지독한 때는 없을 듯하다, 고 느낀다. 살다보면  힘든 일, 슬픈 일, 속상한 일이 있지만 우리가 매우 무력했던 유년기의 공포와 고통은 특히 오래 가는 것 같다. 자기 방어능력도 상황 판단력도 미숙하고, 세상이 온통 두려운 것투성이인 어린아이에게는 사소한 사건도 공포스러운 기억이 된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무력하던 그 시절을 비교적 평화롭게 떠올릴 수 있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평온을 찾게 되었고 상처들이 스스로 치유된 것 같다.

당신에게는 어떤 기억이 있는가? 떠올리기 힘든 사건이 있는가? 누군가가 원망스러운가?  내게 던져졌던 어떤 상황이 아직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가?

니체는 이처럼 상처받고 원한감정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서 그곳을 박차고 나오라고 말한다.

“지난 날을 구제하고 일체의 ‘그랬었다’를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전환하는 것, 내게는 비로소 그것이 구제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말했다> 중

내가 자초한 것이 아닌 사태, 나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 때문에 내가 고통 받는 이 세계의 법칙, 대체로 인간은 자기가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일이 나의 잘못에서 비롯됐다면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엮여서 상처를 받거나 고초를 겪었다면 당혹스러울 뿐이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싶고,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한동안 기력을 잃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한 세상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는 사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더러  절치부심하고 세계를 복수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묻지마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들의 절망감을 생각해 본다.

니체는 ‘이미 행해진 일에 손을 쓸 수 없는 의지’는 ‘일체의 과거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관망자’라고 말한다. 이미 행해진 일은 되돌릴 수 없고, 되돌아가서 수정할 수도 없다. 세계가 복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더없이 고통스런 일이다. 이런 의지를 지닌 인간을 니체는 병든 자라고 부른다, 정신의 불구자라고. 이 경우 정신의 불구를 헤쳐서 나올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었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니! 하나 니체는 그 방법만이, 그런 전환만이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비로소 원한의 과거와 작별하고 과거를 수정할 수 있게 된다. 그 과거는 내가 관여하여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바로 그 과거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여기 와 있다. 그 과거는 내가 원했던, 나의 힘 의지가 작용한 바로 그 과거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과거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것, 그것만이 원한의 인간을 건강한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원한의 인간은 앙갚음의 정신으로 ‘최상의 궁리’를 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벌을 내리는 것으로 자신의 원한을 해소한다. ‘앙갚음을 떳떳한 양심’인 양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한이 있는 한 징벌 또한 영원하게 된다.

“어떤 행위도 말살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행위가 징벌에 의하여 행위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는가! 생존 또한 영원히 되풀이해서 행위가 되고 죄책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것, 이것이야말로 ‘생존’이라는 징벌에서 영원한 것이다. 의지가 끝내 자기 자신을 구제하지 않는 한, 의욕이 무욕이 되지 않는 한, 형제들이여, 아무튼 너는 광기의 이 터무니없는 노래를 알고 있으렷다! 나 너희에게 ‘의지는 창조하는 자’라고 가르쳤거니와 그럼으로써 나 너희로 하여금 이 터무니없는 노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니체에 따르면 이 세계는 힘에의 의지들의 투쟁의 세계다. 나도 힘에의 의지인 한에서 나도 이 세계의 그러함에 관계했고, 나 역시도 이 세계의 일부분이다. 이 세계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도 내가 모르는 책임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한 것이다! 라고 외쳐보시라!
그러면 한층 기분이 나아진다. 가만!  어린 시절, 작은 아기, 꼬물 꼬물거리는 그 아기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절도를 당한 것을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고? 묻지마 사건의 희생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고?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요는 이렇다. 세계는 무수한 힘에의 의지들의 쟁투 속에서, 강한 힘이 승리하고 매순간 완성되는 관계 속에서 진행된다. 세계는 매순간 완성된다. 매순간 새롭게 힘에의 의지는 자기를 넘어서며 완성의 순간 더 큰 힘을 향해 나간다. 여러 힘들의 경쟁 속에서 승리한 힘은 새롭게 도전하는 힘에의 의지들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넘어서는 무수한 영원회귀의 순간을 우리는 산다. 이 힘들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누구도 여기 관여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세계는 힘에의 의지의 무한 회귀와 힘들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은 힘을 향한 의지들이 만들어간다. 나는 이 힘의지의 관계망 속에서의 나다.

타인은 곧 나이며, 나는 곧 타인이다. 타인을 탓하고 세계를 탓하는 것은 곧 나를 탓하는 것이다. 타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탓하는 타인이 바로‘나’니까 말이다.

해서 니체는 건강한 인간은 원한감정이 없다고 말한다, 삶에 대한 무한 긍정의 인간, 그 인간을 건강한 인간, 위버멘쉬라고 말한다. 건강한 인간은 복수의 감정과 상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건강한 인간은 망각하는 인간이며, 매순간 다시 시작하는 인간이다. 망각할 수 있기에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것이다. 매 순간 완성되는 인간이기에 매순간 다시 시작하고 매순간 망각한다. 때문에 과거를 즉각 변경할 수 있다.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그것은 나의 힘에의 의지였다!

이렇게 될 때 나는 나를 구원한다. 위버멘쉬를 향해 나가게 된다.

“일체의 ‘그랬었다’는 창조하는 의지가 나서서 ‘나는 그러하기를 원했다!’고 말할 때까지는 파편이요. 수수께끼이자 끔찍한 우연일 뿐이다. 창조의 의지가 거기에다 ‘그러나 나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나 그렇게 되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때까지는 말이다(...) 의지는 이미 그 자신의 구제자가 되어 있으며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어 있는가? 앙갚음의 정신과 일체의 절치를 넘어섰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지나간 세월에, 백번을 생각해도 억울한 사건에 통분과 역정으로 머물지 말자. 절치와 앙갚음. 과거에 대한 적의는 나의 미래와 즉각 접속한다. ‘일체의 그랬었다’는 힘이 세다. 해서 해묵은 원한의 과거는 현재와 미래와 연결되고 나를 다시 ‘그랬었다’의 과거로 몰아넣는다. 나 그러하기를 원했다라고 외치고 훌훌 털고 일어나자. 이 순간 과거는 변한다. 현재의 나의 의지는 미래를 변화시키고 과거마저 수정한다. 과거를 다르게 해석하자.

나 그러하기를 원했다! 라고 나에게 말해주자!  이 한마디 말이 나를 구원한다. 말은 행동이다!

천경 작가, 주부재취업처방전 저자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천경의 니체 읽기>는 매월 셋째주 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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