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본 2014년 한국과 일본을 잇는 사람들

[도쿄=내외뉴스통신] 최윤정 기자 = 동경의 코리안타운을 대표하는 한국음식점으로 자리잡은 [대한민국]의 안주인 박현자씨를 만나보았다. 2002년 한일공동 월드컵으로 얻은 용기와 자긍심으로 한국음식점을 시작했다는 박현자씨. 2011년 대지진을 계기로 깨달은 일상과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한식보급과 봉사활동으로 승화시키는게 앞으로의 목표.

- 대한민국을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1991년도 당시에 와세다대학원에서 유학중이던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오게 됬습니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면 바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 일본에 온지 올해23년이 됬네요. 유학생인 남편의 내조를 해야했기 때문에 일본어학교 다니면서 꽃가게, 부티크, 백화점 등..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어요. 그때는 한국식품점이나 음식점도 별로 없었는 한달에 한번 아르바이트 월급받아서 고기를 먹으러 가면 그게 그렇게 맛있는 거에요. 장난으로 나중에 야키니쿠 주인되서 실컷먹자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됬네요. 사실 그런 목적으로 온게 아니기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2002년 한일공동 월드컵이 큰 계기가 됬습니다. 당시 월드컵 응원을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모두들 기분이 많이 들떴었잖아요.월드컵이 끝나고도 사람들이 계속 대~한민국! 하고 외치는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저도 뭔가 복받혀오르는걸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든 것 처럼 우리도 열심히 하면 월드컵 선수들처럼 할 수 있,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게 이름도 대한민국이라고 지었어요. 조국의 이름을 따서 큰 이름을 걸었으니까 책임감도 생기고 힘들더라도 지켜나가야한다는 자긍심이 컸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않게, 이름에 걸맞는 가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그렇게 월드컵이 끝난 2002년10월에 오픈했습니다. 간판은 대한민국, 한글로 만들었습니다. 13년 전에는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아는사람이 없었어요. 주위에서 일본어로 바꾸라는 조언도 많았지만 남편과 제가 끝까지 한글이름을 고수햇는데 지금은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리는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 월드컵을 전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처음 일본에 왔을때 9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서 김치하나를 가져오려해도 공항 심사도 까다롭고 리무진을 타고 택시를 타면 김치냄새난다 운전기사들이 투덜거리고, 김치봉지 하나 버릴때도 냄새 안나게 하려고 세제에 담가놨다가 버린다던지…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았어요. 그런데 공동 월드컵 개최 이후로 희망,해방감,용기를 한꺼번에 얻었습니다. 한국인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 그 이후 일본에서 한류붐이 일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 그래도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에 와서 보니까 일본은 한국이 정말 먼 나라더라구요.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역사 교육을 통해 일본에 대한 상식은 많이 있었잖아요. 일본에서의 한국은 아시아에 있는 그냥 조그만 나라중의 하나고 가까운 나라가 아닌 타이완, 홍콩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의 몇 군데 중 하나일 뿐, 한국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걸 실감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공동 월드컵과 문화개방이 맞물리면서부터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고 한국을 가깝게 느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월드컵 끝나고 겨울연가와 배용준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한류 제1기가 시작됬습니다. 4-5년정도 드라마 붐이 있었고, 그 뒤 케이팝으로 제2의 한류가 온거죠."

- 최근의 정치적인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는가요
"알기쉽게 비유를 하면 2-3년 전까지는 특급, 에이급,비급,씨급,아마추어…다 같이 먹고 살 수 있는 공생의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특급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됬습니다. 우리음식점은 끄덕없다고 주위에서들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대중매체에 한국이나 한국음식에 대해서 방송을 해주면 이번주에 한국음식 먹으러 가야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겠지만 최근에는 정치,사회적인 분위기도 않좋고 호의적인 보도가 줄어들다보니 한국에 우호적이던 사람들도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을 싫어하는거 아닌가…이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열번 오던 분들 지금은 한두번밖에 안와요. 코리안타운 전체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 대외활동도 활발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전통음식연합회 이사로 활동중입니다.정부에서 한식 세계화를 8년전에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전 세계적인 모임이고 계속 교육을 받고 있어요. 현지에서 요리에 종사하는 사람, 한식을 알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교육을 지원하는데 현재 일본에는 멤버가 열명정도 있습니다. 각국의 브이아이피 모임에서 한식을 선보이기도 하고 매년 김치 페스티벌을 개최합니다. 한국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기도 해요. 저희 가게에서 안바쁠때 명절음식을 만들어서 일본인에게 소개하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시고 “왜 다들 모여서 그렇게 전을 부치느냐” 그런 질문이 많아서 시작하게 됬습니다.한국음식은 다른나라 음식이랑 틀려서 손이 엄청 많이 갑니다.고명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떡국에도 고명을 놓고, 전에도 고명을 얹어야 이쁘죠. 요리를 할때는 그 사람의 마음상태와 옷차림에 따라서 모양도 틀려져요. 그렇기 때문에 명절때 다들 모여서 예쁜 전을 부치면서 정을 나누는 거다..라고 설명을 하죠."

- 요리교실 기획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유월말부터 한국요리와 한국어 등 한국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생활요리를 같이 만들어보는 한국요리교실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일교류회 라는 모임에서 일년에 한번씩 한류스타들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이라는 테마를 주제로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 특별히 개발하신 요리가 있으신가요.
"다른가게에 없는 우거지해장국이랑 장어탕이 추천메뉴입니다. 한식세계화 세미나에서 발효식품과 건조식품에 대한 영양소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무말랭이, 시래기, 무청, 북어 등 건조식품은 영양소가 굉장히 풍부합니다. 해풍으로 말린 건조식품이 특히 좋다고 합니다. 북어, 무말랭이, 김밥용 김 등 건조식품을 한국에서 다 공수해서 씁니다. 토란대 고구마대 같은 시골가면 할머니들이 직접 따서 말린것들 영양소가 많고 정성이 많이 담긴 그런 음식들을 많이 소개하려고 합니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모처럼 한류를 계기로 한국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심오한 한국음식을 더 널리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내년이 한일수교 50주년이니까 한일관계가 다시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금있으면 평창올림픽, 동경올림픽이 있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지금껏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고 제 아이들을 키워준 일본이란 나라에서 받은 걸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직 확실한 답은 모르지만 아마 요리쪽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11년 대지진이 났을때 정말 다 죽을 줄 알았습니다. 다행히 저희는 큰 피해는 없었지만 한달정도 손님이 끊기면서 일본에서의 21년이 이렇게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진이후 신오쿠보가 다시 활기를 찾은 시기가 있었어요. 지진으로 인해 많은 일본인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우리는 멀쩡한데다 경기도 다시 회복되니 너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던 중 교인들과 같이 동북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는데 너무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부터 쭉 뭔가 해야할텐데..2020년 올림픽을 전후로 내가 받은 은혜를 돌려주자..라는 마음을 가지게 됬습니다."

- 지금까지 중 인상깊은 만남이 있으시다면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씨가 일년에 서너번씩 우리 가게에 오세요. 책을 읽었기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뵙고 몇마디 나누게 되면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누가 도와주는걸 싫어하시고 모든걸 직접 본인이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분을 보면서 내가 늘 불평불만을 하고 가게를 하면서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살고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나서 제 모든 불평불만이 해소가 됬다고 할 수 있죠.
또 한가지, 2011년 지진 당시 남편은 중국출장중이었고 주위의 한국인들, 주재원들이라던지 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저희 아이들도 한국으로 보내고 가게때문에 저 혼자 남아 있었는데 매일같이 이어지는 여진이 너무 무섭더라구요. 일본지인들한테 전화했더니 그분들이 다 자기일을 접어두고 가게에 와서 저랑 놀아주면서 위로해 줬습니다. 그런 고마운분들이 2,300명은 되는것 같아요. 그런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제 일에 지금은 너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日 도쿄 특파원=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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