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삶과 죽음을 분간조차 못할 나이에 엄마와 누나를 결핵으로 보냈다. 아버지의 광기(狂氣)와 여동생의 우울증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여리고 병약했다. 죽음의 공포, 삶에 대한 절망, 숙명적인 고독으로 평생을 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뭉크(Edvard Munch)는 이런 내면의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해골바가지 같은 남자가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옴짝달싹도 못하고 귀를 막은 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바야흐로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을 때였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그때를 생각나게 하는 것을 보면 진땀이 나고 숨이 가빠진다. 헛구역질이 나고 가슴도 쿵덕쿵덕 뛴다”, “중국 공안에 쫓기던 당시 절박했던 경험 때문인지 유니폼 입은 아파트 경비원만 봐도, 지나가는 응급차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란다”, “지하철을 못 탄다. 밀폐된 공간이 감옥 같다. 네모난 책상만 봐도 두렵다. 차가 터널에 들어갈 때는 숨쉬기조차 어렵다”, “중국에서 태어난 아들이 한국에 오기 전 6개월 정도 갇혀 있었던 적이 있는데,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혼자 있지 못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동생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 공안에 잡히는 꿈, 북한에서 강제 노동하는 꿈, 교화소에서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는 꿈, 중국에서 누군가의 밀고로 쫓기는 꿈 .....16년 전에 겪었던 일인데 요즘도 시도 때도 없이 꿈에 나온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해 고통스럽다”, “꿈에서 다시 강제 북송되어 ‘나 어떡하지! 나 어떡하지!’ 하며 두려움에 떨며 울다가 잠에서 깬다”,  “남동생의 인육을 씹어 먹다가 놀라서 잠이 깬다. 10년이 지났지만 나 때문에 앞길이 막힌 북한의 남동생을 생각 하면 항상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뒤에서 수군대는 것 같다. 이유도 없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 만나기 무서워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다.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된다”,  “집에 혼자 있어도 불안해 계속 문을 확인하게 된다.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에게 생각지 못한 또 하나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한 쪽으로 밀쳐둘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니 잊어버리고 싶었던 기억들이 시도 때도 없이 탈북자를 괴롭혔다.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세월이 약이려니 하고 살아가던 탈북자에게 최근 마음의 상처가 또 생겼다. 

몇 달 전 어디에선가 수 년 전에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자를 다시 북한으로 보내자는 논쟁을 야기하더니, 지난 15일에는 통일부에서 탈북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한 기자를 정부의 공식 행사에서 배제시켰다. 북한 송환을 주장하는 측이나 행사에 배제한 통일부도 나름 논리는 있다. 남북 관계에서 말 못할 사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북한에 살면서 또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 이미 너무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더 이상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보고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바야흐로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을 때였다. 해골바가지 같은 남자가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옴짝달싹도 못하고 귀를 막은 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림 속 남자가 우리 이웃의 탈북자여서는 안 된다. 목숨 걸고 찾아 온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다. 

 

 

 

 

▲해질녘에 친구 둘과 걷고 있었다.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에 잠시 난간에 몸을 기댔다. 검푸른 빛의 도시와 피오르드를 배경으로 하늘은 핏빛 불길이 춤을 추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렸다......... 
1892. 1. 22. 맑음, Edvard Munch 日記에서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통일연구회 연구위원 장석광

-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연구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21세기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안보통일연구회 연구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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